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에서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레온하르트 오일러(Leonhard Euler)의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필자 또한 공과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오일러라면 지겹도록 보고 들었다. 그런데 수학, 천문학, 기하학, 유체역학 등 하도 다양한 분야에서 그 이름이 거론되기 때문에 필자는 처음에는 서로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 ㅎㅎ
비전공자들에겐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서 n=3일 경우의 증명을 해낸 것으로 유명하겠지만 이공계 전공자들에겐 뭐니뭐니해도 삼각함수와 지수함수와의 관계를 나타낸 '오일러 공식'이 가장 유명할 것이다. 이 오일러 공식이 수많은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을 먹여살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18세기 동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지금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에 7개 다리가 있었다. 한 주민이 '7개 다리를 두번 건너지 않고 모두 건널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문제를 내었고 아무도 풀지 못하자 결국 당대 최고의 수학자인 오일러에게 물었다고 한다. 문제를 들은 오일러는 '그런 방법이 없다'라고 명쾌한 답을 주었다. 위상기하학이 시작되는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한다. 이런 문제를 '한붓 그리기'라고도 한다.
상기의 그림은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를 도식화한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상기의 도식에서는 홀수점이 4개이기 때문에 한번에 그리고 중복되지 않고 모든 점을 지나는 경로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건 또 뭔솔? ㅎㅎ
필자는 수학자가 아니어서 위상기하학도 모를 뿐더러 오일러 또한 오일러 공식을 통해서만 알았기 때문에 쾨니히스베르크 다리 문제가 오일러와 관련이 있는지도 몰랐다. 이런 문제는 사실 이러한 어려운 학문적 용어를 통하지 않고서도 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처음 '한붓 그리기' 문제를 접했을 때 필자의 접근 방법은 이랬다. 한번에 그릴 수 있는 경로를 찾기 보다 한번에 그릴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가?...를 찾아보자 다시 말하면 문제를 푸는 사람의 시각이 아니라 문제를 내는 사람의 시각에서 문제를 보는 것이다. '한붓 그리기'의 문제를 내는 사람은 그것이 가능한 방법으로 도식을 그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로찾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입구에서 출구로 나가는 경로를 찾으려면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지만 거꾸로 출구에서 입구로 찾아 들어가면 갈림길이 별로 없어 쉽게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한번 해 보시라! ㅎㅎ
상기의 그림에서 (A)는 직선이 대표하는 개곡선, (B)는 원이 대표하는 폐곡선이다. '한붓 그리기'가 가능한 것은 이 두가지 경우 밖에 없다.
상기의 그림에서 (A')는 (A)의 변형, (B')는 (B)의 변형이다. 하지만 '한붓 그리기'하는데는 위상기하학적으로 동일하다.
홀수점은 해당 점에 연결된 직선의 수가 홀수개, 짝수점은 해당 점에서 연결된 직선의 수가 짝수개인 점이다. 상기의 그림에서 (A)는 홀수점이 2개, (B)는 홀수점이 0개, (C)는 홀수점이 4개이다. 어떻게 변형이 되든 '한붓 그리기'가 가능하려면 홀수점이 없거나 2개이어만 하는 것이다. 짝수점의 갯수는 '한붓 그리기'하는데는 아무 상관이 없다. 홀수점이 홀수개인 도형은?... 글쎄...? 아마도 우리가 살고있는 차원에서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리면 될까? 홀수점이 없을 때는 아무데서나 시작해서 시작한 곳에서 끝나면 되고 홀수점이 2개일 때는 한 홀수점에서 시작해서 다른 나머지 홀수점에서 끝나도록 그리면 된다.
그럼 이제 상기의 그림을 보자. (A)는 홀수점이 2개, (B)는 홀수점이 4개이다. 따라서 (A)는 홀수점에서 시작해서 다른 홀수점에서 끝나는 '한붓 그리기'가 가능하고 (B)는 그런 경로를 찾을 수 없는 도식이다.
이렇게 뒤집어서 생각하는 방법은 인간의 사고를 유연하게 하여 문제를 해결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오늘이 수능을 치른 학생들이 정시 접수를 하는 마감일이라고 한다. 요즘은 수시모집에서 정원의 76%를 뽑기 때문에 정시모집의 경쟁률이 엄청 높아졌다. 한두 문제로 학교가 달라지고 심지어 인서울이냐 아니냐가 결정된다고 한다. 수시모집에서 학생부(생활기록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고 한다. 좋은 취지에서 만들어졌겠지만 전혀 좋지 않게 적용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고등학교 3년의 생활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하기 위해 생활한다는 자조섞인 말도 들린다.
입시 준비하는 3년을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지원하는 학과에 부합하는 생활을 하는 것.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교육인가? 이런식이라면 필자처럼 방산기술, 의료기술, 자연과학, 문학예술 그리고 정치평론까지 관심이 있는 학생인 경우 일관성이 없다고 하여 받아주는 학교가 없을 것이다. ㅋㅋ
한두 문제로 등급이 갈리고 학교가 달라지고 그래서 인생이 바뀐다고 하면 어떻게 학생들에게 창의적으로 생각하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뒤집어서 생각하는 것이 위험한 사회가 되면 그 사회의 미래는 없다.