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있다면 물어보고 싶다. 도대체 왜 그러냐고

shiho(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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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 놓았던 여당 임시반장직을 당분간 다시 맡게 됐다. 선배의 아들이 그제 밤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 글을 선배가 보지 못했으면 좋겠다.

참 기구한 삶이다. 편집국 대표 노총각이었던 착한 선배는 서른 여덟에 동갑내기를 만나 뜨겁게 사랑했고 결혼했다.
형수는 곧 아이를 가졌고, 선배는 바쁜 국회 일정 중에도 휴가를 내고 태교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는 작년 5월 초 형수가 아이를 낳는다고 휴가를 갔다. 하지만 그날 밤 회사 게시판엔 부고가 떴다.

'편집국 XXX 기자 부인상'

커다란 충격이었다. 마흔의 노산임에도 병원은 자연분만을 진행했고 형수는 분만 도중 실신했다. 아이의 머리가 채 나오지 못한 채 많은 시간이 지체됐다. 병원은 뒤늦게 제왕절개를 시도하다, 형수의 상태가 위급해진 뒤에야 큰 병원으로 이송을 했다. 정신이 흐려지는 상황에서도 아이의 상태를 물었다던 형수는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태어난 아이도 삶과 죽음의 사이를 넘나들었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너무 착해서 싫은 소리 한 마디를 못하던 선배.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하던 그는 장례식장에서 하염없이 무너졌다. 그걸 보는 동료들도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상을 치른 뒤 선배는 바로 출근을 했다. 아이가 중환자실에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 쉬어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빨리 일상으로 돌아오는 게 그로선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선배는 고요했다. 자주 국회 본관 앞에 나가 멍하니 서 있다 들어오곤 했다.

약 5개월 뒤 아이가 퇴원을 하며 선배는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그는 가장 행복한 순간에 지옥으로 떨어지게 한 삶과 혼자 조용히 싸웠다. 선배의 카카오톡 배경사진 속의 아이는 늘 누워있었다.

사진 속 흐렸던 아이의 눈이 조금 또렷해질 때 쯤, 선배가 복직을 했다. 돌아온 그의 노트북 컴퓨터 바탕화면엔 행복했던 태교 여행 때 찍은, 형수와 활짝 웃는 사진이 깔려 있었다. 오른쪽 구석엔 아이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는 바쁘게 일했다. 반장이면서 말진처럼 부지런했다. 누군가 국회에 남아야 할 때면 후배들보다 먼저 나서서 남았다. 휴무를 후배들에게 양보하고 연속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병원을 상대로 소송도 진행했다. 기자답게 치밀하게 싸웠고, 이기고 있었다. 웃음을 지을 때가 점점 많아지던 참이었다.

항상 말진처럼 일찍 출근하던 선배가 어제 자리에 없었다. 후배들도 영문을 몰랐다. 불길한 느낌이 피어올랐다. 불길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다. 카톡을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발제 마감 시한이 다가와 어쩔 수 없이 든 전화기 너머로 선배의 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미안해요. 부장께는 말씀 드렸는데 애 장례를 치르게 돼서... 미리 말 못해서 미안하네."

미안해 하는 선배에게 아무 말도 해 주지 못했다.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미안했다. 후배들이 볼까봐 부스 구석으로 얼굴을 돌리고 몇 번을 울었다.

선배는 조문객을 받지 않고 장례를 치렀다. 동기들만 집으로 찾아가, 그날 한 끼도 먹지 못한 선배를 데려가 밥을 먹게 했다. 선배는 그 동안 아들을 데리고 중환자실을 하도 드나들어서, 병원에 갈 때마다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는 동기들을 만나 밥도 잘 먹고 덤덤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들과 헤어질 때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선배는 당연히 다시 용기를 내 일어설 것이다.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신이 있다면 묻고 싶다. 도대체 왜, 하필이면 이런 사람에게 이렇게 모질게 구냐고.

이 글을 선배가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럼 글을 안 쓰면 되는데, 여기 외에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

신이 있다면 물어보고 싶다. 도대체 왜 그러냐고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