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23일 엘리자베스 테일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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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이름을 선명하게 기억하게 된 건 1980년대 초반 영화 E.T가 세계적 인기를 끌 때였습니다. 워낙 수입 가격을 비싸게 부르는 바람에 국내 개봉은 한참 뒤에야 이뤄졌지만 워낙 뉴스나 기타 프로그램에 ET가 소개됐기에 그 캐릭터는 마치 둘리처럼 익숙했습니다. “ET같이 생긴 놈”이라는 말이 즐겨 쓰였고 많은 선생님들의 별명이 ET로 변했습니다. 그때 교회 누나한테 장난을 친다고 또래 애들이 누나 ET 같다! 하고 혀를 내밀었는데 그녀가 이렇게 반박했던 거지요. “ET? 엘리자베스 테일러? 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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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테일러가 3년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실 70년대 이후 태어난 사람들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여신(女神)같은 모습은 별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저 뚱뗑이 아줌마가 한때 그렇게 예뻤단 말이냐? 툴툴거리고 가끔 신문 지상을 장식하던 이혼과 결혼 뉴스에 참 팔자가 좋은 거냐 나쁜 거냐 시큰둥했을 따름이지요. 기실 그녀의 일생을 얘기할 때마다 결코 빠질 수 없는 게 그녀의 미모와 결혼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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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그녀의 미모가 가장 돋보인 영화는 <신부의 아버지>와 <자이언트>로 느껴집니다만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어떤 이는 <클레오파트라>를 그녀 외에 누가 연기할 수 있었겠느냐 열변을 토하기도 하고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카테리나 역이나 <아이반호>에서의 유태인 처녀 레베카 역이 최고였다고 우기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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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스펜서 트레이시와 함께 나왔던 1950년작 신부의 아버지 때가 제일 이뻤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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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할 수 없는 건 ‘세기의 미녀’ 대열을 형성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또 그 선봉을 절대 놓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미인 팔자 세다는 건 동양의 격언입니다만 서양에서도 다르지 않게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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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 결혼하고 다 이혼했지만 그녀가 자랑스럽게(?) 내거는 한 마디가 있었다고 하지요. “나는 남편 외의 남자와 자 본 적은 없어.” 일곱 번 결혼이라는 건 그만큼 “사랑하면 결혼해야 한다.”는 믿음의 소산이라는 주장도 있더군요. 워렌 비티와 깨진 것도 결혼을 바라는 리즈 (그녀 이름의 약칭이지요?)와 결혼에 코웃음치는 워렌 비티의 엇갈림 때문이었다지요. 허기사 워렌 비티는 리즈에게 반문했을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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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리즈. 사랑하면 결혼해야 한다면 말이지. 나는 무려 1만 2천번 결혼을 해야 했다고” (그는 1만 2천명의 여성과 잠자리를 했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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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가 결혼 신기록(?)을 경신한 이유는 남자를 갈아치울 욕심보다는 그 안에서 안식을 취하고픈 남자를 찾고 싶은 욕망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하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말이죠. 힐튼 호텔 재벌의 자제와 결혼했다가 신혼여행 후 바로 바이바이한 첫 결혼이나 스무살 연상의 범상한 배우와의 두 번째 결혼의 상대자는 객관적으로 봐도 그다지 리즈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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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몽고메리 클리프트나 제임스 딘같은 사람들한테 눈길이 갈 밖에요. <자이언트>를 찍으면서 사랑에 빠진 제임스 딘이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 리즈는 이렇게 외쳤다죠. “오 신이여 왜 나에게 이런 저주를. 나에게서 무엇을 더 빼앗아 가십니까?” 나 원 참 신이 들으면 기가 막혔을 겁니다. “야 엘리자베스 너 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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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자기 걸 빼앗아간다고 원망했던 그녀는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빼앗는 데에 신이 내린 재주를 발휘합니다. 세 번째 남편 마이클 토드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뒤 그녀는 네 번째 남편으로 자신의 절친이었던 데비 레이놀즈의 남편이자 세 번째 남편과의 결혼식에 축가를 불러 줬던 가수 에디 피셔를 낚아채 버렸고 그녀가 가장 사랑했다고 하는 네 번째 남편 리처드 버튼 역시 친구의 남편이었단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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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사랑하며 영화 찍으며 남편 만들며)
남편 빼앗긴 아내들은 “리즈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하며 <잘못된 만남>류의 가사를 읊었겠지만 상대는 천하의 리즈였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미모만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닙니다. 영화 <클레오파트라> 촬영 도중 리처드 버튼과 불꽃이 튀다가 버튼이 가정으로 돌아갈 기미가 보이자 자살까지 기도하며 그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진단 말입니다. 버튼의 원래 아내 시빌도 자살 시도를 하지만 리처드 버튼은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로 기울어 버리죠. 이 커플은 아시다시피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합니다. 우리가 김지미의 명언으로 알고 있는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버튼과의 이혼 와중에 남긴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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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미녀, 요부들은 흔히 그녀들의 애정 행각으로만 기억되지만 어디 사람이란 존재가 그렇게 단순하겠습니까. 백치미의 대명사같은 마릴린 먼로도 상당한 지성의 소유자였고 매카시즘 와중에 빨갱이로 몰린 남편 아서 밀러와 당당히 결혼식을 올린 강단 있는여성이었죠.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또 하나의 면모는 AIDS라는 흉측한 병이 지구상에 등장하면서 빛을 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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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이언트>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남편이었던 록 허드슨은 미남 배우이면서 성적소수자였습니다. 이 미남 배우가 성적 소수자라는 사실은 일급 비밀이었고 심지어 영화사에서는 불순한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위장 결혼까지 시켰죠. 1985년 록 허드슨은 AIDS로 세상을 떠났고 그 사실 자체로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록 허드슨이 그 병을 공개한 이후 많은 이들이 그를 비난하거나 상대하지 않았지만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굳건히 허드슨을 지지했다고 합니다. 거의 바깥 출입을 하지 않는 두문불출 상태였지만 AIDS 운동 행사에는 기를 쓰고 모습을 드러냈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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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래리 킹 쇼에 출연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들 그 병에 대해 들어봤다고는 말했지만 아무도 나서서 뭔가를 하지 않았어요. 그 점이 저를 화나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건 정말 끔찍한 일 아니냐고 사람들에게 말했지요. 그래도 그 누구도 뭔가를 하지 않았어요. 그게 더욱 저를 화나게 했어요.” 그리고 또 하나의 사실을 고백합니다. “이건 록 허드슨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걸 알기 전의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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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 결혼했고 이혼한 화려한 사생활의 여자라는 건 잘 알려져 있지만 세상이 외면하고 사람들이 꺼려하는, 도움이 필요하지만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는 문제에 대하여 분노하고 앞장서고 공들이고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었다는 건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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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많은 사람들이 겁에 질려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합니다. 이를 중단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우리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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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 결혼한 팔자 센 여자이고 세기의 미녀였지만 그녀의 일생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리처드 버튼이 선박왕 오나시스와의 경매에서 이겨 그녀에게 선사한 보석이 아니라, 그녀가 AIDS를 물리치기 위해 나섰던 순간이 아닌가 합니다. 그녀는 AIDS 보균자에 대한 비자 제한을 가한 미국 대통령 부시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부시 대통령! 당신 AIDS의 스펠링이나 알아요?” (" (1992년 제8차 국제 에이즈 컨퍼런스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