驚怨以拗拉焚年 (사람들) 꺾고 부러뜨려 생긴 놀라운 원성 1년 내내 불탄다.

sanha8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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驚怨以拗拉焚年
(사람들) 꺾고 부러뜨려 생긴 놀라운 원성 1년 내내 불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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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명종 때 나라를 쥐락펴락한 것이 문정왕후와 그 일가붙이 윤원형 등속이었던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여인천하>를 비롯하여 숱하게 드라마의 소재가 됐던 이 시대에는 당연하게도 윤원형과 문정왕후에 붙어 권세를 누리며 사람들을 해쳤던, 간사하고 독랄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 가운데 걸출한(?) 인물이 하나 있으니 바로 정언각(1498~1556)이라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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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 정희검의 아들이고 허암 정희량의 조카이다. 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이 자는 젊었을 때부터 그 독기를 숨기지 못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그 역시 사림파의 일원이었으나 기묘사화 때 이미 ‘어진 선비들을 미워했다’고 기록돼 있으니 젊었을 때부터 엇나간 셈이다. ‘악독하고 간교하며 속임수를 잘 써, 비위에 거슬리는 자가 있으면 평생토록 잊지 않았다가 조그만 원한도 반드시 보복하였다. 체구는 작으면서도 독이 있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은 독침에 비교하였다.’(명종실록)고 하니 그 인간성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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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조의 낮은 벼슬아치로 일할 때 병조판서 김안국은 이 정언각이 보고하러 올 때마다 계단 밑까지 내려가 정언각을 맞이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김안국에게 이유를 물으니 김안국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 사람의 간사함은 후일 뜻을 얻게 되면 반드시 선비의 무리에 해를 끼칠 것이다.” (명종실록 명종 11년 8월 23일) 자그마치 병조판서 김안국이 요즘으로 치면 과장급인 좌랑 정언각의 독침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러워서 숙이지 무서워서 숙이냐는 심경으로 계단을 내려가 정언각을 맞았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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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간은 이른바 양재역 벽서 사건의 주인공이다. 딸이 전라도로 시집갈 때 양재역까지 배웅 나갔는데 문정왕후의 전횡을 탓하는 붉은 색 글씨의 벽서가 양재역에 떡하니 붙어 있었다는 것이다. “여자 임금(문정왕후를 가리킴)은 위에서 정권을 잡고 간신 이기 등은 밑에서 권력을 농락하니 국가가 망할 것은 서서 기다리는 격이니 어찌 한심스럽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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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벽서가 진짜인지를 의심했다. 어느 간 큰 녀석이 충청도와 수원 방면으로 가는 대로변의 양재역에 떡 하니 벽서를 붙이며 하필이면 시집가는 딸 배웅나온 정언각 눈에 띌 게 뭐란 말인가. 사람들은 문정왕후 일파와 대립하는 전 왕 인종의 외삼촌 윤임 등 이른바 대윤 세력을 싹쓸이하기 위한 조작이라고 여겼다. 더구나 그걸 들고 온 게 정언각이라면 심증은 굳어진다. 정언각이 ‘매우 즐거워하며 글을 그대로 오려 가지고 대궐로 들어갔다’는 기록이고 보면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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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벽서는 을사사화 때의 피바람을 용케 모면한 사람들을 또 다시 죽음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삼정승이 입을 모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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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적어서 올리는 것은 이번 양재역의 벽에 붙어 있던 글을 보고서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아니긴 개뿔이 아니야) 애당초 죄를 결정할 때에 가볍게 처벌하여 형률대로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올바르지 못한 논의가 이렇게 일어나는 것이니 이는 화근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입니다. (아직 뽑지 못한 뿌리가 남아 있습니다)그러니 다시 죄를 정한다는 뜻을 교서로 만들어 중앙과 지방에 유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예 다 뿌리를 뽑고 지져 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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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사람들 목숨이 떨어져 나가고 귀양을 떠나는 가운데 갑자기 정언각이 그 독침을 드러낸다. 한 명을 찍어서 잡자고 나선 것이다. 임형수라는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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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도 그 호방한 기상을 우러러 보았다는 임형수는 윤원형의 미움을 사고 있었다. 임형수는 두주불사였는데 부제학 벼슬을 하던 중 제주 목사로 좌천당한다. 제주 목사는 유배에 가까운 한직이었다. 제주 목사로 떠나기 전 술자리에서 윤원형이 맛이 어떠냐 속으로 웃으며 술을 권하자 임형수는 눈을 똑바로 뜨며 이렇게 대답한다. “대감이 나를 죽이지 않으실 거면 내 주량대로 술을 받지요.” 