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귀신, 달걀귀신이 지나가고 홍콩할매가 왔다갈 시기쯤 중국의 무협영화가 한국을 강타하고 그와 함께 중국의 귀신이 들어왔는데, 그 귀신의 이름은 강시입니다. 강시는 움직이는 폼이나 귀신 같지 않는 모습에 어린 아이들도 상당히 좋아했습니다. 어린시절 저도 그 강시처럼 교실 바닥을 쿵쿵쿵 뛰어 다니다가 넘어졌는데 교실 마루바닥에 튀어나온 못에 무릎이 10Cm넘게 찢어졌습니다. 피가 좀 나다가 그치길래 덜렁덜렁한 피부를 그냥 덮어놓고 하루를 보냈습니다.
어릴 때 큰누나와 제가 외부적인 고통에 민감하지 않아서 버티는 곰, 둔한 곰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병원을 가니 좀 오래 방치되어서 빨리 조직이 붙으려면 마취를 안하는 것이 좋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초등학생인 저한테는 의사를 묻지 않고 아버지의 의사에 따라 그냥 상처를 꿰매기로 했습니다. 아버지와 의사선생님이 이야기를 끝낸 후 갑자기 아버지가 평소에 하지 않는 모습으로 저를 너무 꽉 껴안아 주시는 겁니다. 그냥 아버지가 안아주시니 좋았는데, 껴안고 풀어주지를 않더군요. 사랑이 과하다 생각하는 순간 무릎에서 오는 단발의 고통이 척추를 지나 뇌를 찌르는 것입니다. 울려는 나의 의지도 뇌의 신호도 보내지 않았는데, 몸이 자동반사로 눈물을 내보낼 정도로 아팠습니다. 그렇게 6-7번 정도의 들어가고 나가는 무언가에 의해 고통의 극한을 경험하고 난 후에 저는 제 살을 꿰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프더군요. 진통제, 마취제가 없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취제를 하지않고 꿰매고 나니까 진통제가 필요없었습니다. 그 고통의 끝짜락에서는 끝났다는 기쁨에 더 이상 아프지 않았습니다.
항상 고통은 그런 것 같습니다. 조금 더 큰 고통이 지나가면 그 앞으로 죽을 것만 같았던 고통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그러듭니다. 고통을 이기는 것은 고통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에서 튀어나오는 아픔의 순간을 이기면 그 시간에 터져 나오는 진통을 참으면 고통은 더이상 고통이 아니라 아팠던 과거가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고통라는 것을 참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다양한 세상의 진통제(술, 마약 등)를 사용합니다. 물론 너무 심각한 고통은 그것을 사용해야 겠지만 그 진통제에 익숙해 지지는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진통제는 중독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견디며 이는 것에 익해 져야 합다. 진통제는 중독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지만 고통을 넘어서는 인내는 중독되면 될수록 우리 인생이 더 견고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