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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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이란 무엇인가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 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 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요 5:22 ~23상)

  1. 시작하는 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만물을 창조 하시고 세상 끝 날에 반드시 ‘심판’하실 것을 언 약하셨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를 창조로 시작하시고 ‘심판’으로 끝을 맺으실 것을 언약하신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가르치기도 하고 믿기도 한다. 이에 미숙한 지도자들은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내세워 교회를 위해 죽도록 충성할 것을 강요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결과 기독교 신자들 중에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외침과 내란에 의해 생활이 극도로 피폐해지고 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져있었다. 이 무렵 북한에서 남한으로 피난 내려온 성도들에 의해 많은 교회가 여기저기 세워졌다. 그런데 성도들은 외침과 내란에 의한 전쟁의 아픔을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임한 것으로 생각했다. 특히 교회지도층들 가운데 소위 부흥사들은 온 백성이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을 단행하신 것이라고 외쳤다. 그러면서 온 백성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야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면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나타나는 어두운 사회상들을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시켜 설명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영향력이 있는 교회 지도자들은 온 백성이 회개해야 ‘심판’을 면하고 복을 받을 수 있다면서 민족복음화운동을 앞다투어 펼쳐나갔다.

8.15 해방 직후 북한은 교회가 매우 왕성한 상태였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에 의해 모진 박해를 받게 되었다. 결국 교회를 박해한 북한은 가난과 질병에 허덕이게 되었다. 그리고 피난 내려온 신자들에 의해 교회가 왕성하게 된 남한은 잘 먹고 잘 사는 부자가 되었다. 정말 북한은 ‘심판’을 받아 저주 아래 놓이고, 남한은 축복을 받아 부자가 된 것일까. 그렇다면 왕성했던 북한교회가 무신론자들에 의해 박해를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부자가 된 남한교회들이 점점 침체의 늪으로 치닫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왕성했던 북한교회에도, 풍요로운 남한교회에도,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임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교회가 왕성하는 것이나 재물이 풍요로운 것이 복이 아니라 ‘심판’의 원인이 된다는 말인가. 여기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심판’이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2, 심판의 어의

일반적으로 ‘심판’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심판’이라는 말의 의미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느껴진다. 곧 운동경기장에도 ‘심판’이 있고, 정치적 통치행위에도 ‘심판’이 있다. 그리고 종교적인 교리 에도 ‘심판’이라는 말이 있다. 이와 같은 상황들 에 따라 ‘심판’이라는 의미가 각각 다르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심판’이라는 말이 운동경기에서는 경쟁을 통해 승리에 대한 기대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정치적 통치상황에서는 억울함에 대한 복수심을 느끼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종교적 상황에서는 신의 무서운 진노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종교적으로는 ‘심판’이라는 말이 인간의 양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종교 는 대부분 선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심판’이라는 말은 인간의 종교심에 의해 선한 양심을 자극해서 선을 추구하도록 촉구한다. 대부분의 종교가 악행에 대한 ‘심판’을 언급함으로 인간들로 선한 양심을 가지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인간사회 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행이 인간의 악행에 대한 ‘심판’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악한 행동을 하는 자에게는 하늘에서 벌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흉악한 자들이 형통하게 잘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잔인무도한 집단이나 국가들이 번영을 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심판’에 대해 불신하는 경향뿐 아니라 종교자체를 거부하는 경향마저 보이는 부류도 있다.

특히 기독교는 하나님의 ‘심판’을 교리적으로 아주 중요하게 취급한다. 모든 인간은 누구나 하 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자신의 행위를 직고하고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그 판결의 결과는 악인은 지옥으로 향하고, 의인은 천국으로 향한다고 가르친다. 그로 인해 신자 들은 누구나 심판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며 섬기게 된다. 혹시 지옥으로 떨어질까 염려 하는 나머지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에서 벗어나 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결과 심하게는 양심의 억압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받아 정신 분열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심판’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 그 언어의 의미부터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성경적으로 ‘심판’이라는 말은 구약에서 히브리어로 ‘미쉬파트(fP;v ])’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는 ‘재판하다’, ‘다스리다’라는 동사 ‘샤파트 (fp;v )’에서 유래한 것으로써, ‘판결’ 또는 ‘재판’, ‘계획’ 등의 뜻을 지닌다. 그리고 ‘세포트(f/ p])’ 라는 단어도 사용하는데, 이 역시 ‘샤파트(fp;v;)’ 에서 유래한 것으로, ‘심판’ 또는 ‘심판행위’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신약에서는 헬라어로 ‘크리시스(krivsi" )’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분리’ 또는 ‘선택’, ‘판결’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결국 성경에서 원어로 ‘심판’이라는 말의 어의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곧 하나님의‘심판’은 피조물에 대한 총체적인 하나님의 ‘통치행위’를 일컫는 것으로 이해된다.

