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7월 21일 원숭이 재판 판결
1925년 7월 21일 미국을 비롯 전 세계의 시선이 미국에서 '시골'로 치부되는 테네시 주, 그 중에도 멤피스같은 대도시도 아닌 데이턴이라는 이름의 소도시로 쏠렸다. '원숭이 재판'의 결판이 내려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오랑우탄이 사람을 해치는 애드가 알란 포의 소설,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같은 사건이 아니었다. 피고는 원숭이는커녕 멀쩡한 생물 교사이자 미식축구 교사 존 토머스 스콥스였다. 그는 1925년 3월 마련된 '버틀러법'을 어긴 혐의로 고발당했다.
버틀러법이란 무엇인가. 존 워싱턴 버틀러 주의회 의원이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공립학교에서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제출한 법안을 말한다. 이 법안은 1월 28일 주 하원에서 71 대 5로, 3월 13일엔 상원에서 24 대 6으로 통과됐다. 과시 미국의 남부, 한국 기독교의 자궁이 된 꼴통 기독교의 텃밭이랄 밖에.
.
그러나 이 어이없는 법에 맞선 사람들이 있었다. 미국의 진보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이었다. 이 단체는 버틀러법을 법정으로 끌고 가야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극대화하여 법안의 비합리성을 폭로할 수 있다고 보고 자원자를 찾았다. 즉 "이 법을 어겨 달라. 우리가 네 편이 되어 주겠다"는 것이었다. 드러내 놓고 범법자가 되어야 하는 어려운 임무였지만 어디에나 용감한 자는 있는 법. 그 자원자가 스콥스였다. 스콥스는 아이들에게 다윈의 ‘종의 기원’에 바탕을 두고 쓰여진 교과서를 가르쳤고 당연히 기소되기에 이른다.
재판이 시작되자 ACLU의 계산은 맞아 떨어졌다. 전 미국에서 보도진들이 몰려들었고 라디오 방송국은 생중계를 준비했다. 운집한 상인들은 침팬지 모형을 팔았고 목사들은 인파 속에서 목청껏 설교를 했다. 인구 1800명 도시에 5천 명이 찾아드는 대성황이었다. 검찰측 대표는 세 번이나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 바 있는 윌리엄 브라이언. 변호사는 당시 명망이 드높았던 클라랜스 대로. "우리가 원숭이 자손이냐?"와 "그럼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냐?"가 맞선 대결에서 클라랜스 대로는 검찰측의 브라이언을 증언대에 세운 후 다음과 같은 문답을 통해 꼴통 기독교인들의 성서무오의 신념, 즉 성경 글자 하나 하나가 움직일 수 없는 진리라는 논리에 균열을 일으키는데 성공했다.
오른쪽부터 변호사, 피고, 검사
.
"창세기에서아침이 가고 저녁이 오니 첫째 날이었다는 말씀에서, 이 날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지요?"
"난 그게 24시간의 하루를 의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자 그대로의 날짜는 아니라는 겁니까?"....... 문답 끝에 브라이언의 결정적 실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6일 동안 세계를 만들었든 6백년, 6만년, 또는 6억년 동안이건 그러셨든 그것은 쉬운 일이고, 우리가 어떻게 믿든 중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검찰측의 입에서 튀어나온 소리였다. 브라이언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흥분한다. "재판장님 변호인측의 의도는 성서의 가치를 깎아내리려는 것 뿐입니다!"
브라이언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1925년 7월 21일 재판장은 스콥스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벌금 100달러의 형벌을 내린다. 어쨌건 법을 어긴 것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때 스콥스는최후진술에서 이렇게 말한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유죄 판결이 불공정하다고 여깁니다. 저는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한 이 법에 저항할 것입니다. 이 법안에 따르는 것은 개인과 종교의 자유처럼 미국 헌법이 보장하는 사상의 자유에 대한 제 신념에 반하는 것입니다. 벌금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법원까지 올라간 끝에 벌금이 지나치게 과하다는 이유로 스콥스는 무죄를 선고받고 “이 재판에 소환된 것은 문명이었소!”라는 변호사 대로의 항변처럼 세계인의 비웃음을 사는 재판이긴 했지만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기세는 좀체 수그러들지 않았다. 미시시피와 아칸소 주가 버틀러법과 유사한 법을 통과시켰고, 버틀러 법의 완전 폐기는 그로부터 무려 40년이 더 흐른 뒤에야 가능했으며, 상당수의 교과서에서 진화론 자체가 사라지기도 했던 것이다.
원숭이 재판
당시 진화론이 "창조론 안 믿으면 불법"이라던 꼴통 기독교에 비해 합리적, 진보적 입장에 서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당시 진화론도 제국주의에 발맞추어 인종주의를 합리화시키는 논리적 근거로서 기능한 측면도 있음을 기억해 두자. 백인 외의 다른 인종은 '기생충'과 같거나 진화가 될 진행되었다는 식의 악의적인 교육도 행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스콥스의 용기는 평가해 줄 만하다. "악법은 어기는 것이 법"이라는 선언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허위에 구속받고 폭력에 좌절하며 권력에 짓눌리는 사람들에게 유효하듯이, 그가 버틀러법에 대하여 피고인을 자청한 것은 평가할만한 행동이었다. 역사는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한 발씩 나아가고 새옷으로 갈아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