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토 최후의 날

sanha8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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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4월 7일 야마토 최후의 날

태평앙 전쟁 말기 일본은 명백한 광기에 휩싸여 있었다. 각처에서 미군을 경악케 했던 ‘반자이(만세) 돌격’은 그 서막에 불과했다. 마치 나를 죽여 달라는 듯 ‘반자이’를 부르짖으면서 십자포화의 화망 속으로 뛰어드는 일본군들의 모습은 형용 그대로 불나방들과 같았다. 일본 본토의 마지막 방어선 오키나와는 그 광기의 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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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오키나와는 오랫동안 유구 (류큐)라고 불리우던 독립 국가였다. 19세기 일본에게 병합되긴 했으나 일본 본토인들은 기본적으로 오키나와 인들을 신뢰하지 않고 있었다. 반면 오키나와 인들은 반세기가 넘게 이어진 '황민화' 교육을 통해서 자신들이 일본인임을 입증하고자 했고, 본토로부터 더 나은 처우를 받을 기회라고 여겨 자발적으로 방어전에 합류했다. 그러나 오키나와의 43만 민간인들에게는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든 '집단 자살'의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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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은 '포로가 되면 남자는 전차에 치여 죽고 여자는 강간당하고 살해당한다'는 얘기를 퍼뜨리면서 '포로가 될 거라면 아예 자결하라'고 오키나와인들을 세뇌시키고 있었던 바, 미군 상륙 후 오키나와에서는 한 폭의 지옥도가 펼쳐졌다. 동굴 속에서 자식들이 어머니를, 부모가 자식을 때려 죽였고 벼랑에서 떨어져 죽고 수류탄을 터뜨려 죽었다. 이런 자포자기같은 광기를 앞세운 오키나와는 쉽게 함락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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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작전상 차질을 빚고 있다고 판단한 일본군 수뇌부는 또 하나의 명백한 광기를 선보인다. 기준 배수량 6만 5천 톤, 길이 314미터, 높이 51미터라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전함 야마토를 출격시켜 '일대 반격'을 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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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할 전함을 반격에 활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왜 광기라고 표현할까. 그것은 1945년 4월 1일 연합함대 참모장 쿠사카 류노스케가 전달한 명령을 들어 보면 안다. “오키나와로 항진하여 미군 함대를 격파한 뒤 섬 앞바다에 좌초하여 해안 포대가 되어 싸우라.”는 것이었다. 미군이 배에 오르면 백병전으로 옥쇄하라는 명령도 곁들여졌다고 한다. 즉 움직이는 배가 아니라 오키나와 앞바다의 붙박이 대포가 되어 장렬히 전사하라는 얘기였다. 항공 지원 따위는 물론 없었고 호위 함대는 동반자살함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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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야마토는 일본 해군이 박박 긁어 모은 마지막 전력을 이끌고 동지나해로 출격한다. 하지만 제공권을 완전히 상실한 상황에서 전함 야마토는 그 엄청난 거포의 사정 거리 밖 미국 항공모함에서 날아온 함재기들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마치 덩치는 컸지만 무기력한 소의 피를 빨아대는 쇠파리들처럼, 미국 함재기들은 야마토에게 연속부절의 공격을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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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이전까지 바다를 지배했던 것은 야마토와 같은 대형 전함이었다. 보다 먼 사정거리에서 보다 강력한 포탄을 퍼부을 수 있는 거함과 거포 제작을 위해 세계 각국은 사활을 걸고 경쟁을 벌여 왔었다. 이 집착의 벽에 구멍을 낸 것은 다름 아닌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이었다. 항공모함에서 날려 보낸 함재기가 수만 톤 거함의 수십 인치 거포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상대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음을 실증해 보인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골 넣었는지도 모르는 축구 선수처럼 일본은 여전히 전함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했다. 그 환상의 절정이 세계 최대의 전함 야마토였고 그 결말은 전투 시작 다섯 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일어난, 높이 6킬로미터나 되는 버섯 구름을 일으킨 대폭발이었다. 야마토의 탄약고가 폭발한 것이다.

제대로 된 전과라고는 한 번도 올린 적 없는 전함 야마토, 하지만 광기어린 명령에 내몰려 죽을 바다로 나아가야 했고 수천 명의 영혼을 빨아들인 야마토에 일본인들이 보여 주는 애정은 의외로 대단했다. 애니메이션 감독 마쓰모토 레이지가 외계인에 맞서 싸우는 우주선에 붙인 이름이 ‘야마토’였던 것은 그 서막일 뿐이었다. 야마토 침몰선에서 유물을 건져 내는 작업이 꾸준히 벌어졌는가 하면 2009년에는 '전쟁의 참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야마토를 인양하자는 모금 운동까지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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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이르면 대관절 일본인들이 정녕 널리 알리고 기억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의심이 들게 마련이다. 정녕 광기에 휩싸인 군 지휘부 때문에 죽어간 사람들을 추모하며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기억을 가다듬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너 나가서 죽으라는 명령에도 기꺼이 복종하던 오키나와의 광기 또는 그 오키나와를 구하기 위해 자살 공격을 감행하다가 천황의 초상화를 간직한 채 물 밑으로 빨려 들어간 군인들의 ‘똘끼’가 못내 그립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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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양에 앞장선 사람들은 수백억 엔이 소요될 본격 인양 작업에 앞서서 돈이 모이는 대로, 2780톤이나 나갔지만, 제대로 써먹지 못하고 수장된 야마토의 대포부터 우선 건지자고 주장했다고 한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99엔의 배상으로 만족하라고 주장했던 일본인들이 대관절 그 대포로 어떻게 '전쟁의 참상'을 알릴 요량이었을까. 1945년 4월 7일 야마토를 침몰시킨 광기가 오늘날 그를 끌어올릴 꿍꿍이로 계승되고 있다고 한다면 그건 지나친 폄하이며 부적절한 억측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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