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품격뻘글]물건에 영혼이 깃든다는 말, 믿으십니까

shiho(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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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물건에 정을 붙이고 오래 쓰다 보면 거기에도 영혼이 깃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신은 그 말을 믿는가?

나는 지난 토요일 밤, 집에서 아내와 맥주를 한 잔 하고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한 시간이 넘게 마셨다. 한 세번째 캔이었던가. 좀 전까지와 마찬가지로 마시던 유리컵에 따른 뒤, 컵을 들어 올렸는데 갑자기 "찌직" 하는 소리가 났다. 아내와 나의 조금 놀란 눈은 서로를 마주보다가 내 손에 든 컵으로 향했다. 컵 밑에 커다란 금이 가 있었다. 연애시절부터 참 오래 썼던 커플 맥줏잔이었는데 서운한 마음이 밀려왔다. 금이 간 컵은 재활용 봉투로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출근을 하기 전 늘 마시는 과일주스를 만들었다. 과일이 다 갈린 뒤 매일 아침 하던대로 주스를 따를 컵을 찾았는데 아내의 빨간 컵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아 참 어젯밤 깨졌지.

우리의 커플 맥줏잔은 2015년 미국에 단기연수를 갔을 때 필라델피아에서 산 것이다. 필라델피아의 상징인 '깨진 종' 무늬가 파란 색으로 찍힌 잔, 또 다른 상징 'LOVE' 조각상을 형상화한 빨간 무늬가 찍힌 잔이다. 필라델피아에서 서로 잘 어울리는 두개의 컵을 고르느라 나는 편집샵을 몇 바퀴나 돌랐다. 컵 두개를 다 아내의 자취방에 갖다 놓고 같이 맥주를 마실 때마다 썼다. 우리는 두 잔을 항상 같이 쓰고, 같이 씻었다. 우리 사이가 연인에서 부부로 바뀔 무렵, 우리는 많은 추억이 담긴 컵 두개를 소중하게 포장해 직접 신혼집으로 가져왔다. 그러고 보면 이 커플잔은 우리 연애의 반을 함께했다. 부부의 마음처럼 이 둘도 이어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부엌 선반 위에 홀로 남은 빨간 잔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만약 컵에도 마음이 있다면, 홀로 남은 잔은 얼마나 슬플까. 우리 둘 중 누가 먼저 떠나면 남은 인생은 얼마나 슬플까. 술이 덜 깼는지 조금 감상에 젖었다. 그리고 다 갈은 주스를 따르기 위해 빨간 컵과 다른 사기잔을 꺼내 빨간 잔을 먼저 채우려고 했다.

"찌지지직"

나는 잔을 든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빨간 잔엔 전날 밤 깨진 파란 잔보다 훨씬 큰 금이 여러 개 생겼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놓여있던 잔에 차가운 음료를 부었으니 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잔의 생명이 끝나는 시간이 너무 가까웠다. 마치 옆지기가
먼저 떠난 뒤 남은 녀석이 뒤를 따른 것 같았다. 너희는 얼마나 사랑했니, 밤새 홀로 남아 얼마나 슬퍼했니.

나는 발코니로 나가 전날 밤 버렸던 파란 잔을 들고 들어왔다. 금이 벌어져 와장창 깨질까봐 조심스레 탁자에 나란히 올려 놓고 사진을 찍었다. 분명한 건이 컵들을 고르던 순간의 설렘부터 이후 모든 소중한 기억이 여기에 깃들어 있다는 것. 우리 부부는 이 컵들을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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