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사짜들의 공통점을 얘기했다. 그러다가 보니 떠오른 몇 사람들 얘기를 오늘은 해보려고 한다. 미리 말하자면 이건 사실 많이 부끄러운 얘기다. 취재기자로서 저질러선 안되는 치명적인 잘못에 관한 부끄러운 기억을 셈이다. 단 하나 위안을 삼을 것은 이 일로 인해 다시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게 됐다는 것.
편집부 3년 끝에 취재로 나온 지 두어달 됐을 때일 거다. 한 선배가 전화로 "집안 어르신이 제보한 이야기인데 나보다는 사회부에서 쓰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사건 개요를 이야기해 줬다.
한 업자가 전문건설사를 차려서 공공기관 발주 공사를 수주해 선수금을 탄 뒤 부도를 내는 행위를 반복한다. 그런데 회원사들의 회비로 운영하며 이런 행위를 철저히 감시하고 막아야 할 공제조합은 업자와 모종의 커넥션이 있어서 계속해서 보증을 해 주고 있다.
솔깃했다. 선배 말로는 팩트 체크는 다 됐으며 어르신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쓰면 된다고 했다. 어르신과 만나는 자리에 선배도 나왔다. 어르신은 먼저 자신의 경력을 줄줄 설명했다. 마지막 직함이었던 한 특수법인 고문 명함을 줬다. 그 업자의 회사에 투자를 했다가 부도가 나서 돈을 잃었다고 했다. 업자를 고소했다면서 고소장과 진술조서를 줬다. 업자와 공제조합 임원과의 커넥션이 담겨있는 녹취파일도 줬다.
취재를 한답시고 공부를 해 보니, 공공기관 발주 공사를 따 내면 기관 예산으로 선수금을 받는데 이른바 '먹튀'를 방지하기 위헤 공제조합이 보증을 해줘야 한다. 빚보증과 마찬가지로 회사가 먹튀를 하거나 부도가 나면 이걸 조합이 물어줘야 한다. 회원사들이 낸 조합비가 거덜나는 것이다. 얘기가 되는 것 같았다. 당시에 또 중앙, 지방정부에서 산발적으로 어떤 사업을 진행했는데(4대강 아님) 이 업자가 그걸 이용해서 많이 먹고 튄 것 같았다. 업자는 자신의 명의로 다시 회사를 차릴 수 없으니 이른바 '바지사장'을 세우고 자신은 고문인지 뭔지로 밖에 빠져 있는 척을 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어르신은 취재가 끝난 뒤 선배에게 용돈 하라며 뭔 봉투를 줬다. 조카 정도 될 테니 머 그럴 수 있다. 근데 나한테도 봉투를 쓱 내미는 거다. 선배같은 조카처럼 생각해서 주는 거란다. 절대 받을 수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기자실로 돌아와 가방을 벗었는데 그 봉투가 돌돌 말려서 가방 옆주머니에 들어있는 거다. 열어보니 50만원이 들어있다. 이건 내 기준으로 용돈이 아니었다. 당장 전화를 해서 돈을 돌려드리겠다고 했지만 당연히 들어먹질 않았다. 선배는 그날부터 오래 해외로 나갔고 돈을 돌려줄 방법이 없어, 어르신이 마지막으로 근했던 곳에 전액 기부했다.
그 때 뭔가 더러운 냄새를 맡았어야 하는데 그럴 내공이 안 됐던 것 같다. 사회생활 고작 3년 내근하면서 양질의 사람만 만나봤던 게 탓이었을까. 특히 기사를 쓰면서 그 업자에게 전화 한 통도 안해본 것은 정말 크나큰 실책이었다. 쌍방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보고 기사에 충분히 반영해야 하는 건 기본이었다. 어떤 변명을 해도 소용없는 내탓이었다. 전화를 한통 했다면 기사 내용이 달라졌을 것 같진 않다. 그게 아니라 기사를 아예 안 썼을 거다. 이건 법과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두 사람의 더러운 법적 다툼이라는 걸 알게 됐을 테니까.
