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에서 시공간을 사랑이라는 가치로 묶어버린 크리스토퍼 놀란감독이 영화 덩케르크로 복귀했습니다.
놀란 감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물론 그만의 전매특허 편집기술을 예로 들 수도 있겠지만, 저는 각 영화마다 그가 전달하고자하는 고유의 철학을 꼽고 싶습니다. 다크나이트 트릴로지에서는 영웅=선이라는 일반적인 관념을 뛰어넘어, 선악의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배트맨을 그려냈으며 인셉션에서는 현실과 꿈 사이에서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현재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덩케르크에서 놀란 감독은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걸까요? 언뜻 보면 이번 영화는 대사도 거의 없고 등장인물들에 대한 감정이입도 배제되기 때문에 딱히 무슨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진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번 영화는 나레이션 없이 덩케르크 지역 안에서 벌어지는 생존기를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확인하는 좋은 다큐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니까요. 하지만 한정된 대사와 등장인물들의 동작 하나하나에서 그가 전달하고자하는 메시지는 이번에도 분명 있었습니다.
바로 생존에 대한 메시지, 곧 생존의 철학입니다. 영화 속에서 군데군데 등장하는 수많은 등장인물들은 생존이라는 인간최대의 본능 앞에서 각기 다른 행동을 보이는 여러 유형의 인간군상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다량의 스포가 함께 들어가 있으니 원치 않으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클릭해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화이트 헤드. 생존 앞에서 가장 일반적인 행동을 보이는 유형의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극중에서 더 이상 죽음의 문턱을 맛보고 싶지 않은 화이트 헤드는, 묵언수행하는 깁슨이라는 동료병사와 한시라도 이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본인들의 차례가 아님에도 몰래 먼저 고국으로 향하는 배에 타게 됩니다.
해리 스타일스. 화이트헤드와 깁슨이 몰래 타려던 배가 폭격을 맞고 좌초되는데 그 좌초된 배의 병사 중 하나가 해리 스타일스였습니다. 물에서 허우적대며 필사적인 수영을 하던 해리 스타일즈는 화이트 헤드의 도움으로 보다 손쉽게 육지에 다시 올라오게 됩니다. 극의 등장인물중 그나마 말도 제일 많고 붙임성도 좋아 보이는 것처럼 등장합니다. 하지만..
마크 라이런스. 민간선박 한 척을 운영하고 있는 할아버지로 등장합니다. 연륜이 있는 인물답게 생존의 상황을 숱하게 겪어 봤는지, 생존의 위협 앞에서도 비교적 침착하게 대응합니다
킬리언 머피. 전쟁의 충격으로 인해 ptsd를 앓고 있는 해군으로 등장합니다. 마크 라이런스에 의해 구조되며 더 많은 병사들을 구출하기 위해 덩케르크로 계속 향하던 할아버지를 향해 배를 당장 영국본토로 돌리라고 합니다. 전쟁의 공포 때문이죠.
톰 하디. 공군 전투기조종사로 등장합니다. 그와 함께 그의 리더, 그의 동료 잭 로우든이 3인 1조가 되어 함께 비행을 하는 장면으로 공중에서의 한 시간이 시작됩니다. 그러던 중에 리더와 잭 로우든이 차례로 독일군의 전투기에 격추되고 그 혼자 생존과의 사투를 이어가게 됩니다. 고장 난 연료측정기 앞에서 언제 다 떨어질지 모르는 연료와 함께.
그리고 이야기는 이제 클라이막스로 치달으면서 등장인물들이 각 공간에서 저마다 극한의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먼저 해변에서의 1주일. 화이트 헤드와 깁슨, 헤리 스타일즈는 배의 연속된 좌초로 인해 절망하며 바닷가를 맨몸으로 뛰어드는 한 사내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해리는 텅 빈 민간선박 한 척을 발견하고 일행을 그리로 이끕니다. 먼저 그 배를 발견한 한 무리의 병사들과 함께 말이죠. 그러나 배를 움직이기엔 너무나도 육지에 있었기 때문에 일행들은 조류가 충분히 바뀔 때까지 그 배안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문제는 그 지역이 영국군 방어선을 벗어난 적지라는 점입니다. 곱게 보내줄리 없는 독일군이 그들의 배를 향해 총격을 가하고 배에는 총알구멍이 수없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조류에 의해 바닷물이 배 안에 밀려올수록 그 총알구멍 안으로 물이 새어 들어오게 됩니다.
