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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동에는 머리가 어지러울 때 들르는 작은 박물관이 있습니다. 최근 영화 의상 관련 기획 전시회를 시작했더군요 . 팀원들이 다들 선약 있다고 나가는 통에 홀로 점심을 때우고 거닐다가 그 포스터를 보고 들어갔습니다. 여러 영화에 등장한 의상들이 설명과 함께 전시돼 있었습니다. "영화 의상은 배우가 극중 인물로 가까워지도록 돕는 최고의 도구다."라는 공효진 배우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허기사 저도 타이즈를 입으면 발레리노가 되지 말란 법은........ 뭐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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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비> <오빠 생각> <박열> <군함도> 등등 인상적인 영화의 주인공들이 차려 입었던 의상들을 훑어 보는 기분도 쏠쏠했지만 '의상'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언젠가 <신기전> 같은 영화에서 명나라 사람을 청나라 사람으로 둔갑시킨 의상을 두고 저게 감독의 무성의인가 의상 담당의 무능인가 고개를 갸웃거렸던 것처럼, 옷 하나로 사람들의 관심을 공중부양시키기도 하고, 지하로 파고들어가게 만들기도 하는 게 영화 의상일 테니까요. <1987> 에서 전경 군복 색깔이 권색이었으면 얼마나 야유가 터져나왔을 것이며 70년대를 그린 드라마에서 나이키가 등장하면 또 얼마나 웃기겠어요.
그런 생각하며 킬킬거리는데 과거 취재중 만난 의상감독 한 사람이 떠오르더군요. 지금은 뭐하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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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청풍명월> 의상감독을 촬영한 적이 있습니다. 그를 따라 남양주에 있는 창고에 들어섰을 때 그 안에는 타임머신을 타고 건너온 듯한 수백 벌의 화려한 갑옷과 투구가 열을 지어 걸려 있었습니다. 국왕 수비대 (영화 청풍명월은 인조반정을 무대로 한 사극이었기에)와 반정군의 갑주가 서로 다른 형태와 색깔로 갈리고, 등장하는 군인들의 소속과 부대 특성까지 갑옷 하나를 통해 확연히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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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개월 동안 이 갑옷들에 매달려 왔다는 의상감독 권유진씨에게 영화의상을 업으로 삼게 된 동기를 물었더니 “가업”이라고 하더군요. 어머니가 수십 년 영화 의상을 제작하신 터라 어려서부터 바늘과 실, 그리고 미싱을 장난감삼아 갖고 놀았고 자연스레 이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는 거죠. 그 어머니는 여든 가까운 나이에도 경기도 양평의 모처에서 영화 의상 일을 계속하고 계시며 그곳에 가면 지금까지 작업했던 의상들이 대부분 남아 있다는 겁니다. 오호...... 그렇다면 PD 입장에선 양평이 아니라 평양이라도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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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유진씨를 채근하여 어머님 댁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어딘가로 출타 중이셔서 문제의 의상 창고를 들여다보는 영광(?)을 먼저 갖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삐거덕거리면서 창고 문을 연 순간 제 얼굴은 바람 빠진 축구공같이 찌그러지고 말았죠. 창고 안 풍경은 질서정연하게 진열된 옷들과 눈에 튀는 볼거리들이 그득한 ‘의상박물관’보다는 ‘동대문 시장 보세품 창고’에 훨씬 더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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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에 젖어 멍하니 서 있는 제게 이유진씨가 요즘 아가씨들이라면 돈을 주고 가져가래도 안가져갈 법한, 지극히 시골스러운 핑크빛 잠옷을 들고 옵니다.
“영화 ‘동감’ 아세요? 거기서 김하늘이 입고 있던 잠옷이에요.”
아, 그 잠옷! 유신 시대 대학생 김하늘이 입었던 70년대풍 나이트가운~ 권유진씨에 따르면 70년대 냄새가 코끝을 타고 흐르는 이 옷을 구하기 위해 동대문 시장 다섯 바퀴를 뺑뺑이 돌았답니다. 그렇게 권유진씨가 옷 하나 하나에 얽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으면서 시골 논밭 옆에 덩그러니 서 있던 ‘동대문시장 보세 창고’는 대한민국에 둘도 없는 영화 의상 보물 창고로 변해 갔습니다.
“이 초등학교 교복은 ‘일그러진 우리들의 영웅’에서 석대가 입은 거고..... ”
“이 고등학교 교복은 영화 ‘친구’에서 쓴 거고.....”
“이 일본군복은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이 슬리퍼 같은 거 뭔지 아세요? ‘하얀전쟁’ 로케 가서 구한 건데.... 월맹군 군화예요. 월맹군들은 이걸 신고 싸웠대요. 아마 이건 대한민국에서 여기밖에 없을 거예요.”
