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열전]츤데레 박선배

shiho(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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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shiho입니다. 비가 윽수로 오네요. 출근을 하기 위해 눈을 떴는데 유리창이 깨지려고 하던데요. 저는 속으로
'아싸 차 깨끗해지겠다' 했지만 아내는 걱정이 좀 됐나보네요. 훗 무튼 빗속을 뚫고 국회로 출근했습니다. 어제 추경안이 통과돼서 오늘은 그렇게 긴박하게 쪼는 일은 없네요. 그래서 막 글쓰기 욕구가 샘솟는데, 주5일 게재 원칙을 깨고 네팔이야기를 쓸까 생각하다가. '있는 아이템은 똥 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아끼는 게 좋다'는 이 바닥의 섭리를 생각하고 슬슬 선배 뒷담화나
해보려고 합니다. 또 이런 글을 쓰게될 것 같아서 말머리를 '동료열전'으로 정했습니다.

처음 들은 그의 별명은 '베이징 주폭'이었다. 입사할 당시엔 그가 베이징 특파원이라서 얼굴을 볼 일이 없었고 별 관심도
없었기에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사회부 차장을 하면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 '차 트렁크에 베이징에서 가져온 고량주를 수십병 싣고 다닌다' '술 취하면 욕하고 X지랄을 한다'는 등의 쑥덕거림이 그를 따라다녔다. 나는 당시 편집부 야근조에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퇴근하기 위해 술 취해 자고 있는 그를 자주 깨워서 집에 보내야 했다. 떠올리면 그렇게 유쾌한 선배는 아니었다.

곧 부장급으로 승진하더니 국제부장이 됐다. 공교롭게도 나는 그 때 야근조에서 국제면, 스포츠면을 담당했기 때문에 말을 섞을 일이 많아졌다. 보통 편집자들은 돋보이게 하고 싶은 기사가 있으면 최대한 시각화할 거리를 챙겨야 하는데, 취재 부서에 전화를 해서 '그래픽 거리 없냐', '얘 사진은 없냐' 등을 물어본다. 나와 그의 통화는 이랬다.

"네."
"부장, 안녕하세요, 편집부 김입니다."
"네."
"아 A선배 기사에 무슨 수치가 있는데 그거 혹시 원자료를 구할 수 있나 해서 전화드렸습니다. 그래픽으로 만들어보려구요"
"네."

그는 내게 '더럽게 무뚝뚝한 인간' 정도의 인상이었다. 그를 직접 부장으로 모시기 전까지는 그랬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나는 편집부로 입사해서 3년 동안 취재부서로 보내달라고 소원수리를 쓰다가 2013년 1월 모 메이저 신문사의 영입 제의를 받은 뒤 그걸 들고 편집국장이랑 딜을 해서 그 해 5월 간신히 사회부로 나갔다. 그런데 원체 반골 성격엔 데다 새 편집국장이 감정적인 인사를 하는 바람에 7개월 만에 다시 내근부서인 국제부로 들어갔고 거기서 1년을 근무하다 갑자기 다음 편집국장이 사회부 경찰기자 넘버2인 경찰청 바이스로 발령을 내버렸다. 개인사를 주절거린 것은 이 때 그 선배가 사회부장이라서 나 역시 가볍지 않은 보직을 맡아 직접 같이 일하게 됐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다.

인사 '방'이 붙던 날 저녁 나는 다른 곳에서 술을 마시던 중 사회부의 호출을 받고 달려갔다. 신고를 하라는 것이었다. 정체 불명의 술집을 사회부원들이 전세 낸 것처럼 마시고들 있었다. 취한 김에 노래도 부르고 술도 많이 마셨는데 무뚝뚝한 그 양반은 깜짝 놀랄만큼 밝은 표정으로 "잘해보자"라는 말을 남기고 장렬히 전사했다.

그를 좋아하기 시작한 건 그의 데스크를 받아본 뒤였다. 취재기자가 기사를 올리면 부장과 차장 등이 열어서 손질하는 것을 데스킹이라고 하는데, 이 양반 데스킹 솜씨가 이제껏 겪어본 데스크들 중 최고였다. 중언부언하게 만든 단어를 다 빼버리고 문장을 매끄럽게 읽히게 만들었다. 긴 문장은 과감히 단문으로 끊어내고, 중간중간에 무릎을 치게 만드는 표현으로 읽는 맛을 살려냈다. 물론 그의 글도 훌륭했다. 그가 데스크칼럼을 쓰는 날은 꼭 찾아 읽어봤다.

