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컨택트]와 논(non) 제로섬 게임

shyuk36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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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본 게시물은 영화 [컨택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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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외계인이 지구로 내려오는 스토리의 영화가 개봉된다고 생각해보자. 흔히 두 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 외계인이 적개심을 품고 지구를 공격하는 시나리오

2. 순수한 외계인이 인간과 친구가 되는 시나리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월드 인베이젼], [우주전쟁]과 같은 수많은 영화들이 이미 ‘외계인 침공’이라는 장르를 통해 선보인 바 있다. 두 번째 시나리오도 [이티]로 대표되는 따뜻한 이야기들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영화 [컨택트]는 얼핏 보기에 첫 번째 시나리오와 맞닿는 지점이 많은 작품이다. [이티]처럼 소외된 외계인과 친구가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딘가 수상쩍은 비행물체가 지구 곳곳에 나타나는 방식으로 영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영화들은 대개 제로섬 게임의 방식을 취한다. 지구인은 선이요, 외계인은 악이 되는 세계관 속에서는 아무래도 둘 중 하나가 시원하게 없어져야 스토리가 끝나곤 하니까.

하지만 [컨택트]에서 외계인은 더 이상 외계인 그 자체로는 관객들에게 선악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외계인은 지구에 내려왔다는 단 하나의 사실만 남긴 채, 그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주인공을 제외한 작품 속의 지구인들만이 외계인을 선과 악, 둘 중 하나로 규정 지으려고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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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작품 이티(좌), 우주전쟁(우)

[컨택트]는 주제를 여러 개로 설정하고 이야기해도 좋을 만큼 유의미한 메시지를 많이 갖고 있는 영화다. 그러나 메시지를 오늘 이야기하고자하는 ‘논(non) 제로섬 게임’에 맞추어본다면, 이 영화는 제로섬과 논 제로섬의 공방전이라 봐도 좋다. 영화 속 주인공 루이스는 세상을 제로섬 게임이라 규정짓는 인물들 틈에서 논 제로섬을 외치며 편견의 틀을 지속적으로 깨부숴 나간다. 문명의 기반을 과학으로 보는 이안에게 언어라는 새로운 무기를 제시했으며,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열두 개의 나라에게 윈-윈하는 방법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백미는 선형적 시간에서 비선형적 시간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논 제로섬 게임에 있다. 루이스는 헵타포드라는 외계인 고유의 비선형적 언어를 이해하면서 시간의 개념이 뒤바뀌게 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일상의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까지 이르는 선형적 시간이었다면, 헵타포드를 통한 새로운 시간개념은 과거와 미래의 구분이 없어지는 비선형적 시간구조를 갖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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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시간의 깨달음으로 루이스는 선형적 시간에 얽매이지 않게 된다. 외계인들이 ‘무기’라는 단 하나의 단어만 언급했을 때, 선형적 시간에 머물러있는 인간들은 그 단어에 갖가지 의미부여를 하며 그들을 파괴시키려한다. 하나의 정보(+)를 인간들이 손해(-)라고 받아들였으니, 이 또한 극중 제로섬 게임에 대한 숨은 장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헵타포드의 습득을 통해 외계인들이 말한 무기의 의미가 총칼이 아닌 ‘언어’라는 것을 알아챈 루이스는 더 이상 그 정보를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래의 정보를 이용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공헌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영화는 12개의 나라들이 반목하지 않고 화합함으로써 논 제로섬 게임의 의의를 재확인시켜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류와 외계인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끝나는 제로섬 게임을 부정한다. 작중에서 논 제로섬 게임이라는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시기도 이 무렵쯤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길법하다. 인간들이 해당 정보를 손해라고 생각한 것은, 선형적 시점에서는 그 정보가 불확실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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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택트]가 신선한 점은 바로 그런 의문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를 던져준다는 것에 있다. 안타깝게도 영화에서 루이스가 보는 미래는 현재를 확실하게 해주는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안과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혼을 하게 되고, 그 아이가 희귀병으로 죽게 되는 온갖 미래를 다 보게 된다. 미래를 선형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비선형적으로 알게 되는 루이스에게는 이 모든 것이 현재의 시간과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미래는 현재를 확실하게 해주는 미래가 전혀 아니다. 선형적 시간의 불확실한 미래보다 더 잔혹한 비선형적 시간의 확실한 미래다. 그렇다고 그의 세계관에서는 영화 [어바웃 타임]처럼 시간을 되돌려서 지금 이 순간의 결정을 회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루이스는 영화의 마지막에 이안에게 이렇게 묻는다.

루이스: 이안. 만약 당신이 인생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알게 된다면 뭔가를 바꾸시겠어요?

이 사랑의 시작과 결말을 모두 아는 그가 미래를 전혀 모르는 이안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모습이 참 아이러니하다. 사랑이라는 지상최대의 논 제로섬 게임 앞에서는 확실한 미래도 소용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물음에 대해 이안이 답한다.

이안: 아마도.. 느끼는 걸 더 자주 말하려고 하겠죠. 내가 기억하기에 내 머리 속은 온통 별에 대한 생각뿐이었어요. 그랬던 내가 가장 놀랐던 순간이 언제인지 알아요? 그들을 만났을 때가 아니에요. 당신을 만났을 때에요.

이안의 이 한마디에 루이스의 비선형적 유기구조는 결국 끊기지 않고 하나로 연결된다. 더불어 인류를 번영의 길로 이끈 것은 미래를 아는 루이스지만, 그런 루이스를 있게 해주는 사람은 오히려 미래를 모르는 이안이었다는 점이 이 작품의 또 다른 중요 포인트다. 그리고 영화는 이안과 결혼 뒤에 펼쳐질 희노애락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 뒤, 이 모든 것을 긍정하는 듯한 루이스의 마지막 대사와 함께 엔딩 크레딧을 올린다.

루이스: 네. 좋아요


최근 스팀에서 제로섬 게임과 관련된 게시글을 여럿 본 적이 있어서 늦은 시간에 뜬금없이 관련영화를 포스팅을 해봤다. 대부분의 현상을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하는 현대의 일상생활을 봤을 때, 분명 생각해볼만한 지점이 있는 신선한 영화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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