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 하코다테와 노보리베츠 지옥계곡 사진을 포스팅하려던 계획을 미루고 간만에 기자인 척을 해야 겠다. 그 동안 기자인 척을 격조하기도 했다.
어제 회사 지면계획이 이상하게 만들어졌다. 마감이 오후 4시로 당겨졌다면서 지면계획은 평소보다 늦게 확정됐다. 게다가 오전에 원고지 2매로 발제했다가 오후배면에서 사라진 제2회 '민주주의자 김근태상' 수상자 관련기사가 무려 6매+사진으로 늘어나 최종배면에 들어갔다. 그리고 난 그 기사의 필자로 지정됐다.
좀 어이가 없었다. 매년 주는 상 누가 받았다는 기사를 그렇게 크게 다뤄야했는지에 관해서만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사진 : 연합뉴스
윤민석이라는 뭔 민중가요 작곡가라고 한다. 나와 성은 다르고 이름은 같았다. 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이다. 영혼이 없으므로 연합뉴스 기사를 대충 정리하려고 했다. 당연히 분량이 모자랐다. 대체 어떤 사람인가 찾아봤다. 민중가요 작곡가라니 한겨레와 경향에서 비중있게 인터뷰를 했다.
기사를 읽다가 관심이 생겼다. 작년 겨울 광화문광장에 울려퍼진 노래 '진실은 침묵하지 않는다'의 작곡가란다. '어둠은~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익숙한 멜로디가 귓가에 맴돌기 시작했다. 87년에 학생운동에 뛰어들어 사실상 전업으로 민중가요 작곡을 했다. '전대협 진군가', '퍼킹 유에스에이', '헌법 제1조', '이게 나라냐' 등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투쟁 현장에 그가 만든 노래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모든 음원을 무료로 공개했다. 당연히 삶의 벽에 부딪혔다. 그러던 중 드디어 정권이 교체되고, 바뀐 세상은 그를 알아봤다. 지난 2월엔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 선정 특별상을 받았다.
시상식에서 "지금은 기념할 때가 아니라 여전히, 아니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할 때라고 생각하기에…다시 노래를 만들고, 함께 촛불을 들면서 그저 힘닿는 데까지 싸워보려 한다"고 했던 그는 지난해 10월 페이스북에 '드디어 폐업신고, 혹은 아주 긴 휴업신고'라는 제목으로 "30년에 걸친 제 민중가요 창작 인생을 당분간(?) 접을까 한다"는 글을 올렸다. 후배의 사무실이 문을 닫게 되면서다. 작업실 용도로 무상 제공 받아 사용하던 곳이었다. 그는 그 참에 오랜 고민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 어제 그는 김근태상의 두번째 수상자가 됐다. 기사는 어느덧 연합뉴스 기사가 아닌 내 기사가 돼 있었다. 마감이 다 됐는데 부장이 "윤민석이랑 통화를 한 번 해보라"고 했다. 사실 좀 황당했다. 정치부 기자가 작곡가와 통화를 하라니. 김근태상이기 때문에 기사를 쓰는 것 뿐이었는데. 어렵게 연락처를 구해 통화 버튼을 눌렀지만 윤씨는 계속 통화 중이었다. 결국 초판 기사엔 그의 말을 넣지 못했다.
저녁 시간이 다 돼서 통화가 된 그는 말을 잘 잇지 못했다. 심장이 마구 뛰는 것 같았다. 그는 "저도 지금 알아서 너무 당황스럽다"고 했다. 물론 그에게 김근태상은 대중음악상 같은 것과 너무나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 투쟁 현장에서 함께 뛰고 옥고를 치렀던 민주주의자 '형'이 주는 상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가슴이 벅찼다.
그러나 그는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 "다른 상도 아니고 근태형 이름이 걸린 상을 받게 됐다니 황감하다"면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싸우는 중에 이런 상을 받게 됐다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 폐업신고를 하고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거꾸러져 있는 동안에 상을 주셔서 당혹스럽다"고 했다. 할 말이 많았나 보다. 왜 그렇게 오래 통화중이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김근태상이 당장 윤씨의 폐업신고를 잠깐의 휴업신고로 만들진 못할 것 같았다. 그는 "30년 동안 하던 것을 폐업한다고 공개된 공간에 글을 쓰기까진... 아시다시피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면서 작곡활동을 다시 시작하진 않을 거라는 의미를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제가 작곡을 하지 않아도,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어도... 근태형, 김근태 선배와 선정위원들께 부끄럽게 살지는 않을 거니까"라고 말했다.
"잘 정리해서 쓰겠다"는 내게 윤씨는 "전화를 주셨는데 이렇게 두서없이 얘기해서 미안하다, 그만큼 제가 준비가 안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준비가 안 됐던 것은 나였다. 그저 형식적인 소감 두어 줄 받아서 쓰려고 했는데, 말을 통해 전해진 진심에 몇 번이나 울컥했다. 그의 말이 들어갈 수 있는 분량은 정말 두어 줄 뿐이었다. 그에게서 전해진 마음을 어떻게 압축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이렇게 밖에 쓰지 못했다.
윤씨는 “다른 상도 아니고 근태형의 이름을 건 상을 받게 돼 황감하다”면서도 “왕성하게 싸우지 못하고 이렇게 거꾸러져 있는 동안에 큰 상을 받게 돼 당황스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제1회 수상자인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에 뒤이어 선정됐다는 것을 커다란 영광으로 여긴다”면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김근태 선배와 선정위원 분들에게 부끄러운 삶을 살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인의 형식적인 논평과 짜여진 말을 옮겨대는 생활을 너무 오래 한 것 같았다. 취재를 하며 어떤 의도도 띄지 않은 살아있는 목소리를 들은 게 얼마 만이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