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서 말한대로 바보댐이라 불리던 평화의 댐이 필요성을 인정받고 증축하게되자 일각에선 평화의 댐이 사기극이 아니었고 전두환 정권이 옳았었다고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의 평화의 댐 계획은 문제가 있었는데 재조사에서 드러났던 것처럼 안기부를 중심으로 금강산 댐의 위험을 과장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금강산 댐의 수공이 200억톤에 달한다고 선전하였는데 내부에서 70억톤으로 수정되었음에도 묵살하고 200억톤을 밀고나갔습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현재, 금강산 댐은 물론 증축한 평화의 댐 모두 200억은 커녕 수정한 70억에도 한참 못미치는 26억톤 수준의 댐입니다. 그때 당시의 정부에서 내건 수치가 얼마나 현실성을 도외한 수치였는지를 직접적으로 나타내줍니다. 국회의사당이 잠긴다는 식의 서울 수몰 역시 불가능한게 금강산댐으로부터 서울까지 몇개의 댐이 존재하며 서울이 고립된지형도 아니기에 정부의 선전처럼 저렇게 물이 차있기 힘듭니다. 당시 감사원 결과에서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금강산 댐의 최대 저수량이 약 59.4억억톤인데 59.4억톤이 방류되어도 홍수 피해처럼 일부 저지대만 침수된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이 침수된다는 계산은 서울이라는 공간에 2백억톤의 물이 한순간에 뿌려질때나 가능한것이죠.
MBC에서 2001년에 당시 정부에 협력한 전문가들을 취재하였는데 실제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 사회상 어쩔 수 없이 협력했다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외교부에 근무했던 직원은 미국측이 금강산 댐이 터지면 63빌딩의 상당부분까지 침수된다는게 어떻게 나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나와서 합의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정부의 입장은 아니겠지만 워싱턴 포스트에서 당시의 평화의 댐 건설을 가르켜 불신과 낭비의 사상최대의 기념비적 공사라고 지적했던점을 보면 이미 해외에선 전두환 정권의 발표에 의구심을 가졌던것으로 보입니다. 그외에도 내용을 보자면 말을 할 수 없었다는 이미지의 안수한 당시 서울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200억톤 댐을 만든다면 공사에만 10년이 넘어가고 저수에 또 14년가량 걸린다는 계산을 내놓았습니다. 게다가 과학기술처 산하 연구기관에 따르면 정부가 제시하는 200m 이상의 댐은 불가능하다는 계산도 나왔습니다. 184m 이상으로 댐을 올리면 역으로 북한지역으로 물이 역류해버리기에 200억톤을 가두려면 금강산 댐만이 아니라 추가로 더 댐을 건설해야 가능하단 계산인것이었죠. 하지만 문제제기를 한 보고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중앙일보가 어떻게 입수하여 신문보도를 하였는데 이때문에 연구를 진행한 책임자 김의홍 박사는 연구과제를 유출했다는 등의 책임추궁을 받았다고합니다. 현실적인 계산들이 나왔지만 일을 주도한 안기부는 현실적인 수치를 원하지않았던거죠.
과장된 위협을 바탕으로 진행한 성금사업 또한 문제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국전환이란 말이 있는것처럼 성금운동은 성금을 모으는 의미도 있긴 하지만 정부재원으로 불가능한것은 아니였으며 실질적으로 전국민적인 참여를 강요하여 민주화 열기를 가라앉히고 사회에 반공분위기를 강조하게 만들었습니다. 후에 평화의 댐 반환 소송 기사를 보면 "북한의 수공을 막기 위해 전국민이 성금모금에 참여하는데도 우리만 성금을 내지 않아 학교에서 아버지를 빨갱이라고 한다."고 하여 성금을 낼 수 밖에 없었다는데서 당시의 사회상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평화의 댐에 속았다는 사람들이 가장 분통 터뜨리는게 이 성금 모금때문이구요. 반강제적인 모금으로 인하여 저소득층의 부담이 가중되었으며 성금 효과를 높이기 위해 아예 연말 불우이웃돕기 운동 홍보도 보류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어쨌든 돈을 모금하는데도 목적을 두었는지 권고라고 주장했지만 기업들에 대하여 성금 모금액이 할당되었다고합니다. 이건 요새도 일어나는일이긴 하군요 ㅎㅎㅎㅎ 이렇게 성금까지 모금했음에도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 안했는지 감사전에도 평화의 댐 성금 사용내용에 대한 의혹기사가 있었으며 실제로도 사업 과정에 비리가 있었음이 본격적인 감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그시절이 자주 그랬던것처럼 그다지 깨끗한 공사는 아니었던 셈입니다.
아직도 평화의 댐이 필요 없었고 증축은 돈낭비였다는 주장도 있으나 그렇게 보기는 힘듭니다. 북한의 위협때문에 만들었다지만 대폭우가 내릴때 평화의 댐이 제 역할을 했다는 말도 있고 무엇보다 북한이 댐을 결국 완성하였기에 일어난 최초의 무단 방류에서 평화의 댐이 없었다면 피해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서울 침몰은 과장된 얘기지만 저지대 침수는 감사에서도 가능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죠. 필요가 없었다면 분명히 반대입장이었을 김대중 정권에서 증축을 계획하진 않았겠죠. 2009년에 북한의 황강댐 무단 방류로 사망사고가 일어난 적도 있었죠.
하지만 흔히 말하는 우익언론계열에서 주장하는 전두환의 공로, 평화의 댐의 숨은 진실 등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2015년에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인사청문회에서 말한것처럼 당시에 안기부 직원들이 실체적 정보가 있었기에 대응하였다는 시각이 그런부류인데요 정말로 그런 가능성 때문에 순수한 의도로 평화의 댐 건설을 주도했다면 앞서 말한것처럼 왜 현실적인 계산은 무시하고 탄압했을까요? 평화의 댐 감사에서 나오지만 200억톤이 나오게된 금강산 댐 최초 조사는 한국전력 직원 1명이 파견되었을 뿐이고 전문가 검증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말로 구체적인 수공 가능성을 알았다면 엄청나게 중요한 일인텐데 그런 조사에 직원 1명 보내놓는게 상식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정말로 그런 가능성이 논의되었다고해도 그걸 국내용으로 써먹을 생각을 했으면 했지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작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않고서야 이렇게 조사를 날림으로 할 순 없지요.
그래도 우익 언론들의 불만도 어느정도 이해는가는게 제가 가본적은 없지만 현재 평화의 댐을 가면 김대중과 관련된 기념물들이 있다고 하더군요. 물론 김대중만 있는것은 아니고 평화의 댐이란 이름답게 평화를 컨셉으로 삼았는지 해외의 다른 인물들이나 평화의 종같은 물건들이 있다고는 합니다. 그렇지만 평화의 댐을 추진한 전두환이 과정의 문제로 이름을 올리기 어려운 틈을 타 슬쩍했다는 느낌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평화의 댐을 간 사람들 중에 "전두환이 하면 나쁘고 김대중이 하면 좋은거냐?"는 식의 감상문이 계속 나오는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