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 천리길 굽이굽이 쳐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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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들으면 엥?하고 놀라는 일이지만 대학 시절 노래패에서 놀았다. 알다시피 합창부면 몰라도 노래패는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데가 아니다. (간혹 잘하는 사람들이 있는 정도) 그래도 그 꺽꺽거리는 목청을 모아 공연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기타도 두드리면서 엮었던 젊은 시절은 만져질 듯 생생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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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전철 안에서 30년 전 불렀던 노래들을 흥얼거리며 머리 속에 그 가사들을 두르고 있다. 오늘 학교 민주동우회에서 열리는 행사에서 동아리 OB들이 모여 노래 세 곡 부르는 미니 공연을 했기 때문이다. 나 같은 흑싸리들도 있지만 동아리의 '레전드‘들이 상당수 참여하는지라 합창지도하는 선배가 “대책이 없는데....30년만에 이 정도면 괜찮다.”라고 찡그림 가운데 흐뭇해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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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운데 <천리길>이 있다. 김민기 작사 작곡의 노래. 세상에 재능 있는 사람은 많다. 나보다 잘난 사람들은 너무 많다. 가끔 하늘이 원망스러워지는 것이지. 나는 왜 이 모양인가. 그러나 천재들을 보면 그런 인지상정조차 없어진다. 그저 그분을 이 땅에 내려 주심에 하늘에 감사하게 된다. 김민기 같은 경우는 내게 그런 사람이다.
2학년 마치고 휴학을 하고서 마지막 공연을 할 때에도 이 노래를 불렀다. 몇 달 뒤 방위 받으러 내려가야 할 날짜가 나와 있었다. 그때 가사를 하나 하나 음미하면서 혼자서 감정에 겨워 노래를 내지르다가 합창 지도하던 후배한테 혼났던 기억이 난다. “형 뭐해요?” 사람은 뭐든 자신의 프레임을 통해 모든 걸 받아들이게 마련, 나는 이 노래 가사가 마치 군대에 가는 나를 위한 노래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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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에 아침햇살 구름 뚫고 솟아와
새하얀 접시 꽃잎위로 눈부시게 빛나고
발아래는 구름바다 천리를 뻗었나
산 아래 마을들아 밤새 잘들 잤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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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꿈나무라 불리며 시작한 대학생활, 6월항쟁을 거친 후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거리낌이 없이 자유로운 대학에서, 땅에는 막걸리와 소주가 흐르고 하늘에는 순대와 새우깡이 주렁주렁 열린 주지육림의 세상에서 나름 재미있게 살았다. 아픔도 있고 슬픔도 적잖았겠으나 그 모두를 너끈히 지울 만큼 청춘의 푸르름은 짙었다. 세상이 발 아래로 보일 만큼. 구름이 발 아래로 깔릴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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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군대는 가야 했다. 황금같은 시간의 반납이었고 티 하나 없던 하늘에 몰려들던 먹구름같은 걱정의 덩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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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이 몰려온다 빗방울도 떨어진다. 등 뒤로 흘러내린 물이 속옷까지 적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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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일도 아니고 근심한다고 미뤄질 형편도 아니고보면 바로 그 다음 가사가 흥겨워졌다. 나는 겁쟁이도 아니고 강아지도 아니며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눈이 내리면 두 팔을 벌릴 거였으니까. 그래도 현역도 아닌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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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를 피하랴 천둥인들 무서우랴
겁쟁이 강아지는 이리저리 뛰어 다닌다.“
그리고는 힘차게 내지르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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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천리길 굽이굽이 쳐가자.
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내 땅에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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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28년이 흘렀다. 숫자로 적어놓고 보니 그 수의 무게가 느껴진다. 28년. 오늘 공연을 준비하면서 <천리길>을 다시 불렀다. 28년 전 그 노래를 익혔던 사람들 태반이 거의 완벽하게 가사와 멜로디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만큼 반복했기 때문일까 뇌리에 각인됐기 때문일까. 이미 반백은 흔하고 급작스레 넓어진 이마와 골짜기처럼 패인 주름살이 여기저기서 보이는 사람들이지만 마치 28년 전으로 돌아간 듯 노래하고 어깨를 들썩였다. 그 와중에 나는 내일 모레 군대에 들어갈 아들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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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사이가 좋은 경우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돈독한 경우보다 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해일 수도 있겠다) 아들과 나도 살가운 부자 사이는 아니었다. 나는 아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는 노력에도 게을렀다. 그렇게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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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순탄치 않았던 사춘기를 거치고 대학생이 된 지도 몇 해가 됐지만 아버지로서의 품질(?)이 제고된 기억은 그다지 없다. 그러던 아들이 이제 군대에 간다. 짜증나게 울리던 게임 소리도 이제 당분간 들리지 않을 것이고, 꼭 심야에 출동하면서 기어코 샤워를 하고 드라이까지 하시고 나가셔서 온 집안 식구들 다 깨워놨던 악취미도 일정 기간은 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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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그렇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스산해 온다. 그러면서 아들이 어려서 배밀이에 능해질 무렵,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마치 낮은 포복을 하듯이 사사삭 소리를 내면서 나에게 필사적으로 기어오던, 그래서 눈물이 핑 돌게 만들었던 모습이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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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생명의 책임자구나. 이 아이는 내게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있구나. 어떻게든 이 아이 잘 길러야지 다짐하게 만들었던 까마득한 날의 풍경. 데면데면하게나마 곁에 있던 아이가 일단 시야에서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그 풍경은 더욱 생생해지고 그 이후의 파노라마가 느릿느릿 펼쳐져 눈 앞을 가로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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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도 많고 힘들기도 하겠지만 부디 건강하게 이겨내길. 녀석은 전혀 관심도 없고 배울 의사도 없겠지만 <천리길> 노래를 가르쳐서 함께 불러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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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지 말고 깨어라. 쉬지 말고 흘러라.
새아침이 올 때까지 어두운 이 밤을 지켜라.
가자 천리길 굽이굽이 쳐가자.
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내 땅에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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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먼지 두려워하지 말고 굽이굽이 천리 길 준비하는 발걸음 되길. 요즘 사진 쓰면 초상권 침해라고 뭐라고 할 거 같아서..... 아주 옛날 사진으로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