그렇게 배 안의 병사들이 몰살당할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 해리가 결단을 내립니다. 배가 뜨기 위해선 무게를 줄여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 벙어리 깁슨을 밖으로 보내자고 합니다. 말을 안하는 걸 보니 독일군이 분명하다면서 말이죠. 그런데 깁슨이 힘겹게 한마디를 떼는 순간 그것은 독일어가 아닌 불어였습니다. 깁슨은 프랑스병사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당장 내가 살아야하는데 그게 중요할까요. 영국인이 아닌 프랑스인은 여전히 1순위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해리는 자신의 입장을 고수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화이트헤드는 프랑스병이라고 해서 밖으로 보내는 건 잘못된 것이라 말하죠. 당연히 해리와 나머지 병사들은 화이트헤드의 말을 부정하며 오히려 깁슨의 다음 대상은 화이트 헤드 너라고 말합니다. 과연 이 극한의 생존상황에서 드러난 여러 인간군상 가운데 누가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감독은 이 다음 순간 물이 갑자기 턱밑까지 차올라 더 이상 누굴 밖으로 보내라 말할 새도 없이 병사들이 너도나도 총알구멍을 막는 모습을 연출합니다.
이제 바다에서의 하루입니다. ptsd로 인해 더 이상의 전쟁장면은 결코 원하지 않던 킬리언 머피는 배의 목적지를 덩케르크로 고수하는 할아버지를 향해 격한 거부반응을 표출합니다. 그 과정에서 할아버지의 뱃머리를 강제로 뺏으려하고 할아버지의 조수인 조지가 그걸 말리는 과정에서 선실 아래로 떨어지며 머리를 크게 다치게 됩니다. 이 사고로 조지는 실명을 하게 됩니다. 그 모습에 할아버지와 또 다른 배의 조수 톰 글린은 잠시 흔들리지만 덩케르크를 향하던 당초 계획을 고수합니다. 킬리언 머피는 자신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 내심 불편했던지 톰 글린에게 네 친구 괜찮냐며 상태를 수시로 물어봅니다. 그러던 와중에 톰 하디의 동료 비행사가 할아버지의 선박 앞에 추락하여 무사히 구조됐으며 바다 한 복판에 좌초된 배 앞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병사들을 구출해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조지는 어떻게 보면 병사들의 목숨과 맞바꿔 죽게 됩니다. 이 장면이 상당히 인상적인데, 그 이유는 맨 처음에 킬리언 머피가 조지의 상태를 물어보았을 때 톰 글린은 단호하게 괜찮지 않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조지가 죽고 난 다음 머피가 그의 상태를 물어보았을 때 톰 글린은 ‘괜찮다’고 말했기 때문이죠.
자 이제 마지막으로 공중에서의 1시간입니다. 팀원 2명을 잃고 홀로 적 전투기와 사투를 이어 나가던 톰 하디는 연료가 다 할 때까지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합니다. 특히 그의 활약상은 영화의 최고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육해공이 하나의 장소에서 만나는 그곳에서 벌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육군이 민간선박들에 의해 구출되고 있는 순간 적 비행기가 그들을 위협할 때였죠. 그때 톰 하디는 깔끔하게 적 비행기를 격추시키고 안전한 착륙을 위해 덩케르크 해안가로 향합니다. 물론 바다에 있던 육군들은 그 비행기의 조종사가 톰 하디인줄 알지 못합니다.
영화는 이 장면을 끝으로 이후 인물들의 행적을 간략히 보여주며 처칠의 연설문으로 극을 마무리 짓게 됩니다. 아직 미완으로 남아 있는 생존의 철학에 대한 결정적인 메시지를 던져주면서 말이죠.
여기서 미완으로 남아있는 문제의식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생존이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라 해도 해리가 했던 일은 과연 정당한 행동이었을까?’
'아무리 킬리언 머피가 죽음의 늪 속에서 전쟁 스트레스를 겪었다지만, 고의가 아닌 사고였다지만, 남의 귀한 자식을 죽인 일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공군도 생존의 위협에서 똑같이 싸웠는데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로 싸워야 하는 것인가?'
