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월드컵을 개최했던 브라질은 대회
마지막 날 우루과이와의 경기를 비기기만 해도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고
당시 전력상 브라질의 우위가 예상되었다.
새로 지은 수용 인원 20만명의 마라카낭 경기장을
가득 메웠던 관중들은 말 할 것도 없고 집에서 TV와
라디오를 통해 중계 방송을 접했던 브라질의 모든
국민들은 그 경기에 집중했다. 브라질이 첫 월드컵
우승을 차지할 것이라 믿으면서...
전반전 스코어 0대 0.
그리고 후반전이 시작되자 브라질이
곧 선제골을 넣었다. 1대 0.
이제 브라질은 후반전 남은 시간동안 2골을 연속
해서 우루과이에게 허용하지만 않아도 처음으로
월드컵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브라질 홈 관중들의 일방적 응원속에서도 매서운
반격을 펼친 우루과이는 동점골을 넣었고 경기
종료 10분 정도를 남긴 상황서 기어이 역전골까지
터뜨리고야 만다.
브라질은 우루과이 문전을 향해 무수한 슈팅을
날렸지만 더 이상의 골은 들어가지 않아 결국
1대 2로 우루과이에게 통한의 역전패.
리오는 브라질의 역전패를 비관하며 자살하는
사람들로 인해 죽음의 거리로 변했고, 펠레의
아버지는 중계가 끝난 후 사나이의 눈물을
비오듯 흘리신다.
그 날 밤, 아직 얼굴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으셨던
아버지를 찾아간 펠레의 말.
"아버지. (축구 선수가 되어서) 브라질을 위해
월드컵에서 꼭 우승할게요."
펠레의 아버지께서는 현역 시절 한 경기에서
헤딩으로만 무려 5골을 넣는 진기록을
보유하시기도 한 빼어난 축구 선수
출신이셨다.
하지만 어느 날 중요한 경기에서 자신 없는
플레이를 펼치던 끝에 상대 선수와 충돌하며
무릎을 크게 다치면서 선수 생명이 끝나 버리고
말았는데 공부 대신 선택했던 축구 선수의 길이
한 순간에 막혀 버리자 취직조차 불가해져
병원에서 환자들의 배설물들을 하루 종일
치우는 세상에서 가장 기피하고 싶을 직업을
가진 채 하루 하루를 살아가시게 된다. 펠레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이런 아버지의 인생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 온
어머니이셨기에 아들이 축구 선수가 되는 건
당연히 반대 입장이셨지만... 천부적인 축구
재능을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았던 피는
못 속이는 법...
학교가 끝나면 병원에서 아버지를 도와 같이
화장실 청소를 하던 펠레가 쉬는 시간마다
야자 열매 등으로 아버지와 함께 축구 연습을
하며 너무나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게 되니
저 재능을 썩히기가 너무 아깝겠단 생각이
어머니 마음속에 어느 순간부터 들기 시작한다.
예전에 유소년 마을 축구 대회 때 돈이 없어서
유니폼과 축구화 하나 준비하지 못했던 또래
친구들과 한 팀을 이뤄 건장한 체격의 형님들
팀과 대등한 시합을 벌인 끝에 준우승하던 당시
천재적인 펠레의 재능을 지켜봤던 브라질 최고
명문 산투스 클럽의 스카우터는 그 날 경기
종료 후 자신의 명함을 펠레 아버지에게 전했고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와 상의끝에 15세가 된
아들을 산투스 클럽에 보내는 결정을 내린다.
처음엔 산투스 감독이 창의적인 플레이를
보이던 펠레 스타일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으나 결국 브라질이 월드컵 우승을
하기 위해선 틀에 박힌 플레이가 아닌
브라질 고유의 공차기를 즐기는 독창적
재주들이 자유롭게 경기장에서 발휘되어야
한다는 것이 운명을 뒤바꿀 발상의 전환으로
곧 다가오게 되었다.
17세 나이에 최연소 브라질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 출전하게
되는 펠레.
조별 예선 처음 두 경기에선 벤치를 지켰으나
주전들의 부상이 잇따르자 마침내 펠레는
소련과의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부터
첫 출전을 하게 된다.
누구도 브라질의 우승을 예상하지 않았던
1958년 스웨덴 월드컵.