윤원형은 기가 질려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윤원형의 심복 ‘독침’ 정언각이 이런 사내를 놓칠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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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임과 같은 마을에 살면서 그의 심복으로 수족처럼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매번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큰 소리로 윤원형을 죽여야 된다고 떠들어댔으니, 그가 윤임과 마음을 같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단지 귀양만 보내는 것은 너무 가벼운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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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수는 마침내 사약을 받는다. 사약을 먹으려다 말고 의금부 도사에게 싱긋 웃으며 “자네도 한 잔 할 텐가?” 하여 금부도사 얼굴을 백짓장으로 만들었던 재기발랄 선비 임형수는 정언각의 독침을 받고 죽었다. 또 전라 감사로 내려가서는 윤임 일파로 귀양온 양윤온이라는 사람에게 죄인의 신분으로 멋대로 관사에 드나들었다는 죄목을 씌워 때려 죽였다. 그 외에도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언각의 독침은 사람들을 찔렀고 그 가족들의 가슴을 갈갈이 찢어 놓았다. 실록에 이렇게 기록될 정도면 말 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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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년에 간악함을 감추고 화단을 멋대로 일으켜 사림에 해독을 끼쳤으니, 그가 악을 도와 저지른 죄는 위로 하늘에 통하였고 죄없는 선비들이 무궁한 원통을 안은 채 지하에 누웠습니다.” (선조실록 선조 3년 5월 15일)

“을사년 가을에 이기,윤원형이 옛 감정을 품고 흉모를 부려 온 조정의 명현(明賢)을 일망타진하였는데, 정언각이 그 사이에서 주구(走狗) 노릇을 하여 마구 독을 뿜었다.....교묘하게 죄상을 얽어내어 또다시 큰 옥사를 일으킴으로써 조정의 선류(善類)가 거의 없어지게 되었으므로, 정언각이 오랫동안 청반(淸班)에 참여해 국론(國論)을 쥘 수 있었다. (명종실록 명종 7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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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독침 정언각은 의기양양 승승장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뜻밖의 최후가 찾아왔다. 말을 타고 가다가 낙마했는데 등자에서 발이 빠지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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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말에서 떨어진 채 등자에 발이 묶여 질질 끌려가다가 머리가 깨지고 온몸이 바스라져 죽고 말았다. 일설에 따르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말은 다름아닌 임형수, 위에 언급한 바 정언각의 독침에 찔려 죽었던 임형수가 타고 다니던 말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말을 두고 의마(義馬)라 불렀고 하늘이 무심치 않아 정언각이 저리 죽었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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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이 일러 말하기를 세상에 자신의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많고 그것이 인지상정이라 할 수도 있으나 자신의 탐욕을 위해 이토록 독랄하고 사악하게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그 주변 사람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으며, 그 찢긴 가슴에 소금을 뿌려대는 독침 같은 위인은 유사 이래 드물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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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비는 분개하여 이르기를 “이런 악종은 400년에 한 번 쯤은 나오게 마련이다. 400년 뒤가 두렵도다.” 라며 예언 같은 탄식을 했다고 전한다. 안타깝게도 그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으나 그가 남긴 한시가 명종실록 부록에 전한다. 역시 작자는 미상이다. 물론 사진은 잘못 들어갔다. 독자제현의 오해 없기 바란다. 주커버그 버그 좀 신경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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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毒針最後可値 정독침최후가치
정독침의 최후란 그만큼 값지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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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談何慨周舊里 참담하개주구리
분노가 얼마나 옛 마을 뒤덮었는지 얘기에 끼어들어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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驚怨以拗拉焚年 경원이요납분년
(사람들) 꺾고 부러뜨림으로 생긴 놀라운 원성 1년 내내 불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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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侮馬音喝苛狸 부모마음갈.가리
사나운 이리 꾸짖는 말 울음소리 무시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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酖乘義馬摿利來 짐승의마음이래
독물 태운 의로운 말 넘어져 장래를 이롭게 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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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志愼明非誤昧 천지신명비오매
하늘 뜻은 삼가 세상을 밝히고 그릇되고 어리석지 말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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誌獄不怒只持士 지옥불로지지사
옥사를 기록하되 분노에 그치지 말고 선비들 보전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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孤立峰解呪施愷 고입봉해주시개
외롭게 선 봉우리 (임형수를 말함) 저주 풀고 즐거움 베풀어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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