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따끈한 유자차를 책상에 두고 핸드폰을 보니
케이블과 연결되어 있지는 않고,
마치 연결된 양 케이블 끝과 맞닿아 있었다.
나는 이걸 보며 몇 가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우선 죽음에 관하여
몇 년 전에 이미 마지막 책장을 덮은 이 책과 다시 조우하게 된 것은
육체와 정신(영혼)에 관한 그의 이원론적 사유가 떠올랐기 때문.
사람의 육체와 영혼은 본질적으로
물질적인 영역과 추상적인 영역에 각각 존재하기에
다르다고 보는 관점에 대한 반박의 예로
뇌의 두 부분을 각기 다른 육체에 이식한다면
뇌를 잃은 사람, 뇌의 각 부분을 이식받은 두 사람 중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내용을 던져준다.
두번째로 판단에 관하여
우리는 흔히들 정황상 그렇다는 말을 쓰곤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보면
비극은 보통보다는 잘난 인물이 행복에서 불행으로 떨어지는 일련의 행동 모방이다. 이야기는 이 세상의 수많은 경우의 수를 다룬다. 그 중 ‘설득력’있는 비극적 플롯이 되려면 ‘개연성(Probability)’과 ‘필연성(Necessity)’을 지녀야 한다. 시인은 실제로 일어난 사실을 이야기하는 역사가와 다르다. 시인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설득력 있게 재구성하기 때문에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며 ‘보편성(Universality)’을 띤다. 더욱이 플롯의 구성 요소 중 ‘뒤바뀜(Reversal)’과 ‘깨달음(Recognition)’은 반드시 개연성과 필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뒤바뀜은 행동 방향의 급격한 선회이며, 깨달음은 뒤바뀜에 이어 이를 인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깨달음과 뒤바뀜의 결합이야말로 가장 큰 연민과 두려움을 조성하며 카타르시스에 도달하게 한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물론 봐도 뭔소리인가 싶고, 그저 대학시절 교양수업 중 알게 된 토막난 지식이지만,
소개하고자 했던 것은 사건이 현실화될 수 있는 확실성의 정도 또는 가능성의 정도를
의미하는 '개연성'에 관한 고전적 정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있어보이고 싶었기에 적어본 것이라는 말이다.
아무튼 나 또한 여러 개연성을 가지고
사건이나 인물에 관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맨 위에 제시한 핸드폰 케이블 사건도 이러한 개연성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몇몇 조각을 가지고 특정인을 비난하는 것은
마피아 게임에서만 하는 걸로...(나도 반성..)
마지막으로 관계에 관하여
(이들의 시간은 거꾸로 가는가.. 약 10여년 전의 다듀...)
개인적으로 개-코가 너무 좋다. 실력도 국힙 탑이지만 가사력이 ㄷㄷ하다.
기회가 된다면 '코끼리' 꼭 들어보시길! 아무튼-
사랑은 우릴 스치고 가버렸지
열정은 빨리도 타버렸지
우린이별하는그순간조차
참을수없이 가벼웠지 단지난
혼자서 잠드는게 무서웠었나봐
아님 텅빈 내방에서 혼자 눈뜨는게 두려웠었나봐
조금 부끄러웠었나봐 벌거벗은
내영혼을 보여주는게 참우습기도해
서로의 몸은 서스름없이 보여주는데
홀로 지새우는밤 좁은 내방구석이 끝없는
사막같이 느껴져 또하나의 사랑이 휴지통으로
몇장의 사진들과 함께 구겨져
'GONE'이라는 노래의 가사 중 저 가사가 와 닿는다.
서로의 벗은 육체는 부끄러움 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이 서로가 완전히 연결이 되었다는 것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뽀뽀하고, 손 잡는다고 해서
그것이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
아무튼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독자의 독해력에
의지하며, 케이블과 아이폰이 '똑'하며 연결되는 쾌감을 느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