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구가 결혼했다. 이제 친구들은 결혼식장에 자식을 데려 온다. 포대기(요즘에도 포대기라고 부르는지 모르지만)에 싸여 있던 친구 아들이 축가 소리에 잠에서 깼다. 엄마가 눈 앞에 보이지 않는데 울지도 않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손가락을 내어줬더니 고 작은 손으로 꽉 잡고 한 참을 안 놓았다. 보드랍고 따뜻했다. 아이는 포대기에 발판 처럼 만들어진 부분에 올라 앉아서 축가 음악에 흥겨운지 엉덩이를 들썩들썩거렸다.
#2
낮술을 좀 마셨다. 누가 결혼하거나 누가 돌아가시지 않으면 좀처럼 다 같이 모이기 어려워졌다. 대구 결혼식에 간 아내가 돌아올 때까지 낮술을 마시기로 했다. 몇 년 먼저 취직해서 술을 자주 사줬던 친구와, 술을 자주 마시던 동네에 갔다. 은행원이었던 친구는 비싼 참치횟집에서 양주를 사주며 실장님에게 "방송국 기자 될 놈"이라고 날 소개했었다. 나는 방송국 기자가 되지 못했고, 친구는 더 이상 은행원이 아니다. 우리는 '광어회 1만원'이라는 간판을 내 건 집에 가서 3만원짜리 우럭 대짜를 시켜 놓고 소주를 마셨다.
#3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4층에서 내린 꼬마가 제 아빠랑 뭐라뭐라 얘기했는데 듣지 못했다. 나는 해도 지기 전에 아이들한테 술냄새를 풍기는 게 창피해서 엘리베이터 구석을 파고드는 데에 집중했다. 꼬마는 내리면서 "아더띠 안너엉" 했다. 나는 당황해서 "그래 잘가" 해 주지 못했다. 잠시 마주쳤던 눈동자가 참 까맣고 컸다. 이제 '아저씨'라는 말이 하나도 낯설지 않다. 아저씨가 네 말 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4
이메일을 열어봤는데 일요일 근무라서 그런지 짜증이 확 났다. 정치부 나온 지가 언젠데 아직도 정치권 메일이 하나 가득이다. 보는 족족 스팸처리 하는 것도 3개월이 넘었는데 끝이 없다. 계속 새로운 인간들에게서 메일이 온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도 마찬가지다. 대체 어디까지 내 개인정보를 돌리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뜬금없는 지역의 구청장 후보한테서도 문자가 온다. 작작 좀 공유해라.
#5
기자는 남의 기사에서 발로 뛴 흔적과 고민의 깊이를 발견한다. 실제 겪어 보고 쓴 글은 생생하게 묻어나오는 게 있어서, 꼭 남의 글을 분석적으로 읽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글을 읽으면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다. 굳이 눈물을 쥐어짜는 표현이 없이 그냥 담담히 적은 글인데도, 따라 읽어 내려가다 보면 눈가가 뜨거워진다. 후배 @afinesword가 쓴 가족이야기와 기사로 쓰지 못한 이야기가 그렇다. (술을 입에 머금고 한땀 한땀 적은 메모들로 쓴 술 이야기들도 공감을 끌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