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휴전협정 이후, 한반도는 이념적으로 나눠지게 되었고 남과 북 모두 각각의 정부를 수립하면서 서로 협력하는 것이 아닌 철저하게 분리된 삶을 살아왔다. 소통 없는 60여년의 세월이 흐르고 남과 북은 사고방식부터 생활양식까지 굉장히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 왔다.
오늘은 북한에서만 존재하는 독특한 명절과 남한과 비슷한 명절을 각각 나누어 포스팅 해보려고 한다.
과거 해방 직후에는 명절을 쇠는 것에 있어서 남북 간에 큰 차이가 없었다. 서로 상이한 체제아래 있었지만 주민들의 생활까지 영향을 미치기에는 이른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950년 6.25전쟁의 발발은 남북사회 전반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인구의 전반적 이동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전통적 방식의 마을 공동체적 명절맞이는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휴전이후 북한은 전후복구와 내부 사회주의 건설에 총력을 기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북한 주민들의 가치관과 생활 물적 기반의 변화가 오게 된다. 이는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서 ‘인민의 생활풍습을 개조’시키고자 하는 현실적 요구에서 의도된 것으로 북한사회의 많은 전통적 명절들이 소멸되거나 축소 조정하였다. 물론 오랜 풍습으로 지켜온 과거의 명절들이 한 번에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되살아나는 듯한 모습도 보이지만, 사실상 오늘날의 북한에는 과거 ‘전통적인 풍습 그대로의 명절’은 거의 없고 사회주의 사회에 걸맞은 새로운 명절이 생성, 발전되고 있다. 이렇듯 오래전부터 남북이 관습적으로 지내온 명절을 북한에서는 체제 선전을 위해 이용한다는 점에서 북한의 명절은 알아 볼 가치가 있다.
북한에서 국가적 명절과 민족 명절은 따로 분류되고 있다. 특히 김정일 생일날(2.16), 김일성 생일날(4.15), 국제 노동자절(5.1), 해방의 날(8.15), 북한정권 창건일(9.9), 당 창건일(10.10), 헌법절(12.27)은 사회주의 7대 명절로서 공산주의사상의 고취와 체제선전 그리고 김씨 가문 우상화라는 사회주의 명절의 설정목적에 부합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날들이다.
태양절 (4월 15일), 광명성절 (2월 16일)
태양절은 김일성을 태양이라 지칭하여 만든 그의 생일기념일이다. 1997년 7월 8일 김일성 주석 3주기를 맞이하여 그의 생일이 태양절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날은 당과 인민과 수령이 일체를 이루며 주체시대의 명절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히는 날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이 날을 주목하는 데 그 이유는 태양절 전후로 하여 북한이 우리나라에게 위협적인 군사도발을 할 가능성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태양절의 대표적인 행사로는 만경대상 체육대회,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이 있다.
광명성절은 1974년 2월 초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김정일 위원장이 공식 지명된 32회 생일 때부터 시작되어 1976년에는 정식 휴무일로 지정됐다. 평양에서 열린 탄생 70돌기념 중앙보고 대회에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대원수’ 칭호를 부여했는데 이는 김정일을 김일성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은 우상화 작업의 일환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매년 백두산 밀영 고향집과 정일봉 답사 행군, 혁명사적지 탐방, 사진 전람회, 영화감상회, 김정일 화 전시회 등 다채로운 행사와 공연들이 펼쳐진다.
이 2가지 기념일에는 당국에서 의도적으로 명절 분위기를 조성하고 북한의 배급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데도 이날만큼은 주민들에게 부식물과 배급을 함으로써 주민들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다리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해마다 김 부자 생일 위해 3억 불 이상을 행사비에 쏟아 붓고 있다고 한다. 그 돈은 북한 전 국민이 굶지 않고 100일 동안 먹고 생활할 수 있다고 추측된다.
특히 북한정권창건기념일, 조선로동당창건기념일 등과 같은 국가기념일에서 집단적 의식을 장엄하게 거행하는 것은 국민적 관심을 촉구하는 정치적인 효과가 있다. 이를 통해 대내적으로 일체감과 단결심을 불러일으켜 사기를 올리고, 대외적으로 는 다른 나라의 침략을 억제하거나 정치적 의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이와 같은 국가적 명절을 알아보자.
