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 30주년 행사에 와 있습니다..
.대학시절에 올린 포스팅 하나 긁어옵니다
.옛날 글이라 현실과 차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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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관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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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대학교라는 칭호가 붙어 있을 지경으로 교통이 불편하다고 소문난 고려대학교 (2003년 주 :지금은 전철 뚫렸슴다) 까지 어떤 기회로 어떤 환난을 겪으면서든 와 본 사람은, 서울대의 공산당 마크 교문( ㄱ",ㅅ",ㄷ"의 조합)혹자는 국립 서울 대학을 상징한다고 그러더만) 과는 또 다른 감칠맛이 있는 교문 너머로 보이는 우람한 석조 건물인 본관과 그 앞의 인촌동상을 망막 속에 집어 넣어 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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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문화재로까지 지정되어 있는 본관을 바라보며 교문을 들어서면, 그때부터 좌익 우익이 갈린다. 무슨 얘긴고 하니, 교문을 들어서서 왼쪽으로 가면 학생회관, 정경대 문과대 등 학생운동이 비교적 활발한 단과대가 진을 치고 있는 지역이 되고, 오른쪽으로 가면 고시생들이 득시글거리는 법대, '고대 속의 연대'라는 경영대, 여학생이 많아 그런지는 몰라도 어딘가 부드러운 분위기의 사범대, 그리고 면학의 상징인 중앙도서관이 자리잡고 있는 이른바 법경사 지역이 된다는 데서 나온 우스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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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과(문과대)에다 동아리 생활을 했던 내가 우익 지역에 진입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부끄러운 얘기일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중앙도서관에는 그 입구에 나를 위한 강력한 방해 자장이 흐르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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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가기 전 햇수로 3년간 중도관에 들어간 횟수를 헤는 데는 다섯 손가락이면 충분하다 .
(아르바이트 한다고 연습 농뗑이 치는 후배 잡으러 가거나, 철농하러 가거나, 가끔 사대 수업 받다가 급한 나머지 중도관 화장실로 뛰어 들거나)
군대 갔다 와서 정말 갈데가 없어서(!) 중도관이라는 곳을 출입하게 되었고 이제 법정 최고 학년이 된 입장에서 중도관은 또 하나의 생활 공간이 되어 버렸다. 4년 전.. 한 선배가 아주 거드름을 피면서 , "파쇼의 수족이 되기 위해 오늘도 중도관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머리를 싸매고 있을까? " 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떠벌인 바 있는데, 파쇼의 수족이 되기 위해서는 (2003년 주,.. 수족이면 다행이다. 발톱됐다) 결단코 아니지만, 머리는 매일 싸매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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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러다 보니 참으로 재미있는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된다. 요즘 같은 시기에 학생들의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은 아마 중도관일텐데,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참으로 별일이 다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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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좀 학교에 늦게 나온 한 학생이 있었는데 시험 기간 아닌 중에도 9시면 자리가 차는 분위기 속에서 빈 좌석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메뚜기를 작심하고 마땅한 자리에 앉아 열심히 토끼풀을 뜯거나 바퀴벌레를 잡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아주 보드란 손길이 다가와 그 눈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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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게? "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여인의 향기로운 목소리.. 메뚜기 남학생은 얼굴 가득 번지는 미소를 감추지 않으며 "상희지? "하고 자기 애인 목소리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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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희 아니다!"
애교가 철철 넘치는 귀여운 대답이 남자의 귀를 간지럽혔다.
"그럼 미선이냐? " "호호 미선이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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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그 남학생은 한 대여섯명의 여자 이름을 들먹거렸는데 죄다 "호호 아니야!" 하는 대답이었다.