한때 그 옷들은 스크린 속에서 주인공의 시대를 빛내고 관객들의 시선을 스크린 속으로 몰아넣는 훌륭한 극적 도구였습니다. ‘태백산맥’에서 빨치산들이 입었던 너덜너덜한 군복들도, ‘하얀 전쟁’에서 돌격해 오는 월맹군이 신고 있던 슬리퍼 군화도,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 심혜진이 입고 춤추던 하얀 저고리와 검은 치마도, 모두 그의 손을 거친 하나의 작품이요 수집품들이었던 겁니다. 그의 회고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롱테이크’라는 영화 전문 용어를 일반 상식으로 만들었던 한국 영화의 명장면, 영화 ‘서편제’의 진도 아리랑 장면에서 김명곤이 입은 흰색 두루마기의 비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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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그 장면은 다른 데서 찍기로 돼 있었다구요. 그런데 임 감독님이 길을 보더니 야 바로 여기다 내일 찍자 이러시는 거야. 거기가 전라도 무슨 섬이었고, 뭘 만들 천도 없었어요. 할 수 있나요? 이불 홑청 뜯어서 밤새 하얀 두루마기 만들었지.”
이윽고 권유진씨의 어머니 이해윤 여사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사람 알아보는 눈썰미가 가자미 수준인 제게도 그 분은 낯이 익더군요. 그 분은 가히 한국 영화의상계의 대모였습니다. 그리고 여든 가까운 나이에도 미싱을 돌리고 바늘귀에 실을 꿰는 ‘현직’이셨습니다.
“유진아. 갑옷 속 바지는 뭘로 할 거냐? 뭐? 솜바지? 예끼,배우들 땀띠나면 어떡하냐? ”
드르륵 드르륵 미싱 소리도 할머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지우지는 못했습니다. 권유진씨가 스스로 인정했듯 어머니는 어머니라기보다 지엄하기 이를데없는 스승에 가까왔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의상을 산다”는 것조차 못마땅해했지요. “의상을 사 입히는 건 영화의상이 아니야. 내 손으루, 배우 몸에 맞춰서 입혀야 그게 영화의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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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그 푸르름이 시들지 않은 대꼬챙이같은 노익장 이해윤 여사의 사진첩을 들추니 화려하기 이를데없는 은막의 스타들과 명장들이 그득합니다. 원로 영화감독 유현목님을 두고 ‘유현목이 걔가 말이야.... ’라고 말할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그리 흔치 않을 겁니다.
권유진씨가 창고 한 구석에서 먼지 뒤집어 쓰고 있던 상패 하나를 꺼내 왔습니다. 그것은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단이 이해윤 여사에게 수여한 것이었습니다. 87년 강수연이 슬픈 ‘씨받이’역으로 여우주연상을 탔을 때 의상을 담당했던 이해윤 여사의 이름이 굵게 박혀 있더군요. 베니스 영화제에는 의상 부문 타이틀이 없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기억이 안맞다면 정식 ‘의상상’은 아니어도 특별상쯤은 되었겠지요. 그래도 세계 3대 영화제 이름이 찬란하게 박힌 상패인데 창고에 처박아 두었냐고 힐난을 하니까 뜻밖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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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받았다고 달라지는 게 있어? 감독이나 배우들은 상 받으면 좋지. 줏가가 올라가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줏가 올라 뭐에 써? 술값이나 나가지.”
“상 받으면 우린 더 곤란해요. 개런티 올라간다고 안 불러 줘! 하하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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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대 앞에 나란히 앉은 어머니와 아들은 맞장구를 치며 웃었습니다만 그 속에 설핏설핏 비쳐나던 쓸쓸함을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어떤 여배우가 무슨 영화제의 붉은 카펫을 밟았는지, 아무개 감독이 금돼지상을 받는지 은호랑이상을 받는지는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하는 빅뉴스이지만, 한 분야에서 이른바 일가(一家)를 이룬 어머니와 아들은 그 영광의 무대에서 몇 발짝 비껴나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도 이해윤 여사와 그 아들은 행복한 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오래도록 좋아하는 일을 해 올 수 있었으니까요.
아직 이해윤 여사는 생존해 계십니다. 심지어 '현역'이시라네요. 그 아들 권유진씨도 왕성하구요. 우리가 봤던 <광해> <명량> <각시투구꽃의 비밀> <덕혜옹주> 등등이 모두 그 '가문'(?)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분들의 건승과 우리 영화 의상들의 길이길이 보전을 기대해 봅니다.
권유진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