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포스팅을 하려니 괜스레 조심스러워진다. 또 기레기라고 욕을 먹을까봐서다. 물론 여기서 구악스런 출장도 소개할 거다. 김영란법이 시행됐지만 아마도 어딘가에서 여전히 그런 출장을 만들어내 다니는 기자가 있을 거다. 구악계에선 이런 이들이 능력자다. 남들 다 땡겨먹을 때 땡겨먹는 자는 고수가 아니다. 고수는 어려운 때에 빛을 발한다.
개인적으로 출장은 목적이 분명하고, 현장에서 도 넘은 접대 안 받고, 기사 잘 쓰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요즘엔 회삿돈으로 가는 출장도 무지하게 많다. 기사를 쓰지 않는 출장은 출장으로 치지 말자. 그건 진짜 외유라고 하자. 최소한의 커트라인이다.
내 생각에 가장 목적이 뚜렷한 출장이 아닐까 싶다. 해외에서 거대한 재난이 일어났을 때 회사별로 판단해서 출장을 보낸다. 주로 사회부에서 빡빡 기는 데 이골이 난 기자를 보낸다. 아무런 편의도 제공받을 곳이 없다. 그런 기대를 할리도 없다.
이런 출장은 빨리 가는 게 장땡이다. 먼저 가서 쓰면 쓰는 것마다 단독이다. 하루이틀 늦게 가면 남들이 안 쓴 것들을 조명하기 위해 부지런히 머리와 발을 굴려야 한다.
출발 전에 한국에서 현지 취재 루트를 다 캐 놓고 가는 게 좋다. 가면 다 펼쳐져 있겠거니 생각하면 오산이다. 가자마자 무너진 공항에서 통신이 끊어진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통신이 끊어지지 않는 한국에서 최대한 현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날 약속을 잡아 놓는 게 좋다. 인권위 관계자를 통해 연결해 놓은 취재원도 현지에서 전화가 잘 안 돼서 후반기에 간신히 만났다.
현지 유심은 필수다. 한국에서 최신형 단말기 가져가봤자, 그냥 현지 통신 쓰는 구형 단말기가 제일 잘 터진다. 로밍폰으로 현지 사람에게 전화하면 잘 연결이 안 되더라. 한국보다 현지에 전화할 일이 훨씬 많다. 공항에서 바로 사서 끼우는 게 좋다. 문이 열려 있다면.
경험 많은 선배와 에너지 넘치는 후배 2인 1조로 가게 되면 금상첨화다. 후배가 현장에서 시체 굴러다니는 현장을 스케치하고 선배는 데스크 역할을 하며 영사관 등 외교부 관계자나 교민사회, 현지 파견 기관 관계자 등을 만나 취재 루트를 개척하면 된다. 혼자 가게 되면 달리는 차 안에서 휴대전화로 메모했다가 언제 어디서 기사를 보내게 될 지 모른다. 장문메시지로 한국에 기사를 보내야 할 때도 있다.
좀 쉽게 현지 상황을 해결하려면 구호단체를 뚫는 게 좋다. 항공편과 식, 주를 얹혀서 해결할 수 있다. 통역도 해결된다. 기사도 나온다. 물론 비용은 나중에 10원 단위까지 정확하게 계산해서 회사가 지불한다. 그런 기본 생활이 해결되면 한결 편하다. 그 정도 편의 제공이 전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것 말고도 고민하고 준비할 게 한둘이 아니다.
의식주는 편한 곳이 있다면 최대한 찾아 가야 한다. 잠이라도 잘 자고 아침이라도 잘 먹어야 버틴다. 문 밖에 나가면 지옥이 펼쳐져 있다. 우리는 아침에 선교사가 구워주는 고기도 먹었다. 점심은 해발 1900m 산 위, 누가 묻혀있을지 모르는 돌무더기 옆에서 '햇반'에 고추장을 얹어 먹었다. 여행이 아니고 언제 끼니를 거를지 모르니 먹을 수 있을 때 입에 맞는 걸 먹어야 한다.
