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의 토요판 기사를 보고 알록달록한 감정을 느꼈다. 감정은 전율로 시작해 희열로 옮겨간 뒤 여러 차례 변모하다 결국 좌절감으로 끝이 났다.
'항상 약자의 편에 서겠습니다.'
'어두운 곳을 비추는 기사를 쓰겠습니다.'
기자 지망생이라면 누구나 자기소개서에 한줄 정도는 걸쳤을 말이다. 하지만 많은 기자가 잊어버리고 사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기사는 꼭 써야 할 이야기가, 해야 할 방식으로 취재된 뒤 새로운 기법으로 쓰여졌다. 한겨레의 탐사보도는 늘 그렇다. 내가 하지 못하는 걸 하면서 약을 올린다.
취재는 무연고 사망자 190여명의 목록에서 시작된다. 한겨레는 이름 없이 살다 누구도 찾지 않는 곳에서 죽은 이들의 생전을 추적했다. 1회는 시리즈를 여는 글이기도 하다. '맛배기'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자체로 충격과 파괴력이 있는 기사다. 맛배기만 봤지만 한줄 한줄에 꼼꼼하게 탐사 취재한 흔적이 남아있다.
기자는 이들 모두를 '나'로 지칭했다.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이들은 기사에서나마 독자의 이입 대상이 된다. 문체는 기사이면서 기사가 아니다. 다소 문학적으로 느껴지는 표현들은 뜯어보면 담담하게 팩트만을 전달하고 있다. 충분한 취재 없인 신문지 위에 오르지 못했을 문장들이다. 그래서 2회가 나올 오는 토요일이 나는 두렵다.
탐사보도 단기연수를 다녀온 뒤 한 번 해보겠다고 설쳤던 때가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아이템은 식상했고 방법은 무식했다. 회삿 돈을 축내고, 여러 사람이 고생을 했지만 결실도 없었다.
시군구의회의 1년치 공무국외연수를 전수조사하려고 했다. 위에선 여건을 만들어주지 않고 결과물만 기다렸다. 이쪽에 배치해 둔 사람을 빼 간 당일에도 언제 론칭하냐고 물었다.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자료를 전부 종이로 인쇄하라고 했던 팀장은 손 하나 까딱 않고 이름만 올리려고 했다.
시행착오를 끝내고 기획안이 나오자 회사는 주 수입원인 시군구청에 영업을 하는 기간이라 다음해 1월로 출고를 미루라고 했다. 2014년 현황을 2015년도 아닌 2016년에 보도할 수는 없었다. 공식적으로는 잠시 미뤄졌을 뿐이었던 기획은, 인원들이 인사가 나서 뿔뿔이 흩어지자 진행이 불가능해졌다. 편집국장의 의중으로 알고 마음을 접었다. 모두가 모여서 겉으로나마 집중하고 있을 때도 못했던 기획이었다.
회사 내에서 한국기자상 수상자가 나오자, 팀장은 다른 부서에 발령이 나 정신이 없는 내게 갑자기 전화해서 그걸 쓰자고 했다. 수도 없이 부딪쳤던 구팀장과 또 한번 언성을 높였다. 한겨레의 탐사보도와 우리 탐사보도는 목적부터 달랐다. 그래서 안 됐다.
탐사보도와는 아마도 가장 거리가 먼 부서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회부에서 못했던 걸 산업부에서 시켜줄리는 없다. 식음료 광고특집 기사를 써야 한다. 언젠가 해볼 수 있을까. 기회가 되면 해낼 수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