그에 대한 놀란 나름대로의 메시지는 모두 마지막에 던져집니다.
물이 가득 찬 배 안에서 깁슨을 죽음으로 내몰으려 했던 해리는 화이트 헤드와 함께 결국 그렇게 그리워하던 고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자신이 맹렬하게 비난했던 깁슨은 그들을 대신해 배 안의 물속에서 결국 죽고 말이죠. 그래서인지 해리는 고국에 와서 기뻐하는 게 아니라 죄책감에 빠집니다.
"우린 패배한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왔어. 사람들이 우릴 결코 반기지 않을 거야.”
그런데 웬 걸. 배에서 내리자마자 그에게 담요를 건내 주던 또 다른 동네 할아버지는 해리에게 그저 살아 돌아와 준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신문에서는 패배의 전쟁터에서 감히 생존해 돌아 온 패잔병들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극찬하며 치켜세워 줍니다.
조지를 잃었지만 많은 병사들의 목숨을 구하고 바다에서 돌아 온 마크 라이런스 일가도 그 시점에 집에서 신문을 읽어보고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합니다. 그 신문에는 바다에서 용감하게 병사들을 구하러 떠났다가 죽은 조지를 기리는 기사가 큼지막하게 실려 있었습니다.
한편 공중에서의 1시간을 마친 톰 하디는 안전하게 해변가에 착륙했지만 그 자리에서 독일군에게 붙잡히고 맙니다. 톰 하디는 독일군의 총부리에 머리가 겨누어 진 채, 불타는 스핏 파이어를 쳐다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끝으로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놀란은 이번 영화에서 생존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그것은 물론 영화의 특성상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겠으나,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누구도 틀린 선택을 하지 않았다.’
해리 스타일즈는 분명 극한의 상황 속에서 자신보다 열악한 위치에 있었던 깁슨을 사지로 내몰려 했으나, 본인 스스로 그가 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가 생각나더군요. 거기서 윤동주의 선생으로 나오는 정지용 역의 문성근이 이런 대사를 했었죠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부끄러운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가장 부끄러운 사람들이다.”
이 부분에서 보면 해리를 무조건 나쁜 사람으로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생존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보자면 말이죠. 결국 중요한 건 그 생존 앞의 참상을 잊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대하는 개개인의 태도 아닐까요. 그리고 아마 이 지점에서 우리는 덩케르크 철수작전을 철수라는 실패를 했음에도 실패한 작전이라 부르지 않는 것일 겁니다.
한편 킬리언 머피도 전쟁이 낳은 최대의 정신적 피해자 중 하나이면서 언뜻 조지라는 순수한 소년에게 죄를 저지르는 역할로 보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잘못을 계속 인지하면서,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잊을만하면 소년의 상태를 수차례 물어봅니다. 괜찮냐고. 그런 머피의 물음에 처음엔 괜찮지 않다고 말하던 그의 친구도 마지막엔 조지가 죽었는데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또 다른 포인트는 공군에 있습니다. 톰 하디의 공군동료 잭 로우든은 무사히 할아버지의 배를 타고 영국본토로 귀환했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육군의 비아냥거리는 소리 뿐이었습니다.
"공군은 도대체 뭘 한거야?"
이에 마크 라이런스는 잭 로우든에게 쿨한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납니다.
"신경쓰지 말게. 우린 자네가 뭘 했는지 다 아니까."
자신의 생존을 걸고 싸웠는데 아무도 자기가 한 일을 몰라준다면 얼마나 비참할까요. 하지만 마크 라이런스처럼 누군가는 공군이 했던 일을 분명 알고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공군을 기억하는 한, 그 공군들은 더 이상 무의미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 겁니다. 더 이상 가치있는 일이 실패로 빛바래지 않을 것입니다. 설령 마지막 톰 하디의 모습처럼 소리없이 적군에게 붙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할지라도 누군가가 그를 반드시 기억할 것입니다.
성공보다 값진 실패란 무엇인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생존이라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실패에 맞닥뜨릴때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영화 덩케르크는 이 메시지를 통해 단순히 한 시대의 철수작전을 그려낸 것이 아닌, 오늘날에도 우리가 가져야 할 어떤 정신에 대해 경종을 울렸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영국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오늘날 말하는 we shall not flag or fail, we shall never surrender ‘덩케르크 정신’으로 비춰질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