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에 올렷듯이 나의 여자친구는 공무원 준비생이었다. 아버지 병간호를 위해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시험공부를하다가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달 시험을봤다. 시간이 부족해 1교시에 답안지에 마킹도 다 못하고 떨어졌다. 나도 많이 위로 해줬고 여자친구도 애써 괜찮다고 운명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알고있었다. 여자친구가 공부를 더 하고싶어 한다는것을. 오래준비했고 모의고사 성적도 좋았으나 제대로 시험도 못보고 1교시만에 떨어졌으니 얼마나 아쉽겠는가.
3년을 사귀면서 절반은 병간호와 수험생활로 제대로 함께 즐긴적이 없었다. 약속을 잡거나 연락을해도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병간호를하거나 공부를 해야할시간을 방해하는것 같았기에.
시험에서 떨어진것은 슬펐지만 요즘 나는 행복하다. 한동안 하지못했던 제대로된 연애를 하고있기때문이다. 여기서 제대로된 연애란 시간에 쫓기지않고 맘껏 서로를 사랑하는 연애이다.
그런데 어제 여자친구가 공부를 1년더 하고싶다고한다. 모의고사 성적도 합격권이고 이번 시험역시 풀어보니 합격권이었다는것이다. 1교시에 답을못써서 떨어진것도 아쉽다고한다. 모두 맞는 소리다.
그런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해야한단다.
내여자친구는 20살부터 용돈을받은적이 없다. 용돈을 받을 형편도안되었고 지금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나는 이해가되지 않았다. 1년더 하는것이면 더 열심히해야하는데 하루4시간씩 알바를 하면서 어떻게 공부를하며 4시간 알바는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화가났다. 여자친구에게 화난것이 아니라 상황에 화가났다. 공부를하면서 일해야하는 상황, 다시 또 여자친구가 수험생이 되는 상황.
내인생이 아니라 여자친구 인생인데도 나는 내인생인 마냥 반대했다. 이제 곧 30살인데 이번에도 떨어지면 취업도 힘들다고. 1년넘게 기다렸고 3년넘게 사귄 남자친구의 입장에서 충분히 할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우리는 3년간 한번도 싸운적이 없다. 근데 어제는 좀 싸워보고싶었다. 그러나 여자친구와 싸울숮ㅈ없기에 소주와 싸워보려 밤늦은 퇴근길에 혼자서 소주한잔했다.
고민해봤다. 내가 반대할 자격이 있는지, 왜 반대했는지.
많은 거추장스러운 핑계(합격의 어려움, 시간의 아까움 등등)가 있었지만 결론은 이거였다.
'내가 기다리기 싫어서'
딱 이게 근본적 반대의 이유였다. 남들처럼 평일에도 만나고 연애다운 연애를 못하게 된다는것이 싫었던 것이다.
나는 정말 이기적인 놈이었다. 겨우 이거때문에 한사람의 인생이 달린 문제를 반대했다니.
3년을 사귀면서 여자친구가 무엇인가를 이렇게 하고싶어하는것을 못봤다. 29년살면서도 이런적이 없었단다. 자기는 법이 너무좋고 그래서 법원행정직을 하고 싶다고한다.그치만 내가 싫으면 안하겠다고 한다.
밤늦은시간까지 이야기하다가 내일 이야기하기로 하고 잤다. 자고일어나니 와있는 장문의 카톡.
믿어달라는 장문의 카톡이었다.
너무 가슴이 아팠다.
여자친구는 공부를하며 아버지도 잃었고 시험에도 떨어졌다. 그렇게 힘이든 아이의 꿈을 내가 반대한것이다. 눈물이 많은 아이가 또 내가 반대한다고 얼마나 울었을까.저 긴 카톡을 쓰면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하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았을까.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녀의 꿈을 방해하겠는가. 떨어져도 좋다. 30살에 백수로 남아도 좋다. 그녀의 아름다운 도전은 응원받아 마땅하다.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내일 내가하고있는 2가지 후원을 끊기로했다. 그리고 이것으로 여자친구의 꿈을 응원할것이다.
3년간 함께있으면서, 얼마나 힘든지 알면서 그녀의 마음보다 내 마음을 먼저 생각한 나는 정말 이기적인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