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인간에게 크게 실망한 시기가 두 번 정도 있었던 것 같다. 그때마다 실망했던 것은 물론 타인에 대한 회의감도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이었다. ‘그때 내가 더 잘했더라면, 다른 좋은 선택지들이 있는데 왜 차선의 비겁한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것들 말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 직면했을 때 끊임없는 자기합리화를 통해 결국 본인을 포장하고는 한다. 나 역시 거기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사람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나와는 달리, 자신의 과오를 끝까지 합리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인물이 있었다. 그 인물이 바로 정확히 100년 전 오늘 태어난 윤동주 시인이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윤동주 [길] 中 일부
뒷줄 오른쪽이 윤동주, 앞줄 가운데가 윤동주의 친우이자 독립운동가로 잘 알려져 있는 송몽규
영화 [동주]가 한창 상영 중일 때, 어떤 분이 이육사의 시를 읽으면 경외감이 느껴지고 윤동주의 시를 읽으면 눈물이 난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항일시인들에게 경외감이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왜 유독 윤동주의 시에는 눈물이 함께 하는 걸까. 그리고 ‘내가 사는 건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이라니 그게 뭘까. 교과서에서 배웠던 것처럼 잃어버린 조국을 의미하는 걸까.
[동주]가 개봉한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최근에 그분이 했던 말을 다시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왜 윤동주의 시에는 눈물이 함께하는지, 항일시인으로 분류되는데도 어떻게 일본에서 사랑받는 시인 중 하나가 되었는지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 [자화상]
그 이유에 대한 첫 번째 원인은 그의 시 [자화상]에서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시에는 유독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시들이 많다. 그런 관점에서 [자화상]과 [길]을 비교하면 ‘내가 잃은 것을 찾는 것’이란 조국보다는 자기 자신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은 시대를 막론한 절대적 가치이기도 하다. 그래서 윤동주의 시는 국가를 초월하여 읽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學費封套)를 받어
대학(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
윤동주 [쉽게 쓰여진 시]
또 다른 그의 작품 [쉽게 쓰여진 시]는 윤동주가 체포되기 직전 마지막에 썼던 시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시에서조차 그는 새 시대를 위해 싸우는 다른 동료들에 비해 시가 쉽게 쓰여지는 자신을 성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건대, 이육사가 완벽해서 경외감이 드는 것이라면 윤동주는 불완전함을 끝까지 고치려고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욱더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항상 자신과 비슷한 처지나 고민을 가진 사람들에게 공감을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의 고민은 분명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지닌 고민이었다.
내가 몇 년 전부터 다짐하지만 늘 실패하곤 했던 새해의 다짐이 있었다. 올곧고 순수하게 살아가기. 그땐 한창 그것이 될 줄 알고 엄청나게 노력했지만 결과는 항상 좋지 않았다. 그래서 작년쯤부터는 애초에 그런 건 불가능하다며, 순수함을 잃어가는 그 과정 자체를 어쩔 수 없이 여겼다. 이 세상은 순수하게 살아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공간이라고 자기합리화를 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다. 부끄러움을 아는 게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가장 부끄러운 사람임을. 이러다가 나도 부끄러워해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아닌지, 문뜩 오싹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래서 다음 한 해는 어쩐지 갈수록 지키기 힘들어지는 것 같아 씁쓸함을 많이 느끼기는 하지만, 윤동주의 힘을 조금이라도 빌려보고자 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