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를 알 리 없지만 나는 그를 익히 알고 좋아하고 그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개는 영화배우들이죠. 특히 헐리우드 키드까지는 안되도 명화극장 키드는 족히 됐고 동네 신도극장에서 2본동시 영화를 장히 섭렵했던 처지로 어릴 적 가슴과 망막에 담았던 ‘갓양남’ ‘갓양녀’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 가운데 어찌 007의 로저 무어를 빼먹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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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본동시의 장점(?)은 애들 보는 심청전 같은 인형극 영화가 007같은 성인물과 함께 상영된다는 데에 있었습니다. 심청전을 보러 간다고 엄마에게 돈을 타긴 하는데 졍작 심청전보다는 007 상영 시간에 들어갸 화려한 액션과 뭣보다 그 미끈하게 빠진 여자들과 본드가 그렇고 그런 장면을 언제 연출하나 눈이 빠지게 기다린 기억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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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신도극장 시절 007은 전부 로저 무어였습니다. <문레이커> <옥토퍼시> <유어 아이즈 온리>가 그의 작품이었습니다. <네버 세이 네버 어겐>에서 숀 코너리를 봤지만 <골드 핑거> 때 반질반질한 숀 코너리를 봐서인지 너무 늙었다는 느낌. 제게 007은 그저 로저 무어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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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운데에서는 <문레이커>를 인상 깊게 본 것 같습니다. 무쇠 이빨 죠스 아저씨와의 혈투, ‘굿 헤드 박사’ 와 나누는 무중력 상태에서의 정사, 그리고 스타워즈도 아닌 것이 애들 장난도 아닌 것이 우주에서 뿌숭쀼숭 전자총을 쏘며 전투를 치르는 장면 등등이 가물가물 기억 선상에 박히지만 역시 성적 호기심이 막 생기기 시작할 때여선지 굿 헤드 박사 장면이 최고였습니다.
함께 보러 간 애들끼리 이런 얘기를 나눈 기억이 삐죽이 대뇌 피질을 뚫고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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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러면 좋은갑지.”라고 누가 말하자 한 명이 이렇게 받았었죠.. “진짜 하는 거 아니다.” 나이 열 살짜리들이 참...... 이렇게 말하면 조숙한 것 같지만...... 전혀 아니었습니다. 나오면서 한놈이 그랬습니다. "저래 뽀뽀하면 아기 생긴다. 그래서 약묵고 저런 거 찍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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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무어의 부음을 들으며 그날의 신도극장의 풍경이 동시에 떠올라왔습니다.. 오징어와 소주 냄새, 발냄새와 땀냄새, 그리고 가끔 발치를 찍찍거리고 지나갔던 쥐 꼬리의 서늘한 느낌. ‘반공’ 방첩‘ 녹색으로 빛나던 야광등. 그리고 옆에서 영화는 안보고 딴짓하던 젊은형과 누나들 . 그리고 그 엉성한 극장 안을 울리던 저음의 목소리 "본드, 제임스 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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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전 프랑스 니스 공항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가던 한 소년이 로저 무어를 알아보죠. 소년은 할아버지를 졸라 사인을 받게 하는데 할아버지는 007이고 뭐고를 모르시는 분이었어요. 할아버지는 로저 무어에게 말합니다. "애 말이 사인을 잘못하셨다는데요. 당신은 로저 무어가 아니라 제임스 본드라고 애가 그러는데......" 그러자 로저 무어는 소년을 불러 주위를 둘러보며 비밀스럽게 말합니다. "그렇게 사인할 수 밖에 없었단다. 블로펠드 (007의 악당 캐릭터)가 알 수도 있기 때문에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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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30년이 흘렀고 소년은 사진 작가가 됐습니다. 유니세프에서 촬영 일을 하던 그는 영화 <007 옥토퍼시> 에 등장한 인도 빈민가에서 깊은 인상을 받아 유니세프 홍보 대사로 활동하던 로저 무어와 마주칩니다. 그는 30년 전 니스 공항에서의 일을 얘기하며 반가워하자 로저 무어는 "제임스 본드를 만났다니 운이 좋았군요." 하면서 웃고 넘어갑니다. 그런데 촬영이 끝나고 헤어질 즈음 복도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 로저 무어는 역시 주위를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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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 공항 일 물론 기억하지. 아까 그런 건 주변에 카메라맨들이 많아서였소. 그 가운데 혹시 블로펠드와 일하는 자가 있을지 누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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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소년의 추억으로부터 세월을 뛰어넘은 감동과 흐뭇함을 전해주는 영국인다운 유머를 발휘했던 로저 무어, 제임스 본드 중의 하나가 작년 5월 23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레이커>에 등장했던 강철 이빨 죠스 아저씨도 3년 전엔가 죽었다는 소문을 들어서 굿헤드 박사는 아직 살아 있을까 궁금했는데 한 페친이 아직은 살아 계심을 알려 줍니다ㅡ 세월은 가고 사람은 떠납니다. 남은 사람들은 떠난 사람들로 하여 뜻밖의 과거 여행을 나서게 되고, 그러면서 또 떠난 사람을 기리겠죠. . 다시 한 번 안녕히 로저 무어 경. 이제 저승에서 또 한 번 죠스 아저씨랑 영화 한 편 찍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