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7월 11일 로렌스 올리비에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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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올리비에는 그냥 로렌스 올리비에가 아닙니다. 로렌스 올리비에 경(卿)이죠. 영국 여왕 폐하로부터 작위를 받았거든요. 그는 영어권 최고의 배우라 할만큼 발성과 연기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고 특히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해석해 내는 것은 역사상 최고라고 불리우는 명배우였습니다. 아쉽게도 이 사람의 ‘햄릿’을 본 적은 없지만 이 사람이 주연한 ‘폭풍의 언덕’을 본 적이 있는데 소설로 봐도 섬뜩하고 스산한 히스클리프의 눈빛을 여지없이 발산하며 어린 마음을 압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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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로렌스 올리비에의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의 여인이 있으니 그녀가 바로 비비안 리입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릿 오하라. 아일랜드 계 영국인과 프랑스계 영국인 부모의 딸로 태어난 이 영국 여배우는 스칼릿 오하라와 성격이 어떤 면에서는 매우 비슷했던 모양입니다. 불처럼 정열적이며 사랑하는 사람과 취해야 할 목표는 어떻게든 쟁취해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욕을 들어먹든 저주를 듣든 별로 괘념치 않았던 그런 성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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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올리비에와 비비안 리는 연극 무대의 관객과 배우로 만나게 됩니다. 그들이 마주치자마자 큐피드는 두 사람의 가슴에 신기전을 쏘아 댄 듯 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잘 생긴 사람이 있을 수 있지?”와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니 그녀는 사람이 아니라 여신이다.”가 맞부닥친 스파크는 금새 불똥이 되고 불길이 되고 그들 마음 속에서 들불 산불이 됐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거센 불길을 분출할 구멍이 막혀 있었다는 거. 비비안 리는 번듯한 변호사의 아내였고 딸을 두고 있었으며 로렌스 올리비에 역시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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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눈이 돌아갈 대로 돌아간 남녀는 이혼에 반대하는 서로의 배우자 따위는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사랑에 몰두합니다. 비비안 리가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활동하게 된 것도 헐리웃에 진출한 로렌스 올리비에를 따라서였죠. 처음에는 비비안 리가 ‘로렌스 올리비에의 연인’이었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후 세기의 여배우로 등극하면서 이 슈퍼스타 연인의 사랑은 찰떡같이 굳어만 갑니다. 끈질기게 버티던 리의 남편과 올리비에의 아내는 이혼에 동의하고 비비안 리와 로렌스 올리비에는 친구 캐서린 햅번과 다른 한 명만이 증인으로 참석한 결혼식을 통해 부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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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그렇게 죽고 못살았지만 원래 남 눈에서 눈물나게 한 사람은 자기 눈에서 피를 보는 법이죠. 로렌스 올리비에는 성정이 강한 사람이었지만 비비안 리는 그 독한 고집에 비해 그 심리가 강건하지 못했습니다. 조울증에 시달렸고 툭하면 히스테리를 부려 올리비에를 곤란하게 만들었지요. 그래도 극진히 아내를 보살피던 올리비에였지만 1948년 호주에서 일어난 쌍방 구타 사건은 크나큰 충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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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호주를 방문하여 순회공연을 펼쳤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비비안 리가 로렌스 올리비에와 함께 무대에 서기를 거부합니다. 그러자 분개한 올리비에가 리의 뺨을 후려쳤고 리 역시 용서하지 않고 남편의 뺨을 맞받아칩니다. 그리고 선언하죠. “나는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로렌스 올리비에의 회고에 따르면 사형 선고를 받는 기분이었답니다. 이후로도 오랫 동안 결혼 생활은 유지됐지만 최소한 전같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올리비에는 “호주에서 나는 비비안을 잃어버렸다”고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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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리는 <애수>나 <안나 카레니나>등에서 좋은 연기를 보였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젊은 날의 말론 브란도와 함께 멋진 연기를 펼쳐 또 한 번의 오스카를 거머쥡니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날카로운 신경과 심각한 병마로 시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 영화의 여주인공인 블랑쉐는 정신이상자였는데 이 연기에 지나치게 몰입한 비비안 리는 스스로 이 영화가 “자신을 미치게 만들었다,”고 내뱉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녀의 히스테리는 평소에는 잠잠하다가 올리비에와 단 둘이 있을 때에 폭발했다지요. 로렌스 올리비에가 아무리 훈남이라고 하더라도 두고두고 참기는 어려웠겠죠.
둘은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다른 사람과 결혼 생활을 하거나 동거하면서도 둘은 서로를 잊지 못합니다. 비비안 리는 지병이었던 폐결핵으로 죽기 전 “올리비에 없이 장수하느니 올리비에랑 함께 살다가 일찍 죽는 게 나아!”라고 털어놓았고 죽을 때에도 당시의 동거인이 아닌 올리비에의 사진을 움켜쥐고 죽었다고 합니다. 비비안 리가 죽을 당시 암으로 투병 중이던 로렌스 올리비에는 그녀의 부고에 제정신이 아닌 채 병석을 박차고 달려갔으며 그녀의 장례를 주관하여 치릅니다.
그녀가 죽은 후로도 올리비에는 수십년을 더 살았고 젊은 날의 바람기를 잠재우고 충실한 남편으로 살다가 죽습니다. 80줄에 접어들었던 올리비에를 방문한 한 지인은 옛 비비안 리의 영상을 지켜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한 노인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건 사랑이었네. 진짜 사랑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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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그리 심한 상처를 주고 받았지만 그렇게도 서로를 서로에게서 떼어내지 못했던 사랑을 아름답다고 해야 할지 운명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와중에 비비안 리의 딸은 자신을 버린 어머니는 필요없다고 비비안 리를 외면했다고 하니 비비안 리와 올리비에의 사랑은 많은 이들에게 평생의 상처를 준 존재였겠죠. 어김없이 찾아든 인과응보의 고통 속에서도 로렌스의 사진을 품고 죽어간 비비안 리와 저승을 눈앞에 두고 과거의 연인을 회상하면서 내가 정말로 사랑한 사람은 당신 뿐이었네라 고백하는 로렌스 올리비에의 모습은 사랑이란 게 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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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술자리에서 이 얘기를 하며 나는 그런 사랑 무서워서 못한다고 하니 옆에 있던 친구 녀석이 “그러니 너는 사랑을 모르지!”라고 맞받았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한 선배가 또 이런 말을 한 기억이 납니다. “눈에 보이는 불같은 사랑만 사랑이 아니야. 진짜 사랑은 드러내지 못할 수도 있는 거야. 계 선생이 이 여사를 그렇게 평생 사랑했다지 않냐. (흐흠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혹시 몰라서 이름 생략) 서로 머리 백발이 되고 허리가 꾸부정해져도 이 여사만 보면 계 선생이 안절부절 못했다더라. 그것도 사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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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사랑이란 단어에는 많은 결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온몸을 불로 지지기도 하고 하얗게 태우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까지 열통 터지게 하기도 하지만 그 뜨거움을 누구도 경멸하지는 못하는 것이 사랑이니까요. 1989년 7월 11일 세기의 사랑의 열풍을 세상에 휘황하게 보여 주고 20세기의 햄릿 로렌스 올리비에는 세상을 떠납니다. 아마 그는 혼자만의 무대에서 이렇게 외쳤는지도 모르죠. “비비안이냐 아니냐 이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