그를 존경하게 된 건 2015년 중반이었던 것 같다. 나는 당시 휴가를 간 캡을 대신해 보조데스크를 하고 있었고 우리 팀 후배 하나는 영양사 파업으로 '급식대란'이 예상된다고 떠들었던 서울의 한 초등학교 점심시간을 스케치한 기사를 보냈다.

근데 기사 내용이 예상과는 딴판이었다. 초등학생들은 만날 비슷한 급식을 먹다가 점심 때 햄버거를 준다니 너무 좋았다. 엄마가 싸 준 도시락을 처음 먹어 본 아이도 있었다. 영양사들의 파업이, 당사자들에게는 하루이틀짜리 소소한 일탈이었다.

나는 기사를 재밌게 보고 문장 몇 개만 살짝 손질해서 올렸고 부장도 기사 전체 맥락을 훼손하지 않은 선에서 매끄럽게 고쳐서 출고했다. 그런데 사회부, 정치부를 담당하는 부국장이 딴지를 걸었다. "급식 대란이 일어났다고 해야 얘기(기사)가 되는데 이런 식이면 쓸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

평소 무능하기 짝이 없는데 대체 어떻게 거기까지 올라갔을까 궁금했던 사람이 저따위 발언을 하니 열이 받을 수밖에. 그러나 부장 앞이라 참고 있었다. 그런데 부장이 부국장에게 버럭하며 들이받았다. "아니, 그럼 없는 얘기를 쓰란 말이야? 현장을 조작이라도 하라고?" 이런 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베이징 주폭이 용맹함을 과시하자 선배인 부국장이 깨갱하고 물러났다.

그날 선배에게서 아련하게 그려만 봤던 사회부장의 이미지를 봤다. 윗선의 사내정치와 부당한 주문으로부터 후배들을 지켜주는, 그러면서 실력은 끝내주고 승진은 잘 못.... 그런 이미지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해 상반기 인사에서 부장은 논설위원으로 발령이 났다. 겉 모양은 정치부장, 사회부장 하느라 고생했으니 쉴 시간을 준다는 것이었는데, 우선 당사자가 원하는 인사도 아니었고 여러모로 좌천성 인사였다.

그는 지난해 총선 뒤 인사에서 국방부 전문기자로 발령이 나서 나와 함께 정치부 생활을 하고 있다. 후배를 정치부장으로 두고 있는 모양새가 됐는데 별로 개의치 않았다. 완전히 생소한 출입처를 받아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인데, 빠르게 출입처를 장악했다. 지난주였나 청와대가 밤중에 갑자기 송영무 국방부장관 후보자의 임명을 단행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전화 한통으로 팩트를 다 확인했다. 기사는 말할 것도 없었다. 국방부에 출입하는 다른회사 어린 후배가 그 선배 무뚝뚝한데 너무 좋다고 난리다. 타사 후배한테도 츤데레인가보다.

지지난주에 그 선배와 둘이 야근을 하는데 청키면가에서 나는 볶음밥을 사주고 자신은 완탕면을 먹었다. 볶음밥은 비싸고 양이 엄청 많았다. 셰어하는 메뉴인 것 같은데 그걸 혼자 다 먹었다. 양이 너무 많은데 "다 먹어 임마 ㅎㅎ" 이러길래 꾸역꾸역 먹고 있는데 스마트폰을 꺼내서 뭘 찾더라. 그게 알고보니 스벅 쿠폰이었다.

그는 "다 먹었냐, 시키 남기지 말라니까. 커피나 한잔 들고 들어가자"면서 회사 1층 스벅에 데려갔다. 나는 항상 마시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먹겠다고 했다. 선배는 "시캬 비싼거 먹어. 한잔 무료 쿠폰 있어"라고 말했다. 나는 별 관심 없었지만 돌체라떼인지 머 비싼 걸 시켰다. 선배도 비싼 걸 시킬 줄 알았는데 그냥 자기 스벅카드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아 이 남자, 열심히 결재해서 받은 쿠폰으로 후배 비싼 거 시켜주고 본인은 싼 거 마시는 거였다. 소소하게 감동 받았다. 이힝.

예전에 선배는 사회부장 잘리면서 내가 서운해 하니까 "아쉽지만 다음에 같이 일할 기회가 있겠지"라고 시크하게 말하고 갔다. 이 회사에 몇 안되는 존경할 만한 기자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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