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늘 앉던 곳에 앉는다.
나는 아메리카노, 너는 아인슈페너를 시켰다.
밖은 지독했던 장마의 흔적이 곳곳에 남은 채
푸른 녹음과 맑게 개인 하늘로 눈부시다.
밀린 숙제를 하듯,
다소 지겨워보이는 너의 눈빛을
안타깝게도 읽어버린 나는
허둥대는 시선을 둘 곳을 서둘러 찾는다.
너는 사소하다고 말했고, 나는 사소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대화와 독백이 이어지며 무거운 침잠이 우리를 감싸왔다.
마침 너를 찾는 전화벨이 울린다.
이어 붙일 말이 마땅치 않았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가만히 앉아 네 앞에 놓인 아인슈페너를 바라본다.
크림이 녹으며 하얗게 가라앉는다.
한 때 달콤했던 기억들도 쓰라리게 녹아 사라진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투명한 유리잔 속 녹아내림을 눈으로 좇던 나는
너의 대화가 갈무리되는 것을 느끼며 상념에서 깬다.
일어나자고 하기에 짐을 챙겨서 앉던 곳을 떠난다.
왠지 다시 그 자리에 앉게 될 일이 없을 것 같아
다시 그 자리를 바라본다.
매미소리와 강렬한 햇빛 속에 우리의 침묵이 묻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