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을 만들어주신
@tata1 님께 감사합니다.
죽변항 어선들의 태극기는 남루했다.
어선들의 태극기는 바닷바람에 닳고, 햇빛에 바래어서
반 토막이나 3분의 1 토막만 남아 바람에 펄럭였다.
어선들의 태극기는 해풍 속에서 풍화되어 갔다.
태극이 모두 없어졌고, 괘만 남은 깃발도 있었다.
바람에 시달리면서 태극기는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 어선들의 반 토막 태극기는 살아가는 일의
수고로움과 수고의 경건함을 보여주었다.
남루는 그 경건이 드러나는 방식이며 외양이었다.
반 토막 태극기는 맹렬하게 펄럭였다.
-김훈, '라면을 끓이며' 中 -
페인트 도색이 벗겨져 군데군데 녹이 슨,
폐지를 가득 실은 채 길가에 놓인 리어카.
어둔 밤 거실에서 웅- 웅- 소리를 내며 물 마시러 나온 발걸음을 이끌어
늦은 밤 허기를 달래주고야 마는 우리집 늙은 냉장고.
어느 볕 좋은 날 무심코 던지는 시선에 걸리는 반질반질해진 공원 벤치.
김훈 작가가 말했듯,
그것들의 '남루는 그 경건이 드러나는 방식이며 외양'이다.
때로는 세상 그 어떤 달변가의 말보다 이러한 오래된 사물들의
침묵이 던지는 이야기의 울림이 더 커질 수 있음은
바로 이 '남루'와 '경건'의 공존의 아이러니를 여실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