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디자인의 시대’입니다. 동일한 기능을 가진 제품들이라도 어떠한 모양, 색감, 재질로 만드느냐에 따라 그 제품들의 가치는 매우 달라지게 됩니다.
동일한 공간이라도 인테리어의 설계에 따라 공간의 활용도와 느낌이 달라지고, 동일한 매장이라도 제품을 진열하고 배치하는 방식에 따라 매출이 달라지고, 동일한 의복과 액세서리라도, 코디하는 방식에 따라 그것들을 착용한 사람의 인상이 확연히 달라집니다.
그래서 현대 기업들은 ‘디자인 사고(thinking)’, ‘디자인 경영’, ‘디자인 심리학’, ‘디자인 혁신’ 같은 개념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디자인의 개념은 공간이나 제품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를 디자인하기 위하여 명품으로 치장도 하고, 성형수술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과 자격을 디자인하기 위하여 각종 스펙을 쌓습니다.
비록 외모 가꾸기와 스펙 쌓기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여도, 인간의 ‘겉포장’, 즉 ‘대외적인 이미지’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디자인의 활용에는 중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러한 디자인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단지 이미지일 뿐, 실제 내용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각 사람의 겉포장이 그 사람의 진정한 실체를 다 보여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겉포장과 디자인을 즐기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그들은 신앙이 보여주는 것에 그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마가복음 12:43).
과부는 석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모습과는 달랐습니다. 너무 부족하고 작은 것을 드린다는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드렸을지 모르는 이 여인의 헌금을 '모든'이라는 대상보다 많이 넣었다고 예수님은 정하십니다.
여기서 평가 기준은 양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강조되는 것은 ‘모든’과 ‘전부’입니다.
이것은 앞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마가복음 12:30)
사랑하라고 하신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즉 이 과부는 ‘불순물이 전혀 없는 순도 100%’의 신앙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이 과부는 억지로 포장하지 않아도 그 진실한 마음 때문에 반짝는 신앙이 보이는 것입니다.
신앙은 디자인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예수님 앞에서 얼마나 마음을 다하는지가 중요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들어가면 어떤 디자인보다 멋진 신앙의 모습이 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