북한정권창건기념일 (9월 9일)
북한정권창건기념일은 단어그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을 대내외에 선포하는 날을 기린다. 특히 1997년9월9일은 북한당국이 김일성 주석이 출생한 해인 1912년을 원년으로 하는 주체연호를 모든 공식문서에 표기하기 시작한 날로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날은 다양한 예술 공연 외에 김일성 광장에서 수만 명의 육해공군 열병식등 군중시위가 진행된다. 또한 조선로동당창건기념일은 헌법에서는 노동당만 유일하게 영구적으로 국가의 사회, 군사적 모든 정책을 정하고 집행하는 지위를 누리기 때문에 이 기념일이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평양대극장, 모란봉극장, 윤이상 음악당, 평양교예극장 등 평양과 지방의 극장 및 공연장에서 축하공연과 영화상영이 열린다. 이와 같이 북한의 명절은 조상전래의 민속명절은 배격한 이른바 사회주의 명절이다. 따라서 오랜만에 만난 친지와 정을 나누는 남한과 달리 북한은 명절을 세습체제 정당화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설날과 추석
북한에서는 6.25 이후부터 1960년대 까지 설과 추석 명절이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어긋난다고 하여 배격하였다. 하지만 1972년 남북회담에서 남측이 “북한사람은 어떻게 민족명절을 모르냐”라는 발언을 한 이후로 민족 명절을 인정하기 시작하고 1988에는 추석,1989년 '양력설(1월 1일, 신정)'을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양력설(1월 1일)에는 의무적으로 김일성 주석 동상을 찾게 하지만, 음력설(구정)에는 주민들의 뜻에 맡긴다. 북한은 설날 당일(1월 1일)과 추석 당일에 쉬는 대신 그 주간의 일요일에 보충 근무를 하고 있다. 남한에서 설날이면 흔히 떡국을 먹지만 북한은 지역마다 먹는 음식에 차이가 있어 떡국을 먹는 지방도 있고 고깃국이나 동태국을 먹는 지방도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경제상황의 악화로 배급이 줄면서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추석에는 북한도 남한과 마찬가지로 송편을 먹지만 북한의 송편은 남한의 송편보다 3배 정도 크고, 속에는 주로 팥과 시래기를 넣는 경우가 많다. 북한의 송편이 남한보다 큰 이유는 떡을 만들 때에 쓰는 쌀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이다. 추석이 되면 평상시보다 더 좋은 특식이 제공된다. 하지만 식량난이 가속화되던 90년대 이후로는 특식 배급도 대폭 줄어들어, 2000년대에는 한 가구당 옥수수 과자 1kg과 소량의 간장과 된장, 생선 3마리 정도만이 특식으로 주어진다.
식수절(3월 2일)
식수절은 북한의 식목일이다. 현재 북한의 식수절은 3월 2일 이지만 지금의 날짜로 지정 된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식수절은 원래 4월 6일이었다. 하지만,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46년 3월 2일 평양 모란봉에 올라 산림조성 구상을 제시한 것을 기념해 지난 1999년에 3월 2일로 변경하였다. 남한의 식목일이 4월 5일, 북한의 원래 식목일이 4월 6일인 것을 볼 때에 나무를 심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인 4월보다 3월을 식수절로 정한 이유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우상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볼 수 있다.
북한에서는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모든 인구가 총동원되어 나무심기를 하며 지방의 산림보호소의 총지휘하에 학교, 기관 등 단위별로 배정하여 나무를 심는다. 그러나 산림 보호원들의 나무 심기가 시작될 때, 뙈기밭에 나무를 심게 하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꺼려하는 경우가 많다. 주민들은 배고픔을 해소하기 위해 야산을 개간하여 뙈기밭에서 경작하고 있는데, 자신들이 어렵게 개간한 곳에 나무를 심는 것이 좋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식수절에 심어진 나무들은 식수절 이후 모두 사라지게 된다. 북한은 연료를 나무와 목탄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수절이 끝나고 나면 심었던 나무 대부분을 거두어 사용하고 있다.
