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먹는글 2번째입니다. 고대에 문자가 개발되면서부터 인류는
다양한 기록을 남겼으나 불행히도 역사의 진행속에 대다수는
(주로 멸망과정에서 방화등으로> 소실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흐름속에서도 세월과 파괴를 버티고 기원전부터 내려오는
물건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전포스팅에서 말했던 점토판이 있죠.
점토판은 위의 물건처럼 기원전 2~3천년전의 기록들도 내려오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기록문서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로 메소포타미아와 미케네문명에서 사용했으며 점토판이
시작되었을것으로 추정되는 메소포타미아는 석재가 부족한대신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에서 점토를 얻기 쉬워 점토에 글을 쓰는게
퍼진것으로 보입니다. 당시에 점토판 기록은 매우 활발하여
이것들을 보관하기위한 도서관의 원형이 기원전 2천년경에 이미
존재하였고 개인간의 거래내역을 기록한 점토판도 상당히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점토판은 그 재료 덕분에 이후 파괴과정에서
방화속에서 종이와 다르게 도자기처럼 잘 구워져서 보존이 더
잘되었다고 합니다. 황당하긴하지만 그렇게 남은 기록들이
전쟁의 급박한 상황을 마지막으로 묘사하고 있었기때문에
설득력이 있습니다. 보통은 자연건조만 한것을 사용하고
중요한 점토판의 경우에는 굽거나해서 강도를 높였다더군요.
-유명한 함무라비법전을 기록한 석비
다음은 석판....입니다만 쓸만한 특징은 크게 없군요.
석판이 왜 그렇게 보존이 잘되냐면 돌이기때문이라는 한마디뿐이죠....
그래도 석판의 보존력은 한국에서도 입증되는데요 삼국시대의 역사서들이
다날아갔지만 광개토왕릉비나 진흥왕순수비는 현대까지 남아있는
점에서 알수있습니다. 물론 현대의 IS처럼 작정하고 파괴하고자하면
버틸 수 없기는 합니다만 안그런건 없겠지요.
갑골문은 상나라(은나라)의 실존을 결정지은 물건입니다.
갑골에 기록된 내용으로 볼때 이 시대에도 죽간등으로 기록을
남기고 갑골은 점치는 보조용도가 대부분이었던것 같으나
결국 살아남은것은 뼈로 만든 갑골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갑골들도 뜻하지않은 수난을 겪게되는데 이것을 발굴한 농민들은
당연히 가치를 몰랐고 그러다가 용골로 취급되어 한약재로
쓰였습니다....많은 수의 갑골문들이 한약재로 날아가버린것이죠.
양피지는 양의 가죽을 벗겨 기록한것으로 다른 동물의 가죽도
가끔 사용되었지만 대부분 양의 가죽이 사용되었습니다.
양피지는 대체로 파피루스와 같이 존재하여 범용성에서는
밀렸습니다. 만드는데 양을 잡아야하기 때문에 가격이 높을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양쪽면을 사용할 수 있어 부피를 줄일수있고
파피루스의 내구도가 약했기 때문에 보존용으로 중요한 기록을 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유명한것으로 기원전에 만들어진것으로 알려진
성경 사본 사해 문서가 대부분 양피지로 기록되었습니다.
양피지가 귀한 덕분에 기존에 사용된 양피지 위에 새로 덧쓰는
일들이 있었는데 후대의 역사가들 입장에선 당연하게도 더 오래된 기존
기록이 중요하기때문에 원래 기록을 복원하기위해 노력하기도 합니다.
쓰다보니 뭔가 좀 벗어난것도 같지만 상당수의 고대 기록들이
유실된것을 생각하면 기록의 보존성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사고가 아닌 고의적으로 기록들을 훼손시키는 경우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