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오늘로부터 47년 전인 1971년 8월 23일
'684 부대원'들, 무인도 탈출해 청와대로 향하던 중 서울 시내서 총격전 벌여
횟수로 벌써 4년째. 갈매기 울음소리만이 정적을 깨는 인천의 한 무인도에서 특수부대원들의 혹독한 훈련이 이어졌다. 이들의 훈련 목적은 단 한 가지, ‘북한 김일성 거처 습격’이었다. 대북 침투 공작을 위한 이 특수부대는 1968년 4월에 창설되었다는 점에서 ‘684부대’로 이름 붙여졌다.
23 일 실미도 탈출 군 특수범들 난동
공포에 질린 백주의 서울
오늘로부터 47년 전인 1971년 8월23일, 24명의 ‘684부대원’들은 수류탄과 칼빈 소총 등으로 무장한 뒤 시내버스를 탈취, 평양 주석궁이 아니라 서울 청와대로 향한다. 이들의 탈출로 전 군·경에 비상계엄령이 발동됐다. 한강 다리는 통제되고, 공항까지 폐쇄됐다. 겁에 질린 시민들로 서울시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인천을 거쳐 서울 시내로 진입한 특수부대원들은 서울 영등포 일대에서 긴급 출동한 군·경과 총격전을 벌였다. 교전 끝에 14명은 자폭하고 4명이 피살, 6명은 부상을 입었다. 아울러 민간인 6명과 경찰관 2명도 추가로 희생됐다. 이후 부상을 입은 특수부대원 6명 가운데 2명은 치료 중 사망하고 남은 4명은 모두 사형에 처해졌다.
자료 사진." class="thumb_g_article" dmcf-mid="gMtdZ9Lbkk"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 width="430" style="border: 0px none; display: block; max-width: 100%; height: auto; margin: 0px;">이미지 크게 보기
1971년 8월 인천 앞바다 실미도에서 특수훈련을 받던 군인들이 집단탈출해 버스를 뺏어타고 옛 경인가도를 따라 서울진입을 시도하다 자폭한 ‘실미도 탈출 사건’이 발생했다. 긴급출동한 군·경이 저지선이었던 서울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멈춘 버스 주변을 통제하고 있다.
이른바 ‘실미도 탈출 사건’으로 불리는 이 일로 인해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세기 동안 사건의 진상은 비밀에 부쳐져 왔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수사와 재판, 형 집행 과정에서 위법 행위를 저질렀고, 사형 집행 이후에도 주검 미인도 등의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 과연 684 부대원들은 누구이며, 684 부대를 둘러싸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수다” 실미도 684 특수부대의 탄생
684 특수부대가 창설되기 3개월 전인 1968년 1월21일,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로 침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총 31명 중 투항한 김신조 단 한 사람만 살아남고, 도주한 2명을 제외한 나머지 28명은 모두 사살됐다. 이튿날 생중계로 진행한 ‘무장간첩 사살 및 북한의 만행’을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김신조에게 침투 목적을 묻자 김신조는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수다”라고 밝혀 온 국민을 놀라게 했다.
이른바 ‘김신조 사건’을 계기로 박정희 정부는 북한에 보복할 목적으로 684 특수부대를 창설한다. 무장공비 수와 같은 31명의 민간인을 모집해 ‘김일성 거처 습격’ 등의 임무를 부여했다.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현 국가정보원)은 1984년 육성 회고록인 ‘혁명과 우상’에서 “684 부대는 박정희의 재가를 받아 내가 만들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2005년 국방부의 ‘실미도 진상 조사 TF’를 통해서 684 부대는 중앙정보부가 창설했고, 공군이 관리했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국가정보원의 ‘특수공작지시’ 1968.3.7.중해아450호, ‘특수공작 기본계획서’ 1968.3.28.) 이런 사실은 당시 684 부대의 창설부터 관리까지 정부가 주도했음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6개월만 참으면 호강시켜 준다”
중앙정보부는 684 특수부대원 모집 당시 북파 공작 임무의 위험성과 공작원 신분 등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모집 조건으로 제시했던 양질의 급식과 장교 후보생 수준의 보수는 초기 3개월만 지켜졌다. 이후 부대원들은 보수를 전혀 지급받지 못한 것은 물론, 형편없는 급식에 서신 왕래와 휴가, 외출, 외박 등 기본권이 모조리 박탈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된 훈련을 견디지 못한 이탈자가 살해당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첫 번째 사망은 훈련 시작 3개월여 뒤인 1968년 7월 발생했다. 이부웅씨와 신현준씨는 당시 부대 지도부 지시에 의해 몽둥이를 동원한 동료들의 구타로 살해됐다
47년전 오늘 이런 일이 생겼네요.
태풍 조심들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