조국해방의 날 (8월 15일)
남한에서 3대 명절로 불리는 광복절과, 북한에서 조국해방의 날이라고 불리는 이날은 남북 기념일 날짜가 같은 유일한 기념일이다. 그러나 두 나라 기념의 의미는 다르다.
남에서는 광복절을 ‘일제로부터 광복을 되찾은 날’로 인식하고 있다. 반면에 북한에서는 ‘조선 인민의 투쟁으로 일제를 몰아내 해방을 쟁취한 날’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는 북한 정권 주도세력이 만주에서의 항일무장투쟁을 한 역사에 있다. 그래서 김일성이 이끄는 투쟁에 의해서 일제가 항복하게 된 것이라고 이해하며 이들은 인민들의 투쟁에 힘입어 조국해방이 이루어졌다고 믿는다.
이러한 인식이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는지는 많은 논란이 있다. 이는, 광복 직전 소련접경지역에 있던 김일성 등 항일유력부대가 국내진입작전을 수행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미리 국내작전에 나가있던 유격대 일부를 제외하고 소련의 만류에 의해 국내 진공작전에 참여하지 못했다. 하지만 북한은 "김일성 동지께서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치시며 찾아주신 조국해방의 날"로 정치적으로 선전한다. 이러한 선전으로 북한은 항일투쟁을 통한 국가 ‘정통성’을 강조하며 민족해방 기념일로 부르고 있다.
또한, 광복절은 시대적 변화에 따라 의미와 비중도 변화되어왔다. 70년대 이전에는 태양절과 함께 조국해방의 날이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 명절이었고, 80년대와 90년대에는 조국통일을 곧 민족해방으로 인식하는 북한의 정책기조에 따라 국가 명절의 의미보다는 오히려 남북관계와 관련하여 그 의미가 더 중시되었다. 2000년에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6.15 공동선언이 발표되면서 남북관계와 관련된 8.15 의미는 2000년 이후 점차 축소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통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대감이다.이를 위해 여러 과정을 거쳐서 남북 모두가 기념할 수 있는 명절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1)통일 기념일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날을 기념하기 위해 광복절을 만든 것과 같은 맥락으로 분단된 한반도가 하나로 재통합 되는 날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일을 만드는 것이다. 통일기념일은 한반도가 통일이 된 후 남북이 처음으로 함께 만들고 똑같이 기념할 수 있는 명절이다. 통일기념일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의 차이도 없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다면 보다 쉽게 주민들의 심리적인 통합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 예로 국가가 통일기념일 백일장 같은 행사를 대규모로 주최하여 시민들의 참여를 도모하거나 루마니아 통일기념일 행사처럼 거리 행진을 하는 것을 들 수 있다.
(2)민속 명절
민속명절의 이용이다. 당의 목적에 맞추어 만들어진 사회주의 명절이 아닌 과거부터 있었던 민속명절의 경우 남북 주민들이 공통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비록 민속명절도 당의 목적에 의해서 날짜가 변경되거나 사라졌지만, 이를 남한과 통합, 발전시키면서 민족적 유대감을 증가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어떻게 통합하느냐라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남한의 기념일에 맞출 것인지 북한의 기념일에 맞출 것인지. 만약 개편이나 절충을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설이나 추석 같은 민속 명절들은 남북한 사이에 큰 차이가 없지만, 우상화 작업과 체제 선전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회주의 명절의 경우 우리나라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북한은 원래 존재했던 명절의 날짜를 김일성과 김정일의 행적이나 업적에 따라 변경하거나 새로운 명절을 만들어냈다. 이를 통해 북한은 명절을 김일성과 김정일의 우상화 작업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광명절과 태양절과 같은 국가 기념일을 장엄하게 거행하는 것은 국민의 관심을 촉구하는 정치적인 효과를 도출시키려는 의도이며 동시에 일체감과 단결심을 높이려는 목적을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역사가 왜곡되고 명절의 진정한 의미가 사라지고 있다.
60여년의 분단 세월동안 남과 북은 각기 다른 체제아래에서 상이한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지니면서 살아왔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체제의 차이는 명절처럼 남북 모두에게 비슷한 의미를 가지는 것들도 다르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그 본질에는 변화가 없다. 명절이라는 공통분모에서 접점을 찾아내고 유대감을 발전시킨다면 통일 이후에도 성공적인 사회통합을 이루어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