  1. 심판의 정의

「심판」이라는 말의 정의는 단순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그것은 다양한 측면에서 각각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심판」이라는 말이 운동경기장에서나 사법기관인 법정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종교적으로는 대부분의 종교가 신적인「심판」에 대해 교리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운동경기장에서는 우열이나 승패 또는 반칙행위 등을 판정하는 행위를「심판」이라고 한다. 사법기관인 법정에서는 사건을 심리하여 판결하는 행위를「심판」이라고 한다. 그리고 종교적으로는 인간의 악행에 대한 신적인 진노를「심판」이라고 가르친다.(국어대사전 참고) 이와 같은「심판」의 정의 가운데 종교적인 것은 일반대중에게 크게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은「심판」에 대한 이론과 실제가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누구나 범죄를 하면 신의 심판을 받아 망하게 된다는 말이 사실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독교 역시「심판」에 대한 교리가 실제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견해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심하게는 하나님의「심판」을 노골적으로 부정하는 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상식적으로도 마땅히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심판」을 받아야 할 개인이나 집단 또는 국가들이 도리어 형통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곧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무고한 많은 사람을 무참하게 죽인 범인이 버젓이 얼굴을 들고 당당히 권좌에 앉아 살아가는 세태 말이다. 가장 비극적인 전쟁을 일으킨 국가들이 경제대국의 반열에 오르는 아이러니 말이다. 이런 경우를 눈앞에 보고 사는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심판」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겠는가. 이는 누구나 동감할 수 없다는 사실에 열 번도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러한 잘못된 태도는 모두가 성경적인 하나님의「심판」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결과일 뿐이다.

성경은 하나님의「심판」에 대해 분명히 단호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정의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밝혀주고 있다. 이를 정리하면 “창세전에 작정하신 뜻대로 선과 악을 구별하여 처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곧 하나님의「심판」은 인간의 행위여하에 따라 실시되는 것이 아니라, 창세전에 선악 간 작정하신 뜻에 따라 처리하시는 주권적 치리행위라는 것이다. 여기서 ‘선악 간’이라는 말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으시고 싫으심을 일컫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시는 것과 싫어하시는 것을 창세전에 이미 확정해 놓으시고 그에 따라「심판」을 단행하신다. 곧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선과 싫어하시는 악을 구별하시는「치리행위」를 단행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빛과 어둠이 일반이듯이 선과 악이 일반이다. 이는 선악 간 모든 것이 서로가 합력하여 최고선을 이루는 방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작정하신 선과 악을 영원한 궁극적인 최고선을 이루는 방편으로 사용하신다.

  1. 심판의 대상

인간은 누구나 인륜적인 도덕성에 의한 양심의 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종교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누구나 자신의 잘못한 행동에 대한 죄의식에 의해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된다. 더더구나 종교인이라면 양심의 가책은 극대화되어 더욱 심하게 죄의식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인간의 심리적 현상은 종교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무속종교나 대중종교가 어디서나 계속해서 존속되며 번성하게 된다. 그 결과 종교인은 누구나 신의 두려운「심판」을 의식한 나머지 극심한 양심의 억눌림으로 인해 정신적 유약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소위 귀신을 접했다는 정신질환자가 무속인 앞에서 기절하듯 몸부림치는 현상을 흔히 보게 된다, 곧 무속은 물론 대중종교나 기독교의 종교행위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는 인간이 죄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단행하시는「심판」의 대상은 누구일까.

