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직장인들이 그렇듯, 내게도 '사춘기'는 찾아왔다. 입사한 뒤 1년여, 회사와의 허니문 기간이 지나갔다. 회사 돌아가는 상황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성향을 불문하고 정부 여당을 비판하지 못하는, 비판하고 조진다고 누가 머라 한 적도 없는 것 같은데 알아서 기어 주는 분위기가 참기 힘들었다. 항상 기사는 남들이 다 쓰는 만큼만 쓰면서, 특정 사안에 관해서는 남들이 써도 안 쓰는. 결과적으로 흐리멍텅하기 이를 데 없는 신문이 날마다 만들어지는 걸 보며, 불만은 하루하루 쌓여 갔다.
때는 2011년, 나는 당시 입사 만 2년이 안 된 3년차, 편집부 초짜기자였다. 종판 신문까지 편집해 찍혀 나오는 것까지 보고 퇴근하는 야근조 막내였다. 그때는 박원순이란 사람이 서울시장을 하겠다고 나와서 여당 의원이었던 나경원이란 사람과 경쟁하고 있었다.
앞서 야근을 하면서 '이거 왜 이러나' 싶은 일이 몇 번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그 중 하나는 (구체적으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후보 단일화로 박원순에게 양보한 뒤 한동안 조용했던 안철수 씨가 밤중에 박원순의 선거를 적극 돕겠다고 선언하던 날이었다. 밤중에 일어난 일이고 그 동안의 선거 구도에 영향을 미칠만한 사건이라 당연히 크게 다룰 줄 알았다. 그런데 당시 야간국장을 받은 한 부장이 "머 별거 아니네"라는 투로 말하고 대충 정치면 중간에 끼워넣었던 것 같다.
타사 모든 면을 다 보는 편집기자는 다음날 우리 회사가 기사 밸류 판단에 성공했는지, 틀렸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그날 타사에서 안철수의 지지 선언을 어떻게 다뤘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진 못하지만 우리가 엄청 틀렸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참 지면이 모호하게 이상할 때 들이받기가 곤란하다. 당시 야간국장의 정치적인 성향으로 보면 충분히 일부러 뭉갰다는 의심이 가능한데, 꼭 이럴 때는 '판단미스'라면서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낸다. 하지만 그렇게 자존감을 희생해가면서까지 기사를 뭉개 놓고 얻는 게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날은 그냥 넘어갔는데 다음 사건은 '본의아니게' 그냥 넘어가지 못했다. 전날은 야근 뒤 비번인 날이라 출근을 안 했는데 다음날 출근해서 보니까 당연히 나와야 할 제목이라고 생각한 게 없었다. 전날 나경원 의원이 봉사활동을 한답시고 카메라를 대동하고선 남성 장애우를 발가벗겨 목욕을 시켰다. 당연히 인권침해 논란이 일었다. 쉬는 동안 하루종일 시끄러웠던 사건이었으며, 지금까지 나 의원을 따라다니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당연히 온갖 보수지들도 비중있게 다뤘다. 그런데 우리 신문은 제목 한 줄 달지 않았다. 기사에도 안 넣었나 찾아봤더니 구석에 '한편 이날 나 후보는 ~해서 논란이 됐다'고 한 줄 들어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걸 참으며 혼잣말로 '어? 이게 왜 안 들어있지? 제목이 한 줄 없네'라는 식으로 얘길 했다. 맞은편에 앉은 선배가 "아 그거 내가 제목 달았는데 나중에 편집국장이 뺐어"라고 말했다. 뚜껑이 열렸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XX"이라고 중얼거리며 신문을 구겨서 바닥에 던졌다.
그런데 하필 그 옆을 편집국장이 지나가고 있었다. 구겨서 집어던진 신문이 그의 발등에 떨어졌다. 편집국 내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속으로 "아, 큰일났다" 싶었지만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국장은 "왜 아침부터 열을 내고 있느냐"고 물었고 난 "당연히 제목이 들어가야 할 부분이 안 들어가서 화가 났다"고 말했다. 국장은 신문을 들여다보더니 콩알만하게 기사로 한 줄 들어간 부분을 찝으며 "이거?"라고 했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몰라도 후배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만은 일품이었던 당시 국장은 '다음부턴 주의하겠다'는 식으로 말했다. 하지만 다음에도 그럴 걸 알았기에,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제일 친한 편집부 후배와 옆자리 선배가 무슨 일이냐 물었다. 그날 점심 때 이 둘과 소주를 각 2병 마시고 들어갔다. "XX 건들기만 해봐라"하고 들어갔지만 아무도 건드려주지 않았다.
취한 채로 조용히 내가 맡은 면을 짰다. 무슨 면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잘 짰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날 이후로 편집부 안에서 '취화선'이라는 별명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