기사가 나간 뒤 전화를 받았다. 그 업자였다. 억울하단다. 너무 억울해서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란다. 억울함을 소명할 자료를 들고 찾아갈 테니 계신 곳을 알려달란다. 모 경찰서에 있으니 근처에서 보자고 했다. 약속한 장소에 나갔더니 사장 혼자가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한대 칠 것 같은 표정을 한 험상궂은 사람과 양복을 입고 이상한 금배지를 단 사람이 같이 있었다. 험상궂은 사람은 "안녕하세요? 기자님이 바지사장이라고 쓰신 아무갭니다"라면서 빈정거렸다. 금배지를 단 사람은 자신이 국회머시기라고 소개하며 무슨 위원회 부회장인지 하는 명함을 줬는데 언뜻 보면 국회나 정부기관의 힘있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그냥 국회에서 일하다 퇴직한 사람들이 만든 비영리단체였다. 그는 대화 중에 다른 명함을 줬는데 그 업자와 같은 직함이었다.
얘기의 요지는 간단했다. 그 어르신이 고소한 건은 대부분 예전에 무혐의로 종결된 사건이었다. 자신이 범죄자인 것처럼 기사에 나왔는데 선량한 사업가일 뿐이란다. 직접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바지사장은 바지사장이 맞았다. 이 업자가 상습적으로 부도를 내서 조합 돈을 타먹은 것도 맞다. 조합 임원과 모종의 관계인 것은 끝까지 확인은 안됐지만 지금 생각해도 맞는 것 같다. 기사 내용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들은 고칠 게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기사가 두 사람의, 어느 한 쪽도 잘한 쪽이 없는 두 사람의 법적 다툼에서 한 사람에게 유리하게 써졌다는 거다. 내용을 잘 파악해 보니 어르신은 옛날에 이 업자가 몇번째였나 회사를 차릴 때 2억인가를 투자하면서 대신 고문인지 뭐시기 직함을 받고 월급처럼 한달에 얼마씩 받기로 계약한 관계였다. 얘기를 듣고 보니 그 양복쟁이 배지 단 사람이 딱 예전 어르신의 역할이었다. 나름 먹물 좀 먹었고 법 조금 알고 힘 있는 것 같은 기관에 몸 담은 적 있고, 한 마디로 '있어보이는' 사람이 투자 좀 한 다음에 고문입네 하면서 이른바 '얼굴마담' 역할을 하면서 월급처럼 얼마씩 받아먹는 거였다.
업자 말에 따르면 어르신은 다달이 몇백만원인가 천만원인가를 받아서 이미 투자금을 회수한 지 한참 됐는데 회사가 망했는데도 계속 그 돈을 요구하고 액수를 늘려 달라고 생떼를 쓰고 행패를 부리더니 결국 고소까지 했다는 거다. 사실 회사가 법적으로 망하고 새 법인이 섰는데 계약이 유효하진 않을 거다. 업자가 무혐의를 계속 받고 있는데도 어르신은 끊임없이 고소하고 있는 골치 아픈 사람이었다. 나는 기사를 써서 결국 그 지저분한 싸움에 끼게 된 거다.
이미 종이신문으로 나간 기사는 돌이킬 수 없었다. 인터넷에 있는 기사는 손볼 수 있다. 나는 주말에 기사를 다시 썼다. 생각같아서는 삭제하고 싶었는데 일단 팀장이 허락해주지 않았고, 그냥 지우고 말기엔 너무 분했다. 기사는 공공기관 발주 사업과 관련된 상습 부도와 내부의 지저분한 싸움 정도로 정리됐다. 사실 쓸 필요 없는 기사가 돼버렸지만 나로서는 가장 진실에 가깝게 새로 썼다고 생각한다.
기사를 다시 내보낸 뒤 양쪽에 다 통보를 했다. 아니나다를까 둘다 생난리를 쳤다. 나도 두 통의 전화에 각각 욕설을 섞어서 고성을 내뱉었다.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고도 했다.
사회부 생활을 하면서 비슷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 조금 연차를 먹었더니 후배도 그런 사람을 만난 뒤 보고를 하기도 했다. 당시 생각이 나서 "이런 건 정말 꼼꼼하게 취재하고 조금이라도 더러운 냄새가 나면 기사를 안 써도 좋으니 손을 떼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후배는 결국 좀 취재를 해보다가 접었던 걸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