  1. 창세전에 예정된 자

태초에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신묘막측한 뜻을 따라 만사만물을 계획대로 작정해 놓으셨다. 그리고 그 계획을 따라 작정하신 뜻대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만사만물을 섭리하신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기쁘신 뜻을 따라 계획하시고 작정하신 대로 ‘통치행위’를 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창세전에「심판」을 받지 않고 면할 대상과 받지 않을 대상도 이미 작정에 따라 예정해 놓으신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계획’이나 ‘작정’ 또는 ‘예정’이라는 말은 하나님의「심판」곧 ‘통치행위’라는 말과 맥을 같이 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통치행위’는 ‘계획’이나 ‘작정’ 및 ‘예정’을 비롯해 ‘판결’과 ‘분리’ 그리고 ‘선택’ 등의 섭리를 통해 나타내신다. 곧 성경에 나타난「심판」이라는 말에 대한 히브리어나 헬라어가 지닌 의미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1. 구속에서 제외된 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작정하신 뜻에 따라「심판」을 받아야 할 자를 그리스도의 구속에서 제외되도록 섭리하신다. 구약시대에는 주로 이방인들을 제외되도록 섭리하시고,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을 제외되도록 섭리하신다. 그리고 구약시대에 언약하신 말씀대로 그리스도를 구속주로 세상에 보내셔서「심판」을 면할 자들로 그리스도를 믿고 구속을 받도록 섭리하신다. 그러나「심판」을 받아야 할 자들은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게 진리를 깨닫지 못하도록 섭리하신다. 이러한 모든 섭리가 역시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행위’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심판」은 인간의 의지적 노력에 의한 선택여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작정에 따라 예정된 자에게 가해지는 필연적 사건이다.

  1. 심판의 구분

하나님의「심판」은 그 대상에 따라 다양한 시기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단행된다. 특히 현실적인 역사과정에서 이루어지는「심판」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을 뿐만 아니라 매우 복잡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하나님의「심판」에 대해 단순하고 정확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심판」에 대해 원리적으로 단순하게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성경을 종합적으로 자세히 살펴 이해하게 되면 충분히 가능하다. 하나님의「심판」은 그 성질상으로 보아 크게 두 가지로 구분이 된다. 하나는 현세의 육적 심판이고, 또 하나는 내세의 영적 심판이다.

  1. 현세의 육적 심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작정하신「심판」의 결과를 현세에서 육적인 심판을 통해 계시하신다. 그「심판」의 대상은 물론 모든 인류가 아니라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구속에서 제외하기로 창세전에 정하신 작정에 따라 예정된 자들이다. 반면에 죄에서 구속하기로 선택된 자들에게는 진노의「심판」이 아니라 사랑의 징계가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는「심판」의 대상을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심판」하실 것인가에 대해 창세전에 이미 작정해 놓으셨다. 그리고 그 작정하신 대로 현세에서 육적인 심판을 통해 계시하신다. 예를 들면 인류 초기에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의 심판을 비롯해, 노아시대 홍수심판과 모세시대 홍해에서 애급 군대에 대한「심판」등을 들 수 있다. 그 외에도 앗수르제국에 대한「심판」을 비롯해, 바벨론제국과 파사제국 또는 헬라제국 및 로마제국에 대한「심판」등은 물론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게 한 유대인들에 대한 현세의 육적「심판」은 이미 역사적으로 단행되고 있는 것이다.

  1. 내세의 영적 심판

태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최후「심판」을 통해 세상 종말을 맺으신다. 이것이 영원한 ‘내세의 영적 심판’이다. 이는 인간이 육신으로 사는 동안 현세에서 육적 심판을 받은 자들이 궁극적으로 받게 될「심판」이다. 곧 세상 끝 날에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부활을 통해 받게 될 내세의 영원한「심판」을 말한다. 그러므로 ‘내세의 영적 심판’은 세상 종말에 단 한 번 단행된다. 죄에서 구속하기로 선택된 자들은 그리스도의 공로로 이「심판」을 면하고 ‘생명의 부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구속에서 제외된 자들은 저주를 받아 ‘심판의 부활’을 하게 된다. 여기서 ‘생명의 부활’은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영의 상태에서 부활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심판의 부활’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거듭나지 못한 죽은 영의 상태에서 부활하는 것을 말한다. 다만 생명의 부활에 참여한 자들은 영원토록 천국에서 거하게 되고, 심판의 부활에 참여한 자들은 영원토록 지옥에서 거하게 된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영원한 ‘내세의 영적 심판’에 따른 결과이다.

  1. 심판의 특징

여호와 하나님께서 단행하시는「심판」은 인간사회에서 실행되는 일반적인「심판」과 판이하게 다르다. 이는 하나님의「심판」이 일반적인「심판」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의「심판」과 인간의「심판」이 동일한 특징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단행하시는「심판」의 특징은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하나는 ‘절대주권적 섭리’이고, 다른 하나는 ‘언약성취의 결과’이다. 이와 같은 두 특징은 서로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전자가「심판」의 동인라고 한다면, 후자는「심판」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곧 하나님의「심판」은 ‘절대주권적 섭리’에 의해 ‘언약성취의 결과’로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1. 절대주권적 섭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스스로의 절대적인 주권적 섭리에 따라「심판」을 단행하신다. 인간의 어떠한 의지적 노력에 의한 행위여하에 따르거나 역사적 상황에 따라 단행하시지 않으신다는 말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단행하시는「심판」의 근거를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섭리에 따른 예정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의「심판」이 세상 종말에 ‘심판의 부활’을 받아 영원한 멸망을 당하기로 예정된 자들에게 임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하나님의「심판」은 기쁘신 뜻에 따른 절대주권적 섭리이기 때문에「심판」을 면하기로 예정된 자들에게는 한없는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곧 하나님의 진노의「심판」을 면하기로 창세전에 아무런 공로도 없이 선택을 받았다는 놀라운 은혜 말이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하나님께 대한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되는 근본적 이유이다.

