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부터 할머니댁에 놀러가면 항상 기대하던 것이 있었다.
할머니가 끓여주신 조금 짠, 그래서 내 입맛에 딱 맞던 된장찌개.
그리고 까만 봉투에 가득 담긴 양말 몇 켤레.
지금 와서 생각하면 거동이 불편하셨던 할머니께서
댁 근처까지 오는 트럭 장수가 파는 다양하게 예쁜 양말이
손자, 손녀에게 쥐어줄 수 있는 최고의 컬렉션이지 않았을까 싶다.
2013년 1월, 나는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호주에 나와있던 때였다.
그때의 할머니는 아흔을 훌쩍 넘긴 연세셨고, 기력이 많이 쇠하셔서
중환자실에 계셨었다.
그때의 나는 무얼 이루겠다며 그렇게 고집스러웠는지
곧 돌아갈 것이고, 할머니는 나를 끔찍이도 아끼셨기에
막연하게 기다려주시겠지 하며 생각했었다.
그렇게 할머니께서는 마지막 손자의 얼굴을 눈에 담지 못하시고
눈을 감으셨다.
그 해 봄, 한국에 돌아왔고, 복학을 했고, 일상을 보냈다.
이듬해 1월, 나는 할머니와 마주 앉아있었다.
내게 건내주신
까만 봉투에 담긴 여러 켤레의 양말과 흰 봉투에 담긴 세뱃돈.
의아해하며 올려다보며 '할머니 이건 왜 줘?'라며 묻는 내게
세상 티 없이 맑은 웃음을 보이시던 할머니.
몇 해가 지나도 잊혀지지 않던 그 웃음을 멍하니 보다가
순간 놀라서 잠에서 깼다.
감정이라는 것은 때로는 즉각적인 반응으로 터져나오지 않고
눈덩이에, 코 끝에, 목구멍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경우가 있다.
그날 아침, 물에 젖은 스펀지처럼 축축해진 감정들이 일제히 쏟아졌다.
멀리 이역만리로 떠난 손자를 찾지 못해 이곳 저곳 헤매시다가
그제야 당신께서 떠난 날에 다시 찾은 손자에게
일 년간 건내주지 못한 세뱃돈과 양말들을 주려하셨나보다.
그제야 재회한 할머니와 좀 더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작별 인사라도 할 걸.
일찍 깨버린 꿈에 못내 미련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