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였다.
범우사에서 출판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구하기 위해
온 동네 서점을 돌아다녔던 적이 있다.
그냥, 그 책을 읽고 싶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왜 꼭 범우사 판이어야 했는 지도 잊었다.
그땐 그럴 때였다.
갖고 싶은 것, 사랑하는 것에 대해
별다는 이유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운동화는 '나이키'여야 했고
음악은 꼭 '마이마이'로 들어야 했으며,
짝사랑의 대상은 교생 선생님여야만 했다.
맹목적이었지만, 그만큼 주어진 세계에 충실했다.
적어도 지금처럼 타산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슬프게도, 나이키도 마이마이도 사랑도
어느 하나 쉽게 가져본 적은 없다. 인생이란)
아무튼 몇 군데 서점을 돌아다닌 끝에
겨우 범우사 판 <율리시즈> 전 권(총 4권)을 구했다.
끙끙대며 싸들고 간 <율리시즈> 를 책상에 놓고
1권 제 1장을 보는 순간, 그곳에서 신세계를 봤다.
그런데 그 신세계가 너무 심하게 신세계였다.
결국 채 5 페이지를 못 넘긴 <율리시즈>는
그 뒤 20여년 넘게 책상에 고이 모셔졌다.
제임스 조이스의 책은 <율리시즈> 이후로 읽은 게 없다.
죽기 직전에 한 번 읽어볼 수나 있을까.
<율리시즈>와의 설렜던 만남은
그렇게 아주 박살이 나버렸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기억 남는 것 하나가 있다.
책 제일 앞 장에 있는 서문이다.
나는 <율리시즈>에 굉장히 많은
수수께끼와 퀴즈를 감춰 두었다.
앞으로 수 세기 동안 대학 교수들은
내가 뜻하는 바를 거론하기에 분주할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불멸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 말이 얼마나 멋있던지.
인생의 가르침이라도 된 것처럼
한 동안 <율리시즈>의 서문을 마음 속에 품고 살았다.
나도 <율리시즈> 같은 작품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죽고 없어져도
내 작품에 대해 논하는 사람들의 말 속에서
영원히 살고 싶었다.
내가 남긴 글로 하여금
많은 사람들이 날 기억해주길 바랐다.
사람의 생각이란 어쩌면 이리도 변덕스러운가.
시간이 흘러 어느덧 어른 비슷한 것이 된 나는
사람들이 날 영원히 기억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특히 죽어 사라진 이후, 인터넷 속 내 흔적들로
나를 기억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고 뭐 이상한 글이나 댓글을 남긴 적은 없습니다)
몇 해 전, 팟캐스트 '빨간책방'을 듣다가
이동진 평론가의 말에 공감한 적이 있다.
요컨대 죽기 전에 자신이 인터넷에 남긴
글 등의 흔적을 전부 지워버리고 싶다는, 얘기.
그것은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구천을 떠도는 귀신처럼, 주인 잃은 영혼 같은 글들이
외로이, 쓸쓸히 인터넷을 떠돌까봐.
지켜줄 사람 하나 없는 글들이
왜곡되고 오해되며 갈갈이 찢길까봐.
그로 하여금 그 글을 쓴 주인조차 왜곡될지도.
죽어서 아무리 최상급 묘지에 묻힌다 한들,
인터넷에 나 몰래 떠도는 내 흔적들이 있다면
마음 편히 잠들진 못할 것 같다.
진짜 귀신이 되어 내가 쓴 글을 지우기 위해
전국 PC방을 떠돌아 다닐지도 모르겠다.
(PC방 지박령이 있다면 이런 이유 때문 아닐까)
이곳 스팀잇에 남긴 글들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걸 생각하면,
여기에 글을 쓰는 일이 망설여진다.
요 며칠 이곳에 영원히 남는 글에 대한
생각 몇 개를 읽어보다가 경각심이 생겼던 것.
지금은 전혀 그럴 일 없을 것 같지만,
언젠가 훗날 스팀잇 관계자들을 찾아가
'사람 하나 살린다 생각하시고...' 하며,
내 글 좀 지워달라고 눈물로 호소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그들은 쿨하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럴 거면 애초에 쓰질 말던가
아아, 그렇지. 그래.
쓰지 않으면 되는 거였구나.
라고 깊은 깨달음을 얻... 긴 개뿔.
애국하시는 할아버지들처럼 태극기에
가스통 하나 들고 가서 다 죽인다 협박하다가
블록체인에 저항하는 한국의 테러리스트로
해외토픽에 실릴 지도.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키보드 오른쪽 상단에 있는 Delete 버튼을 째려본다.
지울까, 말까, 에이 뭐 어때. 아니야, 지울까.
당신이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다면,
결국 승자는 에이 뭐 어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