이 축구의 황제는 웨일스와의 8강전에서
결승골로 1대 0 승리를 이끌며 월드컵
본선 첫 골을 의미있게 장식한다. 역대
월드컵 최연소 득점 기록이기도 했다.
프랑스와의 준결승에서 천재의 모습은
본격적으로 보여졌다. 득점 기계 퐁텐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브라질이었지만 이 경기서
펠레는 프랑스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한 것이다. 5대 2로 브라질의 엄청난
역전승.
이제 결승에서 만나게 된 상대는 홈팀
스웨덴.
사람들은 여전히 홈팀 스웨덴의 우승
가능성을 브라질보다 훨씬 더 높게
예상했다.
그리고 선제골도 스웨덴이 넣었다.
하지만 펠레를 주축으로 한 브라질의
그림같은 축구가 그 이후부터 시작 되었다.
동점골... 2대 1을 만드는 역전골...
지금도 축구 사상 가장 멋진 골로 기억되는
펠레의 그림같은 묘기 발리 킥이 성공...
3대 1... 펠레는 17세 나이에 월드컵 결승에서
골을 넣은 기록을 세운다. 경기 종료 직전
또 한 번의 헤딩골로 결승전 2골을 넣으며
5대 2 승리를 이끈 펠레. 그의 조국 브라질은
감격의 월드컵 첫 우승을 차지한다.
"1958년 6월 29일은 브라질이 월드컵에서
처음 우승한 날이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한참 후에 눈을
떠보고 모든 게 꿈이 아닌가 싶었다. 집을
떠난지 겨우 18개월째였지만 몇 년은 된 것
같았다. 부모님이 마중을 나오셨고 내가
8년 전에 했던 약속을 아버지께서 상기시켜
주셨다. 1958년은 절대 잊지 못할 거다.
나는 펠레가 됐고 징가는 아름다운 축구란
별명을 얻었으며 브라질 전 국민이 축구를
보러 몰려들었다. 우리를 아름답게 만든 건
우리의 다양성에 있었다."
1961년, 브라질 대통령 자니우 콰드루스는
펠레를 브라질의 국보로 지정했다.
월드컵 최연소 득점과 우승을 경험한 17세
펠레의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펠레와 브라질 대표팀은 1962년과 1970년에도
월드컵에서 우승한다. 월드컵에서 세 번
우승한 건 펠레뿐이며 선수 생활을 마칠
때까지 통산 최다인 1,283골을 기록했다.
펠레가 유일하게 못 깬 기록은 한 경기 헤딩
다섯 골인데 그 기록은 아버지인 돈지뉴가
보유하고 있다.
국제 올림픽 위원회도 펠레를 '세기의 선수'로
선정했다.
1958 월드컵 이후로 브라질의 징가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 스타일이 됐다.
세계 축구사에 전무후무할 월드컵 3회
우승의 선수.
역시 세계 축구사에 불멸의 기록으로 남을
공식 경기 통산 1,283골.
펠레의 아버지는 병원에서 환자들의 대소변을
직접 손으로 들고 치우는 일을 하시다가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의 아버지가
되셨다.
그리고 아무 것도 없던 어느 가난한 집안의
왜소한 체격을 가졌던 소년은 축구인들
기억속에 언제나 첫 손으로 거론되는
올타임 베스트 플레이어가 되면서 조국을
월드컵 역대 최다 우승국이자 축구하면
브라질이란 인식을 심어준 채 그라운드를
떠났다.
비록 2002년 이후 월드컵에서 더 이상의
우승을 차지하진 못하고 있지만 브라질의
축구는 언제나 재미있고 독창적인 그들
발재간에서 나오는 묘기들이 다른 나라
선수들 시합 땐 볼 수 없는 차별성을
전한다.
지네딘 지단이 뛰던 당시 프랑스가 '아트
사커'를 한다고들 말했지만 진정한 원조
'아트 사커'이자 축구를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킨 나라는 브라질이다.
그리고 그런 축구는 바로 펠레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내가 브라질 사람이 아니고 브라질에
숨겨둔 여자 또한 없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월드컵 때마다 마치 브라질
국민처럼 카나리아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 응원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펠레.
그는 진정 불세출의 영웅이었고 앞으로도
그런 선수는 다시는 나오지 못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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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리토 유저 왈 : 「다운보팅 없이도 우리는 잘 해낼수 있습니다. 여러분 」 에 대한 갠적인 느낌
동의하는 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점도 있는데 여러분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