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에서 손자는 간첩, 즉 정보원의 종류를 이렇게 구분하고 있다. 향간(鄕間), 내간(內間), 반간(反間), 사간(死間), 생간(生間) 등 오간(五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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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간은 적국의 주민을 활용하거나 적국의 주민으로 만들어 정보를 캐내는 간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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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고정간첩.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바보 김수현과 그 일당을 상상하면 될 것 같다. 내간은 적국의 관리들을 매수하는 일이다. 삼국 시대 김유신은 조미압이라는 이를 백제 좌평 임자의 하인으로 들여보낸다. 향간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임자까지 포섭한다. “‘나라의 흥망은 미리 알 수 없으니 만약 그대의 나라가 망하면 그대는 우리나라에 의지하고 우리나라가 망하면 내 그대의 나라에 의지하겠소.” 여기에 임자가 응했다. 이로써 임자는 내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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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간은 적의 정보원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또 김유신이다. 648년 도살성 전투에서 승부사 김유신은 이런 명령을 내린다. “오늘은 검문을 하지 마라. 백제에서 간첩이 올 것이다.” 경계가 풀릴 대로 풀린 상황에서 김유신은 응원군이 내일 아침 도착할 것이니 기어코 결판을 내리라 호령하고 다닌다. 백제군의 간첩은 이를 듣고 백제 진영에 전했고 지금 있는 신라군도 감당하기 힘든데 응원군이 온다는 정보가 전해지자 백제군은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김유신은 백제군을 쓸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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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간은 좀 불행한 캐릭터다. 우리 편이지만 일종의 ‘버리는 패’라고나 할까. 거짓 정보를 들고 가서 적들을 믿게 한 뒤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을 말한다. 전쟁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이들이다. 거짓 명령서를 휴대한 채 습격을 받아 죽는 배역들, 그래서 이쪽을 헛갈리게 만드는 배역들, 그들이 사간이다, 사간의 반대 개념이 생간, 즉 단기간 안에 적진이나 적의 영토에 침투하여 비밀을 빼 오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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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년 전에 살았던 손자는 현대적 개념의 스파이에 적용해도 하등 손색이 없는 간첩의 분류를 해 내고 있다. 첩보전은 이 모든 요소들이 망라되고 결합되고 동원되고 뒤섞이며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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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과 적국 사이는 물론 적국과 우방국 사이에서도. 2차대전 이후 가장 첨예하고 살벌하게 대립해 온 나라들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두 나라는 따로 정부를 세우기 이전부터 서로를 집요하게 증오했고 상대방을 무너뜨리기 위해 노력했고 한국전쟁이라는 미증유의 참화를 겪은 뒤에도 상대방을 붕괴시키려는 전방위 시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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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첩보전이 수반되었음은 물론이다. 수많은 첩보원들이 상대방의 내밀한 영역에 들어가기 위해 기를 썼고 다치고 상하고 감옥살이를 하거나 죽기도 했다. 그 가운데 몇 가지 예를 상기해 보자.
