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아닌 척]홋카이도 여행기 : 먹방편 (1)-라멘

shiho(65)
Published in
#kr
Words
615
Reading
3 min
Listen
Play
9y

지난 10일부터 5박6일 간 일본 홋카이도로 겨울휴가를 다녀왔다. 우리 부부가 단둘이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해서 노조가 회사를 노동청에 고발하며 얻은 겨울휴가를 조금은 거창하게 보내고 왔다.
아내의 계획대로 따라다녔지만 홋카이도는 나같은 술 좋아하는 남자에게 더할나위 없는 곳이었으며, 고맙게도 아내는 거의 모든 끼니에 맥주를 허하시었다. 아내는 수십장의 인생샷 사진을 얻었고, 나는 맥주를 얻었다. 내가 개이득인 것 같다. 고맙다.
여행기를, 800장의 사진을 어떻게 정리할까 잠시 고민하다, 음식/맥주/풍경 3회로 정리하기로 했다. 물론 사진은 수십장만 올릴 작정이다.


먹방

홋카이도 먹방하면 흔히들 해산물을 이야기한다. 그렇긴 하다. 홋카이도는 미친 바다를 가졌다. 한쪽은 태평양이고 반대쪽은 오호츠크해다. 해류로 따지면 한쪽은 쿠로시로 난류, 반대쪽은 쿠릴 한류다. 잘 모르지만 걍 모든 바다를 가졌다고 치자. 킹크랩이 막 굴러다닌다. 우리나라가 수입해다 먹는 많은 해산물을 그들은 앞바다에서 잡아다 먹는다.

그럼에도,

이번 여행 마지막 밤에 노보리베츠의 유황온천에 몸을 담그며 아내가 물었을 때 꼽은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삿포로의 미소라멘이었다. 홋카이도 3대 라면은 삿포로의 미소(된장)라멘, 하코다테의 시오(소금)라멘, 아사히카와의 소유(간장)라멘이라고 한다. 그 중 삿포로 미소라멘은 일본 3대 라멘에도 들어간다고 한다.

미소라멘은 첫날 저녁에 먹었다. 아침 8시 3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우리 부부는 오전 4시 50분에 공항버스를 탔고, 도착해서는 미련맞게도 하나마루 스시를 먹기 위해 2시간을 기다려 버렸다. 점심을 먹고 나왔는데 시간은 오후 4시를 넘어, 가뜩이나 짧은 홋카이도의 겨울 해는 이미 지고 야경이 시작되고 있었다.

(미소라멘 하나 먹은 걸 설명하는데 왜 아침 일정부터 구구절절 설명해야 할까. 그날 미소라멘은 우리 부부가 종일 몸을 가혹하게 몰아붙이다 가장 절실한 순간에 먹은 가장 적확한 음식이었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다.)

우리는 2시간을 하나마루에 도둑맞고 조바심이 생겼다. 호텔에 짐가방을 던져 놓고 도로 튀어나와 삿포로 TV탑과 거기서 이어지는 오도리 공원을 주파했다. 사진을 철컥철컥 찍고 경보하듯 걸었다. 저녁 시간은 이미 지났고 오후 9시쯤 눈이 왔다.

눈은... 정말 많이 왔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꽁꽁 싸매어 눈만 내 놓았는데 내 놓은 눈으로 눈이 들어갔다. 라멘집이 몰려 있다는 작은 골목 라멘 요코초를 찾기 위해 아내는 꽁꽁 언 손으로 구글맵을 뒤적이며 걸었다. 추위에 전자제품 전원이 금방 나가버렸다. 도중에 와이파이 도시락이 꺼졌고, 우리는 길을 못 찾고 삿포로 최대의 환락가에서 한 참을 빙빙 돌았다. 카메라도 잠깐만 꺼내면 금방 눈에 덮여버렸다. 옷과 가방의 굴곡마다 눈이 소복이 쌓였다. 일회용으로 산 싸구려 설장화 안으로 눈이 녹은 물이 배어 들어왔다.

간신히 찾은 라멘 요코초는 크지 않았다. 라멘집은 여러갠데 두어 집엔 줄이 너무 길었다. 점심 때 2시간을 기다렸던 우리는 1초도 기다리지 않기 위해 그냥 아무 집에나 들어갔다. 간판도 보지 않았다. 근처 유흥업소 관계자로 보이는 두 남성이 맥주와 함께 라멘을 먹고 있었다. 요리를 못하게 생긴 남성 두 명이 라멘을 만들고 있었다. 잘못 온 걸까.

그리고 눈 앞에 라멘이 나타났다.
DSC07225.JPG

사실 라멘이 맛있을 거라는 건 요리를 못하게 생긴 남성이 아이스크림용 스쿱으로 된장을 하나 가득 퍼서 그릇에 떵떵 소리가 나게 쳐서 담을 때부터 예상했다. 라멘 한 사발에 된장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니, 국물은 당연히 진했다. 걸쭉할 정도로. 하지만 전혀 짜지 않았다. 얼큰했고 시원했다. 차슈(고기)는 두껍고 널찍한 게 투박하지만 질기지 않고 부드러웠다. 면발은 탄력이 있으면서 국물을 잘 머금고 있었다. 한 사발이 뚝딱 사라졌다. 국물까지 남김없이. 콧잔등에 땀이 송글 맺혔다. 엄동설한에 찬 물을 찾게 된다. 역시 손님이 그럴 걸 아는 식당 물통엔 찬물 뿐이다.

다시 눈보라가 몰아치는 밖으로 나갔지만 뱃속은 한참동안 따뜻했다.


기가막히게 맛있었던 라멘은 하코다테에서도 맛볼 수 있었다. 하코다테는 정말 애주가들의 천국이었다. 어딜가나 맛이있었고 술도 좋았다. 우리가 있었던 때가 대부분 업장이 쉬는 수요일이었다는 점이 너무 아쉬웠다. 100년 넘었다는 맛집들도 그날은 다 쉬었다. 그런 가운데 하코다테에서 자웅을 다투는 시오라멘 맛집이 호텔 앞에 있다고 해서, 역시 짐을 부리자마자 달려갔다. 세이류칸이라고 구글이 알려주는 곳엘 갔는데 웬 중국집이 있었다. 한자로 '성룡관'이라고 적혀 있었다. 여기구나.

DSC07624.JPG
뭐랄까 말 없이 먹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굉장히 정확한 맛. 육수는 이런 것이라고 알려주는 듯한, 깔끔한 맛의 교과서 같은... 모범적이랄까. 소금으로 간을 한 이유는 육수의 맛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일 거다. 비슷한 맛을 느낀 적이 있다. 오키나와에서. 오키나와 소바집 중에 소금으로 간을 하는 흔치 않은 집이 있었는데 그 국물맛이었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하지만 당장 새로 한 그릇이 나와도 똑같이 국물도 남기지 않고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