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종류의 구악은 대부분 왜곡된 관계에서 시작한다. 순전히 내 판단이지만 기자가 출입처 취재원과 개인적으로 친밀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개인적으로만 친한 취재원에게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는 기사는, 써야 한다면 쓸 수 있다. 이게 건전한 관계다. 그러나 둘 사이에 재물이나 향락이 끼어들어간 관계는 왜곡된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관계가 쌓여 형성된 친분은 공과 사를 구분하는 데 별 문제가 없다. 사람의 일이기 때문에 좀 미안한 마음은 있을 수 있지만 그건 소주 한 잔에 풀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비싼 밥과 술을 얻어먹고, 이른바 '2차'를 가고, 헤어지면서 차비 조로 돈도 좀 받고, 선물도 받고 하면서 쌓은 관계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흥건하게 취해서 어깨동무를 할 때는 이 관계가 그냥 친분관계인 걸로 착각하지만, 결정적으로 기사가 나갈 때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출입처를 '조지는' 기사를 써야 할 때 기자에게 친밀한 취재원의 얼굴이 떠오르는 정도면 기사를 쓸 수 있다. 하지만 취재원에게 받아먹은 것들이 떠오르면 기사를 쓰기 어렵다. 그럼에도 기사를 쓰는 기자는 정말 뻔뻔한 사람일 것 같다. 기사를 쓰고 그걸 내리는 조건으로 더 받아먹을 공산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기사를 써야할 때 무엇이 떠오르느냐에 따라 친분관계와 왜곡된 관계의 차이는 극명해진다.
어쨌든 여러 기업의 홍보팀의 '기자관리'는 이런 왜곡된 관계 형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물론 직접 출입하며 경험해본 적은 없어서 말하기가 조심스럽긴 하다. 홍보팀 사람들도 역할이 다 있겠지만 나는 기업 홍보팀 관계자들을 술자리에서 밖에 만나본 적이 없다. 법인카드를 갖고 다니면서 기자들을 만나 점심과 저녁 밥술을 사는 게 이들의 역할이었다. 나는 이런 일을 겪었다.
사회부에 있을 때 A부장이 주최한 회식이 있었다. 그런데 삼겹살을 구울 줄 알았는데 좀 비싼 곳으로 갔다. 인원 상 부장 법인카드로는 커버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1차가 끝날 때쯤 모 기업 홍보담당 상무와 부장, 차장이 자리에 합류했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바로 2차로 이동했다.
이들은 기자들 사이사이에 끼어 앉아 소폭을 만들고 빠른 속도로 술을 마셨으며, 권했다.
2차가 끝나자 부장은 "귀가를 원하는 사람은 들어가라"고 했다. 평기자들이 전부 귀가하겠다고 했지만 평소와 달리 잡지 않았다. 이 기업 사람들과 부장, 팀장만 3차로 이동했다.
자사 기자로 있다가 기업으로 이직한 홍보 관계자들은 회식의 단골 손님이다. 이들은 자신이 참석하지 않은 자리의 술값도 달려와서 계산하곤 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그냥 술만 먹으면 되는가? 아니다 그렇게 행복한 직업은 없다. 혹시 신문사에서 기업에 안 좋은 기사를 쓰면 다음날 아침 종판 신문이 나오기 전에 이들의 연락이나 방문을 받게 된다.
이럴 때 이들의 역할은 '제목에서 오너 이름 빼기'나 '제목 뉘앙스 살짝 바꾸기' '기사에 언급된 기업들의 순서에서 자기 회사를 뒤로 미루거나 살짝 빼기' 정도로 공정 상 그렇게 어렵지 않은 요구를 하는 것이다. 어렵지 않으니 평소 '관계'가 돈독한 입장에선 손쉽게 '도와줄' 수 있다. 고쳐주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거절하긴 어렵다. 평소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론 초판 기사와 종판 기사에 어느정도 성의있는 변화만 있어도 이들의 존재이유와 목적은 달성된다. 전체적인 톤은 기업에 부정적으로 나갔어도, 성의를 보여줬기 때문에 이들의 '관계'는 유지된다. 술자리, 밥자리, 골프자리도 계속 된다.
그런데 예를 들어 '오너 성매매'(구체적으로 언급하면 해당 기업 홍보맨들의 연락이 올까?)와 같이 중대한 기사가 나오면 한 두 명의 기자를 관리해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럴 땐 기업이 언론사에 주는 광고가 한 몫을 한다. 기사를 보도하지 않은 대부분의 언론사는 해당 기사가 터졌을 때 머릿속으론 광고를 걱정하면서 겉으론 팩트 체크를 운운하며 기사를 'kill' 시켰을 거다.
결국 중대한 기사는 광고가 막아주고, 그런 '관계'로 막을 수 있는 부분들은 소소하다. 사실 기업 입장에서 그거 못해도 크게 지장이 없을 거다. 하지만 언론사나 기자 입장에서도 그걸 소소하다고 해선 안 된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마사지'가 누적되면 기업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왜곡, 변형하는 데 영향이 있을 것임은 자명하다. 그걸 그 기자, 언론사가 만들어 준 거다. 개인적으로 보면 어찌됐든 술과 유흥을 대가로 기사를 팔아먹은 거다. 공짜 술 마시려고 찌질하게 그런 소소한 것에 자존심을 내 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