  1. 언약성취의 결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만사를 작정하신 대로 섭리하실 것을 언약하시고 그 언약대로 성취해 주신다. 곧 기쁘신 뜻대로 작정하신 근거에 의해 언약하신 대로 성취하신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계획이나 작정 및 예정은 영원한 때에 기쁘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언약과 성취는 창조된 현실세계에서 역사적 실제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택자와 불택자를 예정하시고 그 예정대로 역사적 섭리과정에서 ‘육적 심판’을 단행하기고 역사적 종말에 영원한 ‘영적 심판’을 단행하신다는 말이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단행하시는「심판」의 특징은 ‘언약성취의 결과’라는 사실이 분명하다. 곧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성취의 결과’가 바로「심판」의 특징이라는 말이다.

  1. 심판의 목적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시고 만사만물을 작정하신 뜻을 따라 창조하시고 섭리하신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단행하시는 각종「심판」도 분명한 목적이 가지고 계시다. 어떤 자들은 그 목적이 인간으로 하여금 선행을 도모케 하려는 데 있다고 한다. 그리고 더러는 인간으로 하여금 악행을 자제하게 하려는 데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공정한 사회를 이룩하게 하려는 데 있다고 하는 자들도 있다. 이러한 견해들은 모두가 인간을 중심으로 바라본 것으로서 하나님 중심의 견해가 되지 못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심판」하시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선포 및 영광찬양에 있다. 곧 하나님께서 스스로의 영광을 선포하심으로 피조물로 하여금 그 영광을 찬송케 하시려는 데 있다는 것이다.

  1. 하나님의 영광선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스스로의 모든 영광을 계시하실 목적으로 천지만물을 작정하신 뜻에 따라 창조하셨다. 그리고 만사를 창세전에 작정하신 대로 빈틈없이 섭리하신다. 따라서 피조된 모든 우주만물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영광이 계시되어 충만하게 채워져 있다. 이는 모든 우주만물의 존재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선포에 있다는 사실과 일치를 이루는 대목이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단행하시는 각종「심판」도 역시 하나님의 주권적인 권능의 영광선포에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선포’가 바로 하나님의「심판」에 대한 궁극적인 목적일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방식이기도 하다.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토록 살아서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께서「심판」을 통해 그 권능의 영광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1. 하나님의 영광찬양

여호와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단행하시는「심판」을 통해 스스로의 권능과 자비의 영광을 선포하신다. 이로 인해 ‘심판의 부활’에 참예한 자들은 하나님의「심판」에 의한 권능의 영광을 두려움으로 찬양하게 된다. 그리고 ‘생명의 부활’에 참예한 성도는 하나님의 자비에 의한 은혜의 영광을 즐거움으로 찬양하게 된다. 결국 ‘심판의 부활’이나 ‘생명의 부활’에 참예한 자들은 모두 찬양의 대상이신 하나님에게 있어서 찬양의 상태가 다를 뿐 그 결과는 일반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심판」에 대한 결과적인 목적이며 여호와 하나님이 스스로 섭리하시는 방식이기도 하다. 여호와 하나님은 절대권능을 가지고 계시며 자비가 충만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심판」하시는 섭리에 의해 그 권능과 자비의 영광을 선포하시므로 피조물로 그 영광을 찬양하도록 섭리하는 것이다.

  1. 끝맺는 말

지금까지 허다한 성도가 하나님의「심판」에 대한 오해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즐거움보다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다. 곧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의 감동에 의한 즐거움과 감사보다는「심판」의 두려움에 의한 공포와 억눌림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성경은「심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혀준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낳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사 53:5~6 -

구속해 주시기로 선택받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나님의 무서운「심판」을 면하게 된다. 이 얼마나 놀랍고 큰 은혜인가. 이것이 성도가 여호와 하나님께 영원토록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되는 절대적 근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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