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동대문 시장에 갔던 적이 있다. 당시 상고 졸업을 앞두고 있던 사촌누나도 함께였는데 어머니는 졸업도 하기 전에 은행에 취업한 누나에게 정장 한 벌을 사주겠다고 하셨다.
시장 이곳저곳을 둘러보시던 어머니의 눈에 어느 가게 매대에 걸려있던 회색 정장 투피스 한 벌이 들어왔다.
Round1 어머니 vs 옷장사 아저씨
점포 안에 서서 열심히 바람을 잡고 있던 아저씨는 우리 쪽을 흘끔 쳐다보았다. 웬 아줌마와 사내아이, 그리고 시골에서 올라온 아가씨.. 닳고닳은 어저씨의 머리 속에는 이미 견적이 나왔던 것이 아닐까?
어머니는 매대 구석에 걸려 있던 회색 정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거 얼마예요?"
"4만원이요~"
어머니는 누나에게 옷을 입혀보고는 정색을 하며 물었다.
"뭐가 그렇게 비싸요?"
아저씨는 능글 맞게 웃으며 그 옷을 가져와 펼쳐놓고 말했다.
"이 천을 한 번 보세요. 고급 모직이야. 고급 모직.. 이게 한 마에 얼만 줄 알아요?"
"팔만큼 팔구서 한 쪽에 치워놓은 거구만!! 좀 싸게 줘요!"
어머니의 일격에 아저씨는 잠시 괴로운 표정을 짓더니 크게 인심을 쓴다는 듯 말했다.
"그래요.. 뭐 시골에서 올라온 아가씨 옷 한 벌 사주려 하시는 것 같으니까.. 내 3만 8천원에 드릴게.."
그러자 어머니는 택도 없다는 듯 생각하고 있던 가격을 불렀다.
"3만원!!"
어머니의 후려치기에 아저씨의 낯빛이 변했다.
"이 아주머니 너무하시네.. 3만원이 뭐유? 3만원이.. 이렇게 천이 좋은데.."
"이런 옷 동네에서도 4만원 안짝에 사요! 시장인데 그거보다는 싸야지!"
어머니와 아저씨의 실랑이는 계속됐다. 아저씨가 다시 3만 5천원을 제시했지만 어머니의 거부로 가격 협상은 결렬됐다. 궁시렁대는 아저씨를 뒤로 하고 우리는 다른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Round2 어머니 vs 옷장사 아저씨
어머니는 한참동안 우리를 데리고 그 가게 근처를 배회했다. 아마도 우리 쪽을 계속 흘끔거리는 아저씨의 시선을 느끼고 계셨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어머니는 돌연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저거 3만원에 줘요~"
아저씨는 펄쩍 뛰었다.
"아, 지금 나더러 밑지고 팔라는 거유?"
"3만 2천원!!"
어머니가 갑자기 부른 가격에 아저씨는 잠시 고민 하는 듯 했다. 하지만 곧 안 되겠는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 가격에는 안 돼요.."
"관둬요!"
Round3 어머니 vs 옷장사 아저씨
이제 시장 한 바퀴를 다 돌았다. 나는 다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사촌누나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우리를 시장 국수집으로 데려갔다. 우리는 거기서 국수와 수제비를 맛나게 먹었다.
식사를 한 후 어머니는 우리를 데리고 다시 그 가게로 갔다. 우리가 정말 간 줄로 알았던지 그 아저씨는 약간 놀란 얼굴로 우리를 쳐다봤다. 어머니는 웃는 얼굴로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아저씨, 이거 3만원에 줘요~"
아저씨는 피식 웃고 말았다.
" 그 아주머니 참.. 3만원은 너무했고 3만 2천원에 합시다!"
"그래요. 호호"
그렇게 거래가 성사됐다. 어머니의 후려치기 신공에 가격은 4만원에서 3만 2천원이 됐다. 어머니는 값을 치르고는 사촌누나의 손에 옷이 든 비닐 봉투를 쥐어주셨다.
(이미지 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오늘 아침 일어나 뉴스를 보니 트럼프가 6월 12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다고 한다. 뉴스를 계속 보는데 머리 속에서 오버랩 되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그 옛날 어머니가 동대문 시장에서 시전하셨던 후려치기 신공이었다.(어머니의 공력은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북한의 외교는 '벼랑끝 전술'로 유명하다. 그동안 서방의 쟁쟁한 외교관들이 여기에 끌려다녔다. 북핵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이 절륜의 외교술 덕분이었다.
그런데 2018년 북한은 북핵과 체제보장을 놓고 장사치 출신 대통령 트럼프를 상대하게 됐다. 그 동안 상대했던 협상 파트너들과 아주 많이 다른 타입이다.
북한은 트럼프가 놓인 상황이 좋지 않음을 알고 외줄타기식 설레발을 시전했지만 트럼프는 장사꾼의 후려치기로 응수했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북한의 실책이다.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고 미국의 국내 정치상황이 트럼프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인 트럼프의 사정일 뿐이다.
북한의 협상 파트너로서 트럼프는 전혀 불리한 위치에 있지 않다. 더구나 그는 거래와 협상에 능하다.
북한은 지금 존망의 기로에 서 있다. 여기서 핵개발을 계속한다? 미국의 선제공격을 초래하는 자살행위다. 미국은 절대 북한이 제대로 된 ICBM을 손에 넣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협상을 계속해야 한다. 이제 협상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그런데 북한은 처한 상황에 비해 너무 세게 나갔다. 중요한 건 협상의 내용인데 이대로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어렵겠다고 트럼프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이제 1 Round를 끝낼 때가 됐다고 판단한 것이 아닐까?
미국 조야에서는 트럼프를 불신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난 그가 북한을 상대하는데에는 적임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이 협상은 어떻게 흘러갈까? 이 협상이 월드컵보다 더 재미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