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6월 24일 남아공 럭비 세계 챔피언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의외로 우리와 인연이 깊다. 우선 남아공은 6.25 참전국이다. 공군을 보냈는데 비행기를 몰고 온 건 아니었고 조종사들을 보냈다. 물론 비행기는 미국이 제공했다. 하지만 사망률은 높았다. 1953년쯤 되면 중국이나 북한측의 공군력도 소련의 도움으로 꽤 성장해서 미군과 맞장을 뜨게 되는데 그 와중에 위험한 임무를 남아공 공군이 꽤 많이 소화한 탓이다. 그리고 프로복서 홍수환이 세계 챔피언이 돼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전설적인 유행어를 남긴 것도 남아공이었다.
전쟁 때나 홍수환이 권투할 때나 남아공의 국기는 동일했을 것이다. 그 국기는 특이했다. 어떤 의미가 있을 삼색기 안에 그려진 세 개의 깃발. 하나는 영국 하나는 네덜란드 하나는 보어인들의 깃발. 이 국기가 말하는 바는 간단하다. 남아공은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네덜란드인의 후예인 보어인들의 나라다.
이 나라에서 흑인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남아공은 세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 동안 철저한 인종 분리와 차별 정책은 펴 온 국가였다. 흑인과 백인이 섹스하는 것은 금지였으므로 경찰이 나무 위에 올라가 당당히 남의 안방을 들여다보는 일도 합법적이던 나라였다.
수십 년 지속되던 인종차별정책도 결국은 종지부를 찍고 인구의 절대 다수인 흑인들의 염원이 실현되는 날이 왔다. 백인 정권이 흑인을 포함하는 보통 선거권을 인정했고 그 결과 넬슨 만델라 대통령, 즉 무장 투쟁을 빌미로 수십년간 독방에 갇혀 있다가 돌아온 무기징역수가 대통령에 오른 것이다. 만델라의 일생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얘기들이 홍수처럼 한국을 휩쓸고 갔으니 더 보탤 것이 없겠지만 하나만 더 올려 놓자면 1995년 6월 24일의 럭비 월드컵 결승전이다.
남아공 럭비팀 경기장면
남아공의 흑인들은 축구(soccer)를 즐겨 한 반면 백인들은 럭비에 열광했다. 남아공 특산 산양의 이름을 딴 녹색의 ‘스프링복’ 유니폼은 흑인들에게는 저주의 대상이었다. 즉 럭비는 가해자의 스포츠였고 수많은 피압박자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스포츠였다. 심지어 흑인에게 정권이 넘어온 후 이 스프링복 유니폼을 갈아치워 버리자는 의견까지 나왔다고 하니 그 감정을 짐작할만하다. 그런데 만델라는 여기에 반대한다. 그는 스프링복 유니폼을 입고 백인 일색의 경기장에 선다.
이 과정을 그린 영화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인빅터스>이다. 만델라 역은 모던 프리먼이 맡는데 나는 이 영화가 제작된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를 떠올렸다. <파워 오브 원>의 착하고 용기있던 흑인이며 <글로리>의 용감한 흑인 하사관, <아마스티드>의 교양있는 흑인 시민이었던 그 말고 만델라를 차지할 사람은 없었을 것 같으니까.
하지만 영화는 실제의 감동에 미치지 못한다. 워낙 감동적인 스토리에 압도됐다고나 할까, 교과서적인 갈등과 해결이 감동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화면은 매우 현실적이다.
뉴질랜드 대표팀. 마오리 족의 전쟁 전 율동(?) - 마오키 하카 - 으로 상대팀 기를 죽인다.
결승전 상대는 뉴질랜드였다. 검은 유니폼을 일어 ‘율 블랙스’라는 별명을 지닌 뉴질랜드 대표팀에는 넬슨 만델라마저 “저 괴물을 어떻게 막나”고 탄식하게 했던 조나 로무라는 선수가 있었다. 2미터 가까운 키에 그만한 덩치, 백미터를 10초 8에 끊는 저 황소와 치타의 장점을 골라지닌 통가 출신의 남태평양 사나이, 후일 신장염으로 평생 휠체어에 앉아 지내야 한다는 경고를 듣고도 재기하여 그라운드에 섰던 럭비의 전설 조나 로무를 내세운 뉴질랜드팀은 어수선한 남아공팀을 상대로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다.
이 경기의 실황이 유튜브에 가끔 뜨므로 검색하여 감상하시기 바란다. 영화를 보는 것보다는 그것이 훨씬 감동적이다. 양쪽 모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으므로 미식축구의 터치다운 같은 ‘트라이’는 없고 킥으로만 점수가 나지만 연장까지 간 혈투였고 남아공은 예상을 넘어 우승을 차지한다.
환호하던 선수들은 펄쩍펄쩍 뛰다가 갑자기 둥글게 모인다. 누군가 기쁨에 넘쳐 빠져나가려 할 기세를 보이자 뒷덜미를 잡아 제지하면서까지 붙들어 세워서는 일제히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시작된 기도. 흑인은 한 명만 있던 백인 일색의 선수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다. 그 기도에는 많은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승리에 대한 기쁨보다는 이 승리를 가져다 준 신에 대한 감사가 더 컸을 것이다. 그들만큼 환호한 사람이 만델라였다.
녹색 스프링복 유니폼을 입고 만델라는 우승컵을 들고 펄쩍 뛰다시피 기뻐했고 그 컵을 럭비팀 주장에게 전달한다. 경기장에는 과거의 오만한 백인들의 국기 아닌 새로 지정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육색 깃발이 온통 나부끼고 있었다. 6만 관중들은 넬슨 넬슨을 부르짖는다. 당연히 그 과중들의 주류는 백인이었다.
물론 그 경기 하나로 흑백의 화합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남아공의 출발이 제시됐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만델라는 그것으로 많은 것을 해 냈다. 흑인들에게 증오의 상징이던 스프링복 유니폼을 입는 순간, 아니 그 전에 백인들의 스포츠인 럭비를 남아공의 힘을 묶는 매개로 사용한 순간.
오늘날의 남아공은 결코 행복한 나라는 아니다. 하지만 만델라 정도의 지도자가 아니라 지금 남아공을 지배하는 흑인 정치인들이 그 나라를 지배했다면 결과는 오히려 더 참혹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최소한 적의와 증오의 대상인 스프링복스 유니폼은 입을 수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사실 내가 정말 부러운 건 만댈라가 아니다. 만델라 같은 인물이 우리에게 있었더라면 어저고 하는 주장에는 자신있게 가운데 손가락을 내민다. 만델라 비슷한 인물은 우리에게 항상 있었다. 오히려 부족한 건 데 클레르크 같은 사람이었다. 인종차별 정책을 고수하던 남아공의 마지막 백인 대통령이자 만델라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부통령으로 내려앉을 수 있었던 사람. 동료 보수층의 격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를 허용하지 않으면 더 큰 파국이 온다는 것을 알고 동료들을 설득했던 사람 말이다. 만델라가 위대할 수 있었던 그가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