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초짜 시절 그렇게 큰 코를 다친 뒤로, 제보를 보다 엄격하게 취급하게 됐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야 아는 건 아닌데 찍어먹어 봤으니... 선배, 후배, 회사 전화 등을 통해 '제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이야기가 날아들었지만 기사가 된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특히 회사 전화는 다른 회사를 다 거치고 온 것들이라 정말 형편없었고, 가끔 제 정신 아닌 사람들의 전화도 왔다. 선배들의 제보는 후배들이 주는 것들과 비교하면 '민원'의 성격이 강했다.
이날 만난 사람도 선배의 제보였다. 우리회사 명예논설위원인가를 지냈으며 누구와 구누와 친하다고 했다. 만나보라는데 거절할 수 없었다.
중년 신사가 나타났다. 명함과 함께 서류봉투로 자료를 하나 가득 건네 줬다. 명함엔 '법학 박사'라고 찍혀 있었다.
제보 내용은 이랬다. 중증장애인의 활동을 돕는 활동보조인들의 수당을 복지단체 대표가 가로채고 있다는 거다. 솔깃했다. 사회면에 한 꼭지는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봉투 안에 고발장과 공증받은 녹취록 등이 같이 들어있었다. 촉이 쌔~ 하게 왔다.
일단 사건 자체가 섹시하니 경찰에 좀 알아봤다. 복지단체 대표가 활동 보조인 출퇴근을 등록하는 단말기를 이용해 허위로 당국에서 나오는 보조금을 수령해 착복했다는 것이다. 사건 접수 자체는 맞는데 아직 수사로 밝혀진 내용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접수자가 그 법학박사 본인인데 경찰이 한마디 더 보탰다. "이 분이 이 단체 고문이네요." 여기서 확신이 들었다. 내 촉은 이 법학박사가 단체 대표를 하고 싶어서 둘이 법적으로 싸우고 있는 거라고 강하게 소리쳤다. 나는 다시 누군가의 더러운 싸움에 이용당하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알아보니 고소고발은 법학박사가 일방적으로 한 게 아니었다. 대표도 법학박사를 고소하고 둘이 아주 명예 훼손이니 사기니 고소 건이 난리도 아니었다. 촉이 맞았다.
다 알아보고 전말을 파악하고 있는 줄 몰랐는지 법학박사에게서 연락이 계속 왔다. 나는 그냥 뭉갰다. 예전처럼 욕하지 않았다. "수사 중인 사안이라 팩트 확인이 잘 안되는데 고소 관계가 너무 복잡해서 섣불리 기사화를 할 수 없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연락이 끊어졌다.
제보를 킬한 것은 당시 팀장에게만 내용을 보고했고 제보를 건넨 분께는 얘기하지 않았다. 법학박사는 그 뒤 보도자료 형식으로 몇 개의 메일을 보내다가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