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글쓴이는 먼저 물에 빠진 사람이 왜 죽는 지 아느냐고 물었다. 일견 뻔한 질문으로 보였다. 물에 빠진 사람이 왜 죽느냐고? 그걸 지금 몰라서 묻는 건가? 씩 웃으며 이후를 읽었는데 생각보다 그 대답이 그럴싸 했다.
글쓴이왈 물에 빠진 사람이 죽는 이유는 착각 때문이란다. 자기의 힘으로 물에 떠 있는 거라는 착각.. 그래서 죽을 힘을 다해 허우적댄다는 것이다. 그러다 폐에 물이 차면 죽는다고 한다. 그렇게 죽고 나면 그때서야 물에 떠오른다고..
그는 말했다. 물에는 부력이라는 힘이 있다고.. 그 힘으로 사람은 물에 떠 있을 수 있는 거라고.. 그는 물에 빠진 사람이 살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고 했다. 몸에 힘을 빼고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진 사람처럼 살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었다.
산중에서 도 닦는 스님이나 하실 법 한 말씀이었는데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인생사 내 맘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으니 되는대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것도 인생에 주는 하나의 교훈이 될 수 있지만 난 그보다는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는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유유히 깊은 바다 속을 헤엄쳐 다니는 돌고래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어떤 친구를 미워했던 적이 있다. 그 친구가 나에게 특별히 잘못한 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매우 선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를 미워했던 것은 그가 내가 못한 일을 너무 쉽게, 하는 것 같지도 않게 해냈기 때문이었다. 나는 순간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한 나는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친구는 그런 내 기분을 눈치 챘는지 내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중에 그 상황을 복기해보니 일이 그렇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난 내가 생각한 틀에 일을 끼워 맞추려 했고 그 친구는 이미 생성된 흐름대로 일처리를 한 것이었다. 난 쓸데없이 일을 어렵게 꼰 것이고 그 친구는 그 상황에서 가장 손쉬운 방법을 찾아내 실행에 옮긴 것이다.
물에 흐름이 있듯 일에도 흐름이 있다. 무엇이든 흐름을 거스르며 일을 하려면 곱절의 힘이 든다. 그래서 일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먼저 일에 관계된 액터들이 누군지 파악한다. 그리고 그들의 목표가 무엇이고 그들은 현재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 지를 살펴본다. 이쯤 되면 대강의 흐름이 눈에 들어온다. 디테일을 파악 하기 전 내 포지션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를 고민한다. 포지셔닝과 디테일 파악을 끝내고 나면 출구전략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 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난 원래 강박적인 타입이었다. 한때 열정과 의지만 있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신화적인(?) 믿음을 갖고 살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난 일이 잘 안 되면 곧잘 나 스스로를 윽박지르고 다그쳤다. 그러면 그때는 각성제를 맞은 듯 주의력과 집중력을 회복했지만 효과는 오래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런 방식은 극심한 피로도를 동반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처음에는 일이 잘 풀리는 듯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난 여유를 잃어버렸다. 일이 꼬이기 시작하면 난 또 다시 스스로를 다그쳤다. 하지만 이것은 심리적으로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이 일은 내 가슴 속에 심대한 상처를 남겼다. 시간이 지나도 곱씹어보면 볼수록 가슴이 쓰려오는..
그러다 고수를 만났다. 하이 퀄리티의 퍼포먼스를 시전하는 것만으로도 내 어리석은 방식을 싫컷 비웃을 수 있었던 사람.. 그는 어느 새 말 없이 날 가르치고 있었다.
'하수야.. 일은 이렇게 하는거야..'
흐름을 자유자재로 이용할 줄 아는 그의 일처리 방식은 참으로 효율적이었다.
그후로 난 그를 흉내내기 위해 애 썼다. 나 같은 얼치기가 고수를 하루 아침에 흉내 낼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서당개 3년이면 풍얼을 읊는다고 그럭저럭 그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길 수 있게 되는 시기가 왔다. 그때가 되서야 내 마음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해마다 이 맘때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의 1992년작 '흐르는 강물처럼'이다. 이 영화에서 맥클레인 가문의 종교는 낚시다. 맥클레인 목사가 두 아들을 강가로 데리고 나가 플라이 낚시를 가르치는 장면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신비한 물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세 부자의 낚시줄이 흐르는 강물 위로 펄럭거린다. 부드럽게 휘어지며 강물 위를 훑는 낚시줄은 내가 살아야 할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렇다. 그렇게 용 쓴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흐르는 강물처럼 그렇게 유유히 흘러만 가도 충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