한국 현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이름 하나를 들어 보자. 궁정동(宮井洞). 이 이름을 들으면 50대 이상의 한국인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죽음을 당한 곳으로 기억할 것이다. 궁정동에는 중앙정보부가 관리하는 안가(安家)가 있었고 그곳이 10.26의 현장이었다. 그런데 이 궁정동 안가에 또 하나의 걸출한(?) 암살자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건 역사의 아이러니일 것이다. 그 이름은 염동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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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동진.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하고 비슷하다. 몇 년 전 히트를 친 영화 <암살>에서 이정재가 맡았던 역, 독립운동가 출신이지만 고문에 못 이겨 밀정이 된 사람의 이름이 염석진이었다. 염석진은 염동진의 실명을 조금 비튼 것이다. 실제 염동진도 독립운동가였고 일본 경찰에 잡혀 고문을 당한 뒤 밀정 노릇을 했다는 설이 있으나 그가 밀정이었다는 정확한 증거는 현재로서는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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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 임시정부 내무부장이던 신익희는 백의사(白衣社)라는 특수 행동대를 조직했다. 당시 중국의 지배자였던 장개석이 운용한 비밀 첩보 조직 남의사(藍衣社)를 본따서 만든 일종의 정보 기관이자 암살이나 테러 등도 불사하는 조직원을 거느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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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동진(본명은 염응택)은 이 조직의 총책이었으며 해방 이후에도 활동했다. 앞서 말한 궁정동 안가는 바로 이 백의사의 총 본부였다. 2004년 9월 공개된 ‘실리 보고서’ (해방 후 한국 주둔 미군 971 CIC 파견대 소속 조지 E.실리 소령이 김구 암살 후 보고한 ‘김구-암살 관련 배경 정보’)에 따르면 백의사 조직은 ‘남한, 북한, 만주 전역과 중국 전역에 뻗어 있었다. (월간조선 2016년 10월호) 이들의 대담한 활동은 38선을 넘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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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군정 하에서 북한의 지도자로서의 지위를 굳혀 가던 김일성은 1946년 3.1절 기념식에서 수류탄 공격을 받는다. 백의사 조직원 김형집의 소행이었다. 소련군 장교가 화급히 수류탄을 집어들어 던지는 바람에 위기는 모면했지만 김일성으로서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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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사는 김일성 암살에 실패한 이후 최용건과 김책 (북한의 명문대학 김책공대의 그 김책이다) 등 북한 요인들의 집을 차례로 기습하며 북한을 벌집 쑤신 듯 해 놓았다. 김일성의 외삼촌이자 기독교 목사로 ‘조선 그리스도교 련맹’을 만들어 김일성을 도왔던 강양욱 또한 백의사의 표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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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3월 백의사 단원들, 최기성, 김정의, 이희두 등은 강양욱 목사 자택에 들이닥쳤다. 강양욱 목사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그 큰아들과 며느리, 큰딸, 그리고 또 다른 아들 중매차 찾아온 손님들까지 총탄과 수류탄 세례를 받고 죽어갔다. 중상을 입은 큰 딸은 죽어가면서 “나는 아버지 때문에 죽는다.”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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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욱은 목사로서 신을 부정하는 공산주의의 앞잡이가 된 가롯 유다같은 존재였고 북한에서 왕성한 세력을 지녔던 기독교인들의 '공공의 적‘이었다. 백의사의 작전을 도왔던 현지 조직 역시 기독교인들이 그 중심이었다. 강양욱의 딸도 분위기를 읽고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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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사 요원들은 당시 소련군 당국에 의해 고려 호텔에 연금돼 있던 조만식까지 찾아가 북한 탈출 공작을 벌였다고 한다. 그 조직망과 역량을 짐작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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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동진은 무슨 이유에선지 맹인 행세를 했다. 실제로 일제 관동군의 고문을 받아 시력이 약화됐다는 말도 있으나 맹인 행세를 했다고 보는 이들이 더 많다. 검은 맹인 안경을 쓰고 천 리 밖 김일성의 목숨을 노린 스파이 대장.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또 무슨 이유에선지 피난을 거부하고 인민군에 체포됐다 그 최후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왜 피난을 가지 않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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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차원의 정보 조직이 아닌 백의사의 활약이 그 정도였다. 북한도 그 지경을 당하고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북한이 딱히 뭘 하지 않아도 남한은 남로당원들의 지속적인 투쟁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었지만 북한의 김일성은 남로당 계열에 의지하지 않은 독자적인 대남 공작을 조직하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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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도 많고 일제 강점기 내내 견결하게 투쟁해 온 공산주의자 박헌영에게 ‘남조선 해방’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1930년대 이래 김일성의 의형제 (<중국인 이야기> 김명호 교수에 따르면) 였다는 중국 공산당 지도자 주은래가 김일성에게 한 사람을 소개한다. (김일성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다고도 한다) 바로 성시백 (1905~1950)이라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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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서 자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