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교실 뒷자리 사물함 위에는 항상 기차모양 연필깎이가 있었다.
사각사각 소리가 듣기좋아서 연필이 조금만 닳아도 뒤로가서 기차모양 연필깎이를 돌렸다.
집에서 연필을 깎을때는 어머니께서 깎아주셨다. 사과 껍질처럼 깎여나온 연필껍데기는 냄새가 아주 좋았다. 통에 담아두고 계속 맡고 싶을 정도로
지금은 샤프, 펜, 키보드가 연필을 대신하지만 내가 어렸을때는 샤프보다 연필을 많이 썼다. 그시절 나에게 샤프는 비싸고 예민한 상품이었고 샤프는 곧 사라질 제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나는 연필이 좋았다
가끔 회사에서 연필을 쓰는 분들을 보면 잊고지낸 아날로그적 감성이 되살아난다.
사각사각. 슥슥.
운동장에서 돌맹이로하는 땅따먹기도 재미있었지만 지우개따먹기도 스릴있었다. 운동장에서 따먹히는 땅은 내땅이 아니지만 책상에서 따먹히는 지우개는 진짜 나의 지우개니까. 주황색 포장의 물컹물컹한 잠자리표 지우개를 손가락 끝으로 쑥 눌러 상대방의 지우개를 땄을때의 기분이란 지금의 스팀 떡상 만큼 기분이 좋았다. 지우개를 쓰면 지우개 똥이 나오는데 그걸 뭉처서 지우개를 다시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지우개똥을 모아 아이들끼리 수업시간에 몰래 던지기도 했다. 지우개똥을 자주 맞는 이쁘장한 여자아이들은 울먹이며 선생님께 놀리기도 했다
지금은 카카오톡으로 실시간으로 자신의 근황을 나눈다. 심지어 사진, 동영상까지 고화질로 느낄수있다. 어릴때 나의 편지상대는 막내이모였다. 막내이모는 늘 편지의 첫문장을 시적인 표현들로 시작했다. 새들의 노래가~ 천사의 미소가~ 하면서
그런 이모의 편지가 오는 날이면 누나랑 뛰어가서 이불위에서 편지를 함께 뜯어보곤 했다. 조그마한 종이에 몇일치 일상을 적어낸 이모의 편지는 실시간으로 안부를 묻는 지금의 카톡과 분명히 달랐다.
그리고 그때 그시절 편지감성을 군대에서 느꼈다. 나는 아직도 훈련병을 포함해 제대할때까지 받은 모든 편지를 다 모아두었다.
훈련소는 낯설고 무섭고 밖이 그립다. 그런곳에서 편지는 밖의 소식을 듣고 소통 할 수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나는 훈련소에 입소하자마자 메모장, 편지지 가리지않고 편지를 써내려갔고 많은 편지들을 받았다. 군대 특성상 2~3일에 한번 편지를 받을 수 있었고 2~3일간은 몇일전에 온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언제 다음 편지가 올까 기다리며..
연인들끼리도 손편지를 잘 안쓰는 지금 손편지의 추억은 '기다림'으로 남아있다.
카카오톡은 글자 제한이 거의 없다. 그러나 문자는 일정분량을 넘어가면 MMS로 바뀐다. MMS로 바뀌면 돈이 더 나오기에 하고싶은 말을 최대한 압축해서 전송한다. 예전에는 '알'이라는 청소년을 위한 요금제가 있었는데 한달에 주어진 알이 얼마안된다. 문자나 통화를 하면 이 '알'이 소진되는데 알을 아끼기 위해 아이들이 줄임말을 많이 쓰고 띄어쓰기도 생략하고는 했다. 예를 들어 "시흥사거리로 나와"를
"시사" 라는 두글자로 줄이듯이
어쩌면 줄임말들의 기원은 이때 나온것이 아닌가싶다. 그리고 카톡은 상대가 읽었는디 확인이 가능하지만 문자는 알수가 없다. 좋아하는 연인과 문자를 할때 지금 이사람이 읽었는지, 씹은것인지 확인할수 없는 답답함, 두근거림이 있었다.
그 시절 문자의 추억은 줄임말과 두근거림으로 남아있다.
방학때 밀린일기를 쓰느라 친구에게 그당시 날씨를 물어본적이 있다
일기가 밀려 숙제가 되어버리면 정말 쓰기 싫지만 자랑하고싶은 일이 있으면 얼른 쓰고싶어진다. 그리고 선생님이 어떤 도장을 찍어줄지, 어떤 코멘트늘 담아줄지 기대된다. 일기는 어찌보면 선생님과 쓰는 펜팔같기도 했다. 부모님이 싸웠다는 글에는 위로해주고 용돈을 받은 일에는 축하해주신다.
좋은 코멘트를 받고싶어 거짓말을 한적도 있다.
선생님이 써주는 한줄 코멘트와 도장이 곧 내 일기의 가치였다.
그 시절 일기의 추억은 설렘으로 남아있다.
#놀이터의 추억
지금은 놀이터에가면 아이들이 거의 없다. 학원에 가거나 집에서 게임을 하느라고 그렇다. 내가 어렸을때는 놀이터에서 할수있는 놀이가 수십가지였다.
놀이기구가 많은 아파트는 좋은 아파트로 인식됬고 놀이터만 있으면 하루종일 노는것도 가능했다.
두꺼비집 놀이, 탈출, 얼음땡, 사막놀이, 소꿉놀이, 왕자와 거지 등등
우레탄 바닥으로 된 요즘 놀이터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모래먹는 아이들도 추억속에 있다.
그 시절 놀이터의 추억은 지금의 놀이동산보다 무궁무진한 창의력의 장으로 남아있다.
어제 책장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초등학교때 연애편지가 이 글을 쓰게 해주었다. 연필로 몇번을 지우면서 하고싶은 말을 꾹꾹 눌러담았던 추억.
디지털시대에 형태가 없는 화폐가 오고가는 요즘.
500원짜리 동전 하나면 세상을 다 가진것같았던 그때 그시절의 깨끗하고 맑았던 마음이 그리워진다.
돈주고도 살 수없는 그때의 아날로그적 감성...
가끔 아날로그 제품들이 뜨고있다는 뉴스기사를 보면 나만 그런것이 아니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