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함이 약이 되는 날

showroo(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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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함은 무겁고 축축하다.

어느 날은 목 뒤에 올라타고,
어느 날은 눈 밑에 스며든다.

그런 날은 목이 무거워 소파에 몸을 파묻고,
눈의 초점은 허공에 던져버린다.

그렇게 우울함이 마음 속에 풍덩 빠지면
마음 속 찌꺼기들이 거기에 다닥다닥 붙는다.

이내 앙금이 가라 앉듯 우울함과 상념들이
함께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으면

때론 마음이 선명하고 맑은 상태가 된다.

나는 이런 까닭에 가끔씩 우울함을 반기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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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한 켠에 동생이 며칠 전 고속터미널 꽃시장에서 사온 튤립들이
할미꽃마냥 고개를 추욱 숙이며 그들의 생애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다.

"얘네들 다 시들었다. 목 아파보여."

바쁘게 나갈 채비를 하는 동생에게 말한다.

"그러게. 보기 별로네. 시간되면 버려줘."

정신 없이 나가며 동생이 한마디 툭.

그 말이 왜 그렇게 슬프고, 그 꽃들이 왜 그렇게 가여웠는지
나는 그들 앞에 주저앉아 한참을 바라봤다.

어제는 꼿꼿이 예쁘게 피어있었는데.
불쌍하고, 가엽다.

나의 우울이 그들의 마지막을 진심어린 마음으로 위로해준다.
우울했던 덕분에 무심코 지나갈 소중한 순간을 선명히 바라볼 수 있었던가.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