출장지가 비 기독교 국가라면 선교사들이 엄청난 도움이 된다. 불모지에서 수모를 감내하며 오랜 세월 살아온 분들이다. 현지에서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걸 알고 있으며 통역도 된다. 기독교계 언론사라면 더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다.
출장에 '꿀'따윈 없다. 기사는 매일 막고 주말자나 특집면이 있다면 그것도 1~2개면씩 뚝딱 써야 한다. 하지만 정말 재래식으로 발품을 들여 한땀한땀 취재한 내용을 풀어 낼 때 희열도 느껴진다.
모든 기사를 막고 취재기를 쓰는 것도 기본이다. 취재기까지 보냈다면 스스로 여유를 좀 만들어 봐도 나무랄 것 하나 없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고생했으니까. 나는 북한식당에서 종북음식을 배터지게 먹고 북한 소주를 취할 만큼 마셨다.
대체로 업무 강도가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사는 사후에 작성하는 게 대부분. 종교 출장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럽 순방 루트를 쫓아다닌다던가. 성스럽기 이를 데 없다. 나는 경험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문화부에서 종교 담당을 하다가 특정할 순 없지만 제3종교단체의 출장을 가서 정신이 육체에서 분리되는 경험을 한 선배의 이야기도 들었다. 마냥 편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교황님 손 한 번 잡아보고 오면 울엄마와 장모님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시겠지.
업체가 자사의 해외 진출 상황이나 자선 활동을 홍보하기 위해 만드는 출장이다. 좋은 데서 자고 좋은 것 먹는다. 일정이 빡빡하지 않다. 기사는 현지에서 쓸 수도 있지만 사후 작성이 대부분이다. 기사 부담이 없으니 연식이 좀 되신 기자님들이 많이 온다. 자세히 말하긴 뭐하지만 저렇게 되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공식일정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빠져서 호텔에서 놀다가 노는 일정만 개근하는 경우가 많다. 골프 일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밤엔 홍보팀을 데리고 나가 술을 먹으려고 애쓴다. 술만 먹을지는 모르겠다.
말 그대로 기자가 만들어내는 출장이다. 어떤 기자가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선과 악이 분명하다. 어차피 짬도 힘도 안 되는 내가 겪은 경우는 다행히 '선'의 쪽이다. 2014년 신년기획 출장 지시가 내려왔는데 2주 뒤 출발이고 위에서 정해준 건 두 줄짜리 기사 요지에 담긴 장소 두어 곳 뿐. 항공편과 숙박부터, 현지취재원 섭외 등 모든 걸 2주 안에 만들어서 출발해야 한다. 이럴 때 큰 도움이 됐던 건 코트라. 해외 진출 기업들을 연결해주고 인터뷰 일정까지 잡아줬다. 코트라 차량과 통역이 가능한 현지인 직원을 붙여줬다. 솔직히 항공과 숙박은 당시 산업부장이 전화해서 광고비로 퉁친 것 같다. 항공편명만 알려주면 회사에서 알아서 해준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분명 땡긴 것일 터. 어쨌든 열심히 일했고 한 사진부 후배의 훌륭함도 알게 됐다.
분명한 '악'의 경우는 ㅈ일보 ㅅ주필의 경우를 보면 된다. 출장을 '만들어 냈다'는 건 앞의 경우와 같지만 가야 하는 출장의 모든 과정을 한땀한땀 만들어 갔다는 얘기는 아니다. 없는 출장을 만들어 냈다고 보면 된다. 그것도 초호화 귀족 투어로. 알기로 주필은 기사 대신 '편의'를 제공했다고 한다.
떠오르는 출장의 종류는 여기까지다. 어떤 출장을 선호하느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당연히 여행 출장이 제일 좋다. 하지만 재난 출장을 한번 더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빠릿한 후배 하나 데려 가서 재난취재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싶다. 우리 회사엔 그런 걸 알려주는 선배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