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단상] 대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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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무더운 하루하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휴가 기간동안 대만 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평소 일본,중국 관광객들로 붐비던 모습과 달리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습니다.
8.1일부터 중국정부는 중국인의 대만 개인여행을 전면 중단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한 여파 때문인지 주요 관광지에 보여야 할 중국사람들의 모습이 뜸해 보였습니다.
내년 1월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개입하려는 의도라는 해석과 최근 홍콩의 반중 시위에 대만 정치권이 찬성한데 대한 징벌적 성격이라는 해석을 언론에서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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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국립 고궁박물관의 모습입니다.
국민당 장제스 정부가 50만의 병력을 이끌고 대만으로 탈출할 당시 국보급 문화재 16% 이상을 가지고 나왔다고 합니다.
중국 송,원,명,청 시대의 주요 국보급 문화재들을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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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명저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역사에 기록된 객관적인 사실도 모두 한 역사를 살아왔던 동시대인의 무의식과 의식을 대변하는 끊임없는 대화의 기록물로 남겨진 것들일 것입니다.
중국대륙의 오랜 세월의 역사의 주인공이자 계승자로 자처하는 그들은 근현대사로 넘어오며 커다란 이데올로기 투쟁(전쟁)에 의해 갈등과 분열을 겪으며 외교,정치,경제사 측면에서 대륙의 작은 섬(변방)으로 밀려나 있는 듯 보입니다.
그들이 기억하고 남기고자 하는 역사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역사는 또한 하나의 민족 하나의 장소에만 국한하여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듯 합니다.
20세기에 들어와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치며 생겨났던 수많은 이데올로기와 내전, 민족/국가간의 갈등은 동 시대 혹은 후대를 살아가는 모든 민족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중국 내부에서는 1915년 1차 국민당과 공산당간의 국공합작 이래, 1937년 중일전쟁 발발로 인한 2차 국공합작으로 외세 일본의 침략에 공동 대응하게 됩니다.
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고, 중국 대륙은 본격적인 국민당과 공산당의 분열로 국공내전에 돌입하게 되고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군이 50만명의 잔병을 이끌고 타이완으로 넘어감으로써 1,2차에 걸친 국공내전은 끝이 나게 됩니다.
주목하여야 할 점은, 이러한 한 민족 한 대륙 내부에서 일어난 이데올로기간 전쟁이 우리 한반도의 운명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 점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 질서를 재편하며 평화체계를 구축하는데 기여하여야 할 4대 강국(미,영,중,소)중의 하나인 중화민국이 내전의 발발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함으로써, 특히 동북아 질서에는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을 다시는 전쟁을 수행하지 못할 농경 국가로 전락시킬 계획이었던 미국은, 중국 내부의 국공내전의 결과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이 열세를 보임에 따라 일본을 다시 동북아시아 전력의 핵심 축으로 상정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500만에 가까웠던 장제스 군대가 150만이 채 되지 않았던(물론 소련의 강력한 지원을 받은) 공산당군에 처참히 유린당했던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2차에 걸친 국공내전의 결과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르게 전개 되었다면, 오늘날 우리 한반도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또한, 역사의 문외한이므로 중국,대만과 관련있는 우리가 알수 있는 역사를 이정도 되살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오늘 겪고 있는 일본의 비이성적 광분과 도발은 근현대사의 아이러니한 이데올로기의 결과물로서 잉태 되었으며, 그 속성(강대국들의 첨예한 이권이 개입되어 있음)상 우리에게 늘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더위에 건강 챙기시고, 편안한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