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시계는 5시 42분. 창밖은 이미 어둑어둑.
그렇다. 오전이 아닌 오후.
언젠가부터 주말 중 하루는 'A deep sleep day'가 됐다. 구태여 깨어날 필요가 없다는 안도감 때문이라기엔 좀 심할 정도.
어젠 아주 오랜만에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밤 10시에 퇴근을 한 뒤 집에 도착해 씻지도 않고 소파에 드러누운 게 잘못이었지. (그리고 아무도 깨워주지 않았다는...)
등에 땀이 차는 느낌에 몸을 일으켜보니 이미 새벽 5시 20분... 대충 씻고 다시 침대에 누워 이불을 푹 뒤집어 쓰고 스팀잇을 켰다.
야심한 시간에도 스팀잇은 여전히 혈기왕성했다. 눈길을 사로잡는 여러 개의 게시물을 읽고 댓글을 달다보니 두어 시간쯤 흘렀다. 또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까 말한 것처럼 하루의 절반 이상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사실 지지난 주에는 19시간이나 잤더랬다. 금요일 밤 10시쯤 잠들어 다음날 오후 7시가 넘어서야 눈이 떠졌다.
그것도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생사를 확인하기 위한 동생의 다급한 부름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하루를 통으로 잠만 잤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소식은 가족 단톡방으로 퍼져 나갔고, 막내이모는 이 신기하고도 어이없는 사건을 자신의 친구들에게 널리 알렸다고 했다.
"정말 대단하지 않니? 19시간을 잤댄다. 허리도 안 아픈가?"
그랬다. 허리는커녕 화장실도 안 가고 싶었나보다. 배도 고프지 않았고 꿈도 꾸지 않았다. 그토록 자주 눌리는 가위귀신도 그 날 따라 찾아오지 않았다.
솔직히 난 잠이 많은 편은 아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계획표를 짤 땐 언제나 잠자는 시간이 가장 후순위였다. 하고 싶은 일들에 비해 시간이 부족하면 망설임 없이 수면 시간의 칸을 줄이곤 했다.
그런데 최근 3개월 간 내 주말의 절반이 잠으로 날아갔다. 평상시의 나 같으면 평일의 힘겨운 일상에 대한 보상심리처럼 주말을 더 바쁘게 보낼텐데... 요샌 이상하게 잠의 농간에 지고 만다. (알람소리도 안 들린다.)
답답한 마음에 네이버에 '잠을 자는 이유'를 검색해봤다.
"사람은 보통 하루에 여덟 시간, 평생의 약 3분의 1을 잠으로 보낸다. 잠을 자는 동안 우리의 몸은 백혈구의 활동을 활발하게 해 부족한 면역 물질을 만들어 내며, 몸 안에 쌓인 피로 물질을 분해하고 깨어나서 쓸 영양분을 준비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뇌의 활동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잠은 부족해진 신경전달물질을 보충해 주고, 깨어 있는 동안 배우고 체험한 것에 대한 정보들을 차곡차곡 정리하여 기억 저장소에 보관함으로써 다시 새로운 것을 익힐 수 있게 해 준다.
[네이버 지식백과] 생명을 유지하는 영양소와 잠 (인체에서 살아남기 1, 2, 3, 2009., 아이세움)"
이 중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이 문장이다.
무엇보다도 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뇌의 활동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순간 머리가 띵했다. 요새 들어 부쩍 드는 생각. '머릿 속이 복잡하다'
최근 몇 개월 간 여러 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몰아닥치며 나의 뇌는 쉴 틈이 없었나보다. 밥을 먹을 때도 씻을 때도 차를 타고 이동할 때도 TV를 볼 때도 난 자꾸만 무언가를 생각 중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멍을 때리고 우울해하고 한숨을 쉬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저도 모르게 '생각'이라는 행위 자체를 꺼리게 된다. '생각하고 싶지 않다'
호기심이 멈추며 새로운 것들에 대한 관심사가 줄어든다. 일상 속에서 궁금한 것이 사라진다.
잠은 뇌가 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래서였나보다. 내가 깨지 못하고 자꾸만 잠이 드는 게.
주말만이라도 뇌를 쉬게 하라는 무의식의 외침.
생각의 멈춤은 결국 의욕 상실로 이어진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한 상태로 변하기 전에 지친 내 뇌를 청소하기 위한 최후의 발악.
그래도 스팀잇을 시작한 이후로 조금은 머리가 맑아진 기분이다. 뒤죽박죽 섞인 퍼즐들을 글로 풀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며칠 뒤 다시 읽으면 너무 의식의 흐름처럼 써있어 부끄러워 진다는 거...)
내게 스팀잇은 '뇌클리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