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성 영화을 보았어요. 영화을 보고나니 양만춘이란장군에 알고싶어서 알아보았네요.
양만춘은 642년(영류왕 25)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켰을 때 연개소문에게 복종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성주의 직책을 유지하였다. 이는 그가 용기와 소신 있는 인물이었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645년(보장왕 4)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하여 개모성, 요동성, 백암성을 함락시키고, 안시성 공격을 시도하였다. 이 때 고구려는 당 군대에 포위된 안시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고연수·고혜진 장수에게 15만의 원군을 주었으나 대패하고 말았다.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한 안시성은 성주 양만춘을 비롯하여 병사와 주민들이 하나로 뭉쳐 완강히 저항하였다. 당 군대가 60일간에 걸쳐 연인원 50만 명을 동원하여 안시성 동남쪽에 높은 흙산을 쌓아 이를 발판으로 성안을 공격해 오자, 안시성에서는 성 위에 목책을 쌓아 대응하였고 하루에도 6~7회 교전하는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양만춘은 결사대까지 편성하여 당의 흙산 공격, 정상을 점령하고 3일 동안 계속된 당 군대의 총공세를 물리쳤다. 당 군대는 흙산을 고구려군에게 빼앗긴데다 추위가 닥쳐오고 식량마저 떨어지자 철군하였다. 이때 양만춘이 성루에 올라 당 군대에게 송별의 예를 갖추자 당 태종이 비단 100필을 주면서 성의 방어를 하례하고 그의 충절을 격려하였다.
고구려 멸망 뒤 당에 반대하여 끝까지 저항한 11개 성 가운데 안시성이 포함된 것을 생각할 때 양만춘의 생사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기백과 용기가 고구려 부흥운동으로 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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