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수많은 가수들은 노래를 판다기보다는 이미지를 판다.
노래는 그것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경우를 왕왕 목격하게 된다.
가령 '섹시'를 팔기 위해 그것에 부합한 노래를 선별하여 대중 앞에 내놓는다.
이른바 이미지를 소비하는 세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렇게 소진된 이미지에서 탈피를 성공하지 못한 가수들은 이내 도태되고 말거나
새로운 이미지를 입고 재탄생 내지는 생명 부지를 하게 된다.
20세기를 청춘의 본무대로 삼아 뜨거운 사랑을 경험한 자들은
누구나 '김동률'의 음악을 하나씩 가슴에 담아 두고 살 것이다.
술에 잔뜩 취한 밤, 남 몰래 가슴에 품던 그녀에게 취기를 빌려서
용기 내어 진심을 떨림에 담아 고백한 적이 있는 아재들이여,
그대들은 얼마나 많이 '취중진담'을 불러제꼈는가.
서로를 이별하여 보냈지만 서로를 그리워하다 보고파하다
결국엔 다시 애정의 끈을 이어보려 만나러 가는 길에
MP3에 담긴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얼마다 다시 듣고 다시 들었는가.
사랑의 결실을 맺던 날, 그대들의 친구들은 혹은 그대들은
얼마나 많은 서약과 맹세를 '감사'를 부르며 했었던가.
'김동률'은 김동률만의 시대감성을 구축해가며 김동률 자체의 이미지를 창조해갔다.
이미지의 소비가 아닌, 창조.
그것이 김동률의 귀환을 반기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었으리라.
김동률은 굳이 자신을, 자신의 일상을 대중 앞에 드러내려 노력하지 않는다.
노래로 말하는 것이 가수의 궁극적 역할이라는 것을 깊이 알고 있는 듯 보인다.
'모든 것이 빛나는 게 아니다. 빛나는 모든 것이 있는 것이다.'
얼핏 모호한 이 명제는 김동률을 떠올리면 명확해진다.
김동률은 노래하지 않는 그 순간에도 이미 노래하고 있다.
그것이 성대의 진동으로 인한 높고 낮은 음이 목구멍을 통해 토해져나오는 것만이
노래라 명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김동률식 노래법이다.
사랑의 설레임과 다짐, 슬픔 등의 감정에 기뻐하고 슬퍼하고 힘들어할 때,
김동률은 각자의 마음 속에 이미 노래하고 있다.
사족이 길었다.
그리하여 나의 길지 않은 인생동안 내 삶과 함께 노래해온,
김동률의 잘 알려지지 않은 몇 곡을 이번 신규 앨범을 기념해 밝히는 바이다.
1. NOBODY
김동률의 5집 모놀로그에는 유독 주관적 명곡이 많다.
그 중 알렉스와 함께 부른 '아이처럼'과
TV 여행 프로그램에서 BGM으로 종종 쓰이는 '출발'은
비교적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곡이다.
그러나 짝사랑 중인 남성(혹은 여성)의 애절한 마음을 재즈풍의 곡에 담은 '노바디'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라디오 사연을 듣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게 하는 가사의 내용 중
마지막 결론 부분을 살짝 보여주겠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술자리에서
오랜만인 내 친구와 함께 온
그녀를 보았을 때
무너진 가슴이 한없이 나를 탓해도
그저 조금 놀란 척 웃으며
술잔을 기울일 뿐너무 세상이 좁아서 아무개보다는
조금 나은 친구의 친구란
이름을 얻게 됐지만
차라리 아무도 아닐걸 그랬어
.
2. 잔향
김동률의 4집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개인적으로 김동률의 깊고 굵은 목소리는
비유하자면 호수보다는 바다에 가깝다.
잔잔하지만 휘몰아치고, 포근하지만 열정적이다.
'잔향'은 이러한 김동률의 음성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4집 발매 당시 인터뷰를 통해
김동률은
'대중이 원하는 음악과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택하라면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택하겠다. '잔향'은 그래서 가장 애착이 간다'
고 답했다.
나는 이 곡을 접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이 인터뷰를 보게 되었지만,
왜 그렇게 말했는지 충분히 공감하게 되었다.
어쨋건 감히 평하자면
잔잔하던 바다에 어느새 먹구름이 끼고, 점차 일렁이던 파도가 맹렬하게
휘몰아치는 모습이 떠오르는 곡이다.
그 언젠가 해묵은 상처 다 아물어도
검게 그을린 내 맘에 그대의 눈물로
새싹이 푸르게 돋아나
그대의 숨결로 나무를 이루면
그때라도 내 사랑 받아주오. 날 안아주오. 단 하루라도
살아가게 해주오.
차라리 절규에 가까운 음성으로 언제인지 모를 적에 떠난 그대에게
캐캐묵은 감정을 쏟아내던 그는 이내
사랑하오 얼어붙은 말 이내 메아리로 또 잦아들어 가네.
라며 수취인불명인 마음의 절규를 마무리한다.
어쨋건 이번 김동률의 컴백을 반기는 사람이 나를 포함하여 꽤 많은 모양이다.
온갖 차트를 휩쓸며 소란스럽게 재등장한 그의 모습이 조금은 낯선 것은
항상 언제 어디서든 여러 사람의 마음 속에
함께 했기에 그를 환영하는 행태가 조금은 새삼스럽기 때문이리라.
그 외의 명곡: 이제서야, REPLAY, 그건 말야, 꿈 속에서, 오래된 노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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