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실과 체육관. 어울리지 않은 두 공간이, 내가 매일 머무는 곳이다. 나는 이 두 공간에서 내 정신과 육신을 돌본다. 집필실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정신을 돌본다. 체육관에서 땀을 흘리고 치고받으면서 육신을 돌본다. 정신을 돌보는 일도, 육신을 돌보는 일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언제나 사람이 있다. 육신을 돌보는 그 곳에서 함께 한 사람들이 있다.
언젠가는 그네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정리해서 전해주고 싶었다. 그네들은 육신을 돌보는 방법만큼, 정신과 영혼을 돌보는 방법을 잘 모르니까. 어쩌면, 그것은 어울리지 않은 공간을 넘나드는 사람에게 주어진 책무이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의 책무인지도 모르겠다.
체육관에는 세 명의 프로 복서가 있다. 여자 복서 한 명과 남자 복서 둘. 다들 저마다의 사연들이 있다. '여자 복서'는 소설을 좋아하는,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다. 사랑받은 기억이 많지 않아서 사랑하는 법도, 사랑받는 법도 서툰 아이다. 하지만 상처 받았기에 누군가에게 상처주지 않을까를 늘 조심하는 아이다. 사랑하는, 사랑받는 법이 서툰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듯 이 아이도 때로 외롭고 때로 덮쳐오는 우울과 불안에 잠식당한다.
'남자 복서 1'은 말이 없는, 감성이 풍부한 아이다. 말이 없어서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고되고, 불안하고, 서글픈 삶을 꾹 참고 복싱을 하고 있다는 것만 어려풋이 알 수 있을 뿐이다. 간절히 이기도 싶어 했던 시합에서 앞니가 부러져 날아가 버렸다. 앞니보다 마음이 더 다쳤을까 걱정했다.
남자 복서 2는 삶이 복싱인, 마음이 약한 아이다. 중학생 때 시작한 복싱을 스물넷까지 해오고 있으니, 삶의 절반이 복싱인 셈이다. 복싱을 한 세월만큼 실력도 좋다. 하지만 여느, 20대가 그렇듯이 이 아이도 마음이 약한 탓에 때로 흔들리고, 고민도 많다. 대부분의 어른들처럼, 후회와 미련에 잠식당한 삶을 반복할까 걱정이 된다.
나는 이 셋이 좋다. 이 세 아이는 각자의 사연에도 불구하고 후회와 미련 없는 20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 나이가 들면 안다. ‘해본 것’보다 ‘해보지 못한 것’들 때문에 후회와 미련이 쌓인다는 걸. 또 그 쌓인 후회와 미련 때문에 삶이 엉망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서른일곱에 프로 복서가 되겠다고 체육관을 찾았던 건, 삶이 더 이상 엉망이 되지 않길 바라는 절박한 외침이었으니까.
무한한 가능성만큼 아니, 무한히 가능하기에 불안한 것이 20대 아닌가. 이 아이들에게 고민과 아픔, 방황이 왜 없겠는가? 복싱을 포기해야 하는 이유들이 하루에도 수 만 가지 떠오를 테다.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이 셋은 자신들에게 들이닥친, 삶을 ‘해보지 않고’ 도망치지는 않는다.
언젠가, '남자 복서 2'가 내게 말했다. “제가 복싱을 정말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네가 복싱을 정말 좋아하는지 아닌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복싱, 해라” 그 아이에게 돌린 답이다. 그냥 한 말도, 무책임한 말도 아니었다. 복싱이든 뭐든, 그것을 정말 좋아했는지 그것을 할 때는 잘 모른다. 시간이 지난 후에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때 나, 그거 참 좋아했었구나!”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삶이 그런 거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해보는’ 것이다. 자신에게 닥친 삶을 일단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후회와 미련을 남기지 않게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후회와 미련을 남기지 않고 ‘해보는’ 삶이 얼마나 근사하고 아름다운 삶인지 이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 아니, 자신들이 얼마나 근사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어찌 이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매일 어제보다 더 근사하고 아름다워지려는 이 아이들을 말이다.
'여자 복서'(의 이름은 '신보미레'다)와 남자 복서 2(의 이름은 '이기수'다)는 5월 22일에 시합을 한다. 그날, 미련도 후회도 남기지 않고 싸워서, 더 근사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 아이들이 내 나이가 되었을 때 “삶은 아름다운 거야!”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모르 파티!
Amor Fati! 보미레, 민국, 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