마침내 자신의 예상을 뒤엎는 반가운 인물이리라 생각하고 "그럼 누구지?"하고 다정하게 속삭였다. 그때 이 여학생은 여전히 부드럽게, 그러나 그 자리에서 10미터 떨어져 있던 사람 귀에까지 들리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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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 이 자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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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비백산한 메뚜기는 진짜 농약맞은 메뚜기처럼 얼이 반쯤은 나간 채 여학생을 바라보았고 이 전말을 옆에서 공부하는 체 하면서 은근히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역시 입을 딱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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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여학생은 남자한테 차인 뒤에 정신이 살풋 이상해졌다거나, 태어날때부터 머린 좋은데 좀 사이코라는 둥의 설이 분분한, 아는 사람은 아는 중도관의 명물, 영문과 여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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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중도 5열람실의 내 지정석을 향해 부지런히 계단을 기어오르는데 86학번 선배 (대학원 조교)가 불렀다. "너 잘만났다. 따라와.. 짐 좀 4층까지 날라라." 요즘이야 학번이라는게 똥친 막대기 이상은 아니지만, 하늘같이 받들어 모셨던 86인데. 난 입을 삽십 센티는 내밀고 마지못해 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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낑낑대며 계단을 오르는데, 동기 한 놈을 만났다. 그 자식은 현역 갔다 와서 지금 3학년인데, 내가 짐을 들고 낑낑대는 꼴을 보고는 갑자기 아무 말 않고 턱 받아 드는 게 아닌가. 아니 이 자식이 군대 갔다 와서 사람 되었네! 고맙다고 말을 붙이려는데, 그
자식 입에서 튀어 나오는 시조(?) 한 수가 날 얼어붙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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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 진 저 4학년 짐벗어 나를 주오
나는 3학년 돌인들 무거울까
취직도 못하는 놈이 짐을조차 지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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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과 교수님 연구실 옮길때, 짐 옮기다가 이 시조(?)를 들은 바 있던 나는 즉각적인 반격(?)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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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 남았을제 섬기기란 다하여라
졸업한 후면 애닳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일 그뿐인가 하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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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 정 철 선생이 저작권법 침해라고 무덤에서 들고 일어날 짓을 하면서 나름대로 반격을 했노라 흡족해 하고 있는데, 바로 뒤에 따라오던 89학번 후배 자식이 역습을 해 왔다.
4학년 있는 곳에 2,3학년 가지 마라
취직 못한 4학년 2.3학년 새오나니
일생에 도움 안되는 일 그뿐인가 하노라 ."
캇 이것들이.... 그러나 나도 짬밥을 먹을 만큼은 먹은 학번.. 후배를 손가락질하며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네놈은 졸업하여 무엇이 될꼬하니
중도관 5열람실 메뚜기가 되었다가
동기들 다 출세할제 독야백수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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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중도관의 모든 열람실 문에는 이런 내용의 살벌한 소자보가 붙었다. "지금 중도관에는 좀도둑이라는 이름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문구로 시작되는 이 소자보는 며칠 전에 산 카셋테이프를 도둑맞은 복학생의 분노가 철철 넘쳐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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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발될시, 너는 내 2단 옆차기에 의해 머리와 몸뚱이가 2단 분해 될 줄 알아라.. 참고로 나는 80년대 거리에서 전경 백골단과의 실전 경험이 풍부하며 군대 26개월 동안 특공무술을 마스터한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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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낄 나같은 사람 또 하나 있었네.. 지난 겨울 화장실 갔다 온 사이 걸어놓은 잠바에서 돈 3만원이 증발해 버려 피눈물을 쏟았던 나는 "내 손에 적발될 시, 전신에 신나 맛사지를 한 후 화염방사기를 쏘아 주겠다. 내 주특기는 화염 방사기였다." 라고 썼던 것이다. (2003년 주 : 3만원 가지고 화염방사기라니 에이 쫀쫀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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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게아니라, 중도관 휴게실에서 죽치고 있으면 왕년의 용사들을 죄다 볼 수 있다. 89년도 현장에 들어간다고 하여 거나한 술자리를 가지며 눈물을 교환했던 선배가 갑자기 민법 총칙과 컵라면을 들고 휴게실에 나타났던 경우도 있고 (2003년 주 : 지금 어느 지원 판사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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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를 해 볼까 하고 쭈뼛쭈뼛 스터디 모집 공고를 보고 찾아갔다가 옛날 내가 문선을 뛰었던 부총 후보의 모습을 보고 웬지 어색해서 발길을 돌린 적도 있다. 중도 6열람과 과학 도서관 5층은 과거 운동권 집결지라는 소리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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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바라는 것은 그들의 선택이 숱한 지난 날들의 저항의 몸짓의 좌절에서 비롯한 '어쩔 수 없는 길'은 아니었으면 하는 것이고, 그들의 선택이 꼭 이 사회에서 만개할 수 있는 내용적으로 충실한 것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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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허울좋은 개혁이든 어쨌든 간에, 개혁을 운위하며 그를 추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6.3세대 출신이라고 할때, 과연 지금부터 30년 뒤 6.10세대가 어떤 모습을 하고 기능하고 있을 것인가를 떠올려 보는 것은 한겨울밤의 꿈일 수도 있지만, 가끔은 공상을 즐기는 순진한 어린애 기질이 남아 있는 나는 때로 중도관에서 보이는 여러 사람들의 미래를 나름대로 그려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불러보는 노래, '나이 서른에 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